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우리 집 어르신
우리 집에는 어르신이 살고 있다. 얼굴은 동글동글하고 뱃살도 동글동글한 11살 고양이 찬초. 찬초는 2008년생이고 몇 월생인지는 모르겠으나 남편이 2008년 10월 즈음에 8개월가량 된 고양이를 데리고 왔다고 했었으니 대략 2월생 정도 되겠지. 남편이 데리고 온 때부터 이미 지금의 크기와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고 찬초를 데려온 곳에서도 찬초 애기때 사진을 받았던 적이 없으니 우리는 그 귀엽다는 아깽이 시절을 평생 모를 것이다. 생각해보면 찬초를 보낸 사람도 웃겨. 데려간 곳에서 고양이가 잘 살고 있는지 정도는 궁금해야 하지 않은 건가. 어쩌면 그 사람은 그 귀여운 아깽이 시절 귀엽다고 키웠다가 못 키우게 되고 고양이를 보내고 그런 고양이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찌 됐든 연애 시절 남편 자취방에 갔을 때에는 거대하고 뚱뚱한 고양이가 어쩐지 무섭게 느껴졌던 처음 대면이 있었고 그 이후에 놀러 갈 때마다 나에게도 고롱고롱 골골 송을 불러주는 소위 말하는 개냥이인 찬초. 남편이 집을 비워야 할 때 내가 며칠에 한 번씩 가서 사료를 보충해 줬었고 그럴 때마다 버선발로 달려 나오는 찬초를 보며 조금씩 정이 들어가고 있던 때였다. 사실 찬초에게는 친형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아이는 산초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였다. 산초는 찬초와 다르게 예민하고 사고를 많이 치는 고양이여서 남편 집에 있던 와인잔도 와장창 부셔버리고 널어놓은 빨래를 다 헝클어 놓았던 악동 고양이였다. 그러나 산초는 남편이 스페인으로 교환학생을 갔던 동안에 맡겨 놓았던 동생 집에서 원인모를 병으로 4살 나이로 죽었다. 동생이 병원에도 데려가고 정성으로 보살폈으나 산초와 이 세상에서의 연은 딱 거기까지였나 보다.
그래서 나와 남편이 결혼하고 나서는 자연스럽게 찬초와 살게 되었다. 결혼하고 나서 고양이랑 같이 산다는 말을 듣고 엄마는 기겁했고 시아버지는 결혼했으니 이제 고양이를 다른데 갖다 주라며 우리를 설득했으나 우리는 콧방귀도 안 뀌었었다. 동시에 이렇게 귀여운 찬초를 어디다 보내라는 것이람. 하며 친구들에게 하소연하는 것으로 당시의 스트레스를 풀었었다.
사실 나는 고양이를 딱 하루 키워본 적이 있었다. 어린 시절 내가 정말 좋아해서 전권을 다 읽어버린 ‘과학 앨범’ 시리즈에 고양이 편이 있었는데, 거기 나왔던 고양이 설명이 신비롭고 책에 나오는 고양이 사진이 모두 다 예뻐서 언젠가는 꼭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 생각해왔었다. 중학생 때 학교 담임선생님이 어미를 잃은 고양이 두 마리를 주워서 학교 운동장에 잠시 놔두었다 했고 키우고 싶은 사람은 데려가라고 하셨다. 난 고민도 안 하고 그 고양이들을 집에 데려갔고 그날 부모님께 엄청나게 혼났었고 다음날 다시 고대로 그 고양이를 학교에 돌려다 놓았다. 그 일 때문에 담임선생님께도 엄청 혼났던 기억이 있다.
생각해보면 과학 앨범 시리즈에 나왔던 고양이 사진은 모두 품종묘였던 것 같다. 내 머릿속에 집고양이는 모두 그런 품종묘들인 줄 알았고 사실 남편 자취방에서 찬초를 처음 봤었을 때 너무 거대하고 뚱뚱해서 작고 귀여운 고양이를 기대했던 나는 조금 실망했었던 것이다.
