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글을 쓰는가

by 윤슬

왜 글을 쓰는가, 최근 몇 년간 가장 많이 가졌던 물음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 말이 안된다. 차라리 취업을 하는 게 입에 풀칠하기 훨씬 나을 것이다. 행복하기 위해서? 막연하다. 행복이 뭔데, 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자기 치유를 위해서? 어쩌면. 갸웃해진다. 타인을 위로하기 위해서? 이 또한 어쩌면. 그러나 하나의 문장만으로 대답하기엔 뭔가 마뜩잖다.


나는 2025년의 하반기를 고통으로 통과했다. 묵직한 바위 하나가 심장 위에 얹힌 고통, 입술이 꿰매진 채 아무 말도 꺼낼 수 없는 고통, 얌전한 바늘꽂이가 된 고통, 종이에 베인 가느다란 상처에서 멈추지 않고 피가 배어나오는 고통, 그 상처를 소금물에 담그는 고통, 그러저러한 고통. 일기의 행간에서 고통이 새어나왔고, 글의 행간에서 비릿한 쾌락이 흘렀다.


대체 왜.


고통의 근간에는 오해가 있었다. 표피의 오해가 아니라 근원적인 오해. 그 누구도 풀 수 없는, 해가 없는, 문제조차 제시되지 않은, 문제적인 오해. 그렇다면 오해는 어디에서 비롯되었나. 어떤 이해에서 비롯되었다. 이해한다는 오해, 이해했다는 오해. 이해해서 안다는 오해.

개인과 개인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미지의 굴이 있다. 그걸 인정하지 않은 오해. 너에 대한 오해. 나에 대한 오해. 내가 보는 세계와 타인이 보는 세계는 늘 다르고 어딘가 어긋나 있으며, 우리는 결코 동일한 세계에 머물지 못할 것임을 느끼고 고통스러웠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굴을 파고 넘어가보겠다, 너의 세계를 가늠해보겠다며 글을 읽고 썼다. 말로는 할 수 없는 말을 실 같은 문장으로 모으고 모아 하나의 면을 직조했다. 글쓰기. 충돌하는 세계간의 교차점이자 교집합을 만드는 일, 그럼으로써 막연하게나마 끄덕일 수 있는 세계의 영역을 넓히는 일, 또한 공감의 가능성을 키우는 일. 그러다 보면 오해도 이해할 수 있고, 고통도 받아들일 수 있는 일. 그렇게 내 마음을 바로 세우고 지키는 일. 글이 오해 없는 온전한 진실을 담는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나로서는 그런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글을 쓸 수밖에 없구나,를 지금처럼 글을 쓰면서 깨달을 뿐이다.


결국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우리의 틈, 우주의 어둠, 그 사이사이 깔린 미로의 끝에라도 닿아볼까, 문장으로 이루어진 길을 찾으려는 마음이다. 만약 글을 쓰지 않았다면 이해할 수 없는 오해들 사이에 낀 고통의 더께 아래 깔려 무너졌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