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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경민 Nov 19. 2024

내 인생의 인간관계 보험은 얼마짜리?

[윤경민 칼럼]  내 인생의 인간관계 보험은 얼마짜리?


엊그제 동창생에게 카톡으로 전화가 왔다. 다른 일을 하느라 받지 못한 걸 나중에 확인했는데 메시지가 남아 있었다. "오랜만이지? 통화되냐?" 전화로 안 하고 왜 굳이 카톡보이스톡으로 했을까 궁금해 전화를 걸었다. "누구시죠?" 내게 전화를 해달라고 해놓고 누구냐니, 어이가 없었지만 나라고 밝히고 왜 보이스톡으로 했느냐고 묻자 "해킹당해 휴대폰을 초기화해서 전화번호가 다 날아가버렸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 동창생과의 연락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6~7년 만이다. 바로 무슨 일이냐고 용건을 물었다. 평소의 그답지 않게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자금이 좀 필요해서"라고 했다. 돈을 빌려달라는 이야기다. 6~7년 만에 연락해서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 걸 보니 어지간이 급한 게 아닌 모양이었다. 

사실 그 동창생은 내게 그렇게 돈을 빌려달라고 할 만큼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 외려 염치없다고 여겨질 만큼 내게 함부로 한 적이 있는 이였기에 얼마나 궁지에 몰려 있을지 대충 짐작이 갔다. 나는 그에게 얼마가 필요한지, 어떤 사정이 있는지 묻지조차 않았다. 차갑게 거절했다. 미안하지만 나도 여유가 없다고 일언지하에. 그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미안하다고 했다.

그보다 앞서 3주일 전쯤 또 다른 이에게 문자가 왔다. 그 역시 오랜만이라면서 사정이 생겨 백만 원만 급하게 융통해 줄 수 있느냐는 요청이었다. 그렇게 급한 사정이라면 전화로 사정을 이야기하고 요청했어야 할 텐데 문자로 보내다니 나는 피싱을 의심했다. 그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할까도 했지만 그냥 피싱으로 간주하고 무시했다. 더 이상의 연락은 오지 않았다.

금융기관도 이용할 수 없을 만큼 벼랑 끝에 서 있는 걸까. 무슨 사정이 있는지 모르지만 딱한 사정이 있더라도 그 두 사람은 나의 마음을 열지 못했다. 나는 만약을 생각했다. 

내가 만약 어떤 사정이 생겨 급하게 돈이 필요할 때 내게 급전을 융통해 줄 사람이 과연 있을까? 내게 떼 먹힐 생각으로 1~2백만 원이라도 선뜻 내어줄 사람이 있기나 한 걸까? 내가 평소에 주변 사람들에게 그 정도 받을 만큼 신뢰를 주고, 인심을 얻고, 베풀며 살았나? 

결코 아니었다. 나 또한 차갑게 거절당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두 가지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은. 

첫째는 남에게 손을 벌릴 일이 없도록 해야 하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근검 절약할 수밖에 없다. 씀씀이를 줄이고 허리띠를 졸라매서 언제 올지 모를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 보험과 연금도 나를 보호해 주는 방패가 되어줄 것이다. 

둘째는 내가 진짜 어려움에 놓였을 때 천만 원 정도는 흔쾌히 빌려줄 수 있는 사람을 세 명만 만들어 놓자. 친구든 이웃이든 선후배든 나를 믿고, 설사 나에게 돈을 떼 먹히더라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할 사람을 딱 세 명만 만들어 놓자. 

그럴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이 없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내가 반드시 갚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어야 할 것이다. 아니면 돈이 아닌 다른 것으로라도 대신 보상해 줄 수 있는 나만의 능력이 있다는 걸 인식시켜주어야 한다.

그것도 아니라면 설사 못 받더라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할 만큼 평소 그에게 베풀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나에게만 해당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돈거래는 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어릴 때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만일에 대비해 보험을 들어놔야 한다. 보험사의 보험뿐 아니라, 인간관계의 보험 말이다. 나는 과연 앞으로 보험을 몇 명에게 가입할 수 있을까. 내 인생의 인간관계 보험은 얼마짜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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