세월이 흘러 찬초는 11살이 되었고 나와 같이 산지는 7년이 되어간다. 새벽마다 우다다를 하며 우리의 잠을 깨우던 찬초는 새벽에도 냐옹냐옹 몇 번 정도만 하고 말 정도로 어쩐지 힘이 없어 보이고 고양이가 정말 좋아하는 낚싯대 가지고 놀아줄 때면 절대 뛰어오르는 법 없이 누워서 발만 허공에 열심히 휘두르는 식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반려동물을 자식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하며 아들이라고 본인을 엄마, 아빠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는 찬초를 절대 자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식이 15년만 살고 죽는다고 생각해봐라. 마음이 너무 미어지지 않는가? 나는 그래서 찬초를 우연히 나와 함께 살게 된 귀여운 아는 동생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찬초의 누나이고 남편은 찬초의 형님이다. 그래서 우리는 병원을 갈 때에도 의사가 찬초가 엄마한테 가네요 등등의 말을 할 때 조금 불편하다.
최근에 병원에 갔을 때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11살이 넘도록 제대로 된 양치질을 해본 적 없는 찬초의 치아 상태가 조금 걱정이 되기 시작했던 중 동네에 새로 생긴 동물병원에서 건강검진과 스케일링 이벤트를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건강검진도 3년 전에 받아본 것이 마지막이라 건강검진 먼저 받고 스케일링이 필요하다면 받기로 계획을 세웠다. 건강검진 결과 여러 노화에 따른 여러 가지 현상, 홍채 반응이 느리다던지, 척추 뼈에 어떤 조그만 뼈가 자란다던지, 허벅지 근육이 퇴화(?) 되었다던지 등 외엔 다행히도 건강에 이상은 없었다. 그러나 치석이 심하게 낀 상태여서 결국 스케일링을 예약할 수밖에 없었다. 스케일링하는 전날 밤 12시부터 금식을 시키고 데리고 오라고 병원 측에서 알려줬다. 먹는 것을 좋아해서 평생 엄청난 풍채를 유지하고 있는 찬초에게 가혹한 시간이 될 것이라 걱정이 되었다.
찬초 스케일링 예약 날. 전날 12시부터 밥그릇을 치우고 금식시켰다. 아침에 일어나니 배고프다 난리였는데, 내가 무시하니 나에게 눈빛을 쏘며 말했다.
“냐아아아아앙아아앜옹”
번역하자면 ‘밥 안 줄 거냐 이 새끼야.’ 정도가 되겠지.
2시에 찬초를 맡기고 산책하는데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흡수성 병변이 의심된다며 방사선 검사 후에 발치가 진행될 수도 있다고 설명하셨다. 헉, 갑자기 걱정이 되었다. 마취가 길어지고 통증 때문에 힘들어할 찬초 걱정 더하기 병원비 걱정… 원래 예정대로라면 6시에 데리러 가면 되는데 7시로 미뤄졌다. 마취했다가 잘 깨어날지 여러 가지로 걱정이 되었다.
시간에 맞춰 병원에 갔고 회복실에 쭈그려 앉아 있는 찬초를 보니 괜스레 마음이 아팠다. 의사를 만나 설명을 듣고 약 처방도 받았다. 뽑고 꿰매 놓은 잇몸 사진을 보니 또 마음이 아프다. 병원비 계산할 때 더더욱 마음이 아팠다.
오늘은 사료를 물에 불려 주거나 습식 캔을 줘야 한다는 설명에 집에 가는 길에 맛있는 간식 하나를 샀다. 간식을 따자마자 찬초는 달려오며 말했다.
“냐아아아앙~앙”
번역하자면 ‘빨리 줘, 이 새끼야.’ 정도가 되겠다.
11살 찬초의 생애 첫 치과 치료를 마쳤다. 오늘은 이빨 두 개지만 더 나이 들고 어디가 아플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나보다 늦게 태어난 작고 귀여운 아는 동생이 늙고 병들어 가는 모습을 어떻게 지켜봐야 할지…
병원비를 계산할 때 의사 선생님이 묻는다.
“근데 찬초가 무슨 뜻이에요? 정말 처음 보는 이름이에요. 이름이 예뻐요.”
내가 침착하게 설명했다.
“네, 찬초는 스페인어로 돼지란 뜻이에요.”
듣자마자 깔깔거리며 기분 좋게 웃는 선생님을 보았다.
옛말에 이름을 천하게 지어야 오래 건강하게 산다고 그랬다. 이름 잘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