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 안나 카레니나 >
확진자랑 밥 먹어도 안 걸리길래, 내 면역력을 과신했다. 결국, 코로나 걸려서 일주일 격리 중이다.
7일 동안 집틀박 하면서 <<안나 카레니나>>를 정독하기로 결심했다. 7일분을 북마크로 야무지게 나눠봤다. 하루에 2-300 페이지씩 읽으면 7일 차에 완독 할 수 있다.
러시아 문화 관련 교양수업을 들을 때, 둘의 출신성분이 확연히 차이 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톨스토이는 귀족 출신이고, 도스토예프스키는 평민 출신이라는 것. 대작을 쓴 대문호 둘이 동시대를 살다가 갔다. 개인적으로 나는 도스토예프스키가 더 끌렸지만, 올해가 가기 전에 <<안나 카레니나>>를 꼭 읽기로 결심했다.
All happy families
resemble one another.
Every unhappy family is
unhappy after its own fashion.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연진희 역, 민음사]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 나름으로 불행하다. [박형규 역, 문학동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문명 3부작인 <<총. 균. 쇠>>에 이 문장에 언급되었는데, 저자는 가축화할 수 있는 동물은 모두 엇비슷하고, 가축화할 수 없는 동물은 이유가 제각각이라면서 톨스토이의 문장을 빌린다. 이를 두고 '안나 카레니나 법칙'이라고 정의한다.
이 문장에서 톨스토이가 말하려고 했던 건, 결혼생활이 행복해지려면 수많은 요소들이 성공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서로 성적 매력을 느껴야 하고, 돈, 자녀 교육, 종교, 인척 등등의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합의할 수 있어야 한다. 행복에 필요한 이 중요한 요소들 중에 어느 한 가지만 어긋난다면 그 나머지 요소들이 모두 성립되더라도 그 결혼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안나 카레니나에는 삶을 관통하는 거의 모든 문제가 두루 담겨 있다. 널리 읽힌 밀란 쿤데라의 소설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여주인공 테레사가 남자 주인공 토마스의 집에 들어가기 위한 입장권이 <<안나 카레니나>>였다. 그것은 '은밀한 동지애를 확인하는 암호'이자 교양의 표지, 사랑의 증표, 영혼의 열쇠이기도 했다.
미술관이나 극장, 박물관 혹은 타인의 마음 안으로 들어가는 입장권이 돈이나 보석 같은 게 아니라, <<안나 카레니나>>와 같은 책이라면 정말 근사할 것 같다.
_인생이 묻고, 톨스토이가 답하다._이 희인
다음날 아침, 수화물 보관소에 짐을 맡긴 뒤 <<안나 카레니나>>를 겨드랑이에 끼고, 프라하 거리를 쏘다녔다. 저녁에 그녀가 초인종을 눌렀고, 그가 문을 열었다. 그녀는 책을 놓지 않았다. 그것이 마치 토마스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장권인 양, 그녀는 자기가 가진 통행증이라고는 이 비참한 입장권밖에 없음을 깨달았고, 울고 싶어졌다.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스테판 아르카디치가 가정교사와 오랫동안 바람을 피운 게 발각된다. 아내인, 돌리는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고, 자신이 오랫동안 기만당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먹는다. 한 가정이 파탄 날 위기에 처해지자, 오블론스키의 누이인, 안나가 기차를 타고 찾아오면서 소설이 시작된다.
1. 스테판 아르카디치 (가축화될 수 없는 인물)
스테판 아르카디치는 자기 자신에게는 정직한 사람이었다. 육 년 전쯤에 부적절한 관계를 시작했던 걸 후회하는 게 아니라, 아내의 눈을 좀 더 솜씨 있게 속일 수 없었던 것을 후회할 뿐이었다.
'그동안에 어떻게든 알게 되겠지' 그의 마음은 태평하기도 그지없다. 가장 착잡하고 풀기 어려운 문제들에 대해 삶이 주는 일반적인 해답 이외에는 답이 없었다. 그 해답이란 이렇다. 사람은 그날그날 요구에 따라 살아야 한다. 말하자면 자신을 잊어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는 종교는 인민 가운데 야만층을 위한 재갈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고 했고, 실제로 스테판은 짧은 기도회라도 두 발이 쑤셔 견딜 수 없었으며, 또한 이승의 생활이 아주 즐거운데 구태여 저승에 대한 두렵고 과장된 말이 무엇 때문에 있어야 하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유쾌한 익살을 좋아하는 스테판은 이따금 기왕 선조를 자랑하고 싶다면 류리크에서 얼버무려 정작 인류 최초의 시조인 원숭이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며 점잖은 사람들을 난처하게 하는 것이 즐거웠다. 결국 자유주의적 경향은 스테판의 습성이 되었고, 자신의 뇌리에 옅은 안개를 피워 오르게 한다는 이유에서 식후의 담배와 마찬가지로 이 신문을 사랑했다.
그는 운이 좋았다. 방종한 생활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젊은 나이에 출세 가도를 달렸다. 왜냐하면 안나의 남편, 매형이 그를 관청장 요직에 재임하게 만들어 줬고, 귀족 혈통이라서 혈연이 상당했다. 그래서 오블론스키가의 스테판은 생존을 위해 애쓸 필요가 없이, 여유롭고 느긋했다. 타고난 품성도 온순했다. 욕심도 없고, 절망도 없는 게 그의 삶이었다.
그는 유쾌한 말투로 주위 사람을 기쁘게 만든다.
유쾌함, 자유, 소탈함으로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대하여 인기가 많고, 출세에 대한 욕망도 없어서 직무에 무관심하고 안정적으로 월급만 따박따박 받아 가고 있었다. 이는 과실을 범하는 법도 없어서 적을 만들 일도 없었다. 온화한 성품을 가진 그의 주변은 스테판에 의해 주입된 친근하고 자유로운 어조를 구사하는 스테판표 바운더리가 형성된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집무실에 레빈이 찾아온다. 둘은 다른 성향이지만, 친구이다. 레빈은 도시를 저버리고 농촌으로 귀농한다. 귀족 출신이지만, 출세에 대한 욕망도 거리가 멀고, 땀을 흘려서 일해야 하는 노동을 추구하는 인물이다. >> 톨스토이의 욕망이 투영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귀족출신이지만, 속세의 모든 기준을 저버리고 독자적인 노선을 타는 인물이다.
상이한 활동 분야를 선택한 사람들이 서로 그러듯이 그들 두 사람도 이성으로는 상대의 세계를 시인하면서도 내심 그것을 경멸했다. 그들은 서로 자신이 하고 있는 생활만이 참된 생활이고 친구가 하고 있는 생활은 한낱 환상일 뿐이라는 듯 여겼다. 그와 마찬가지로 레빈 역시 속마음으로는 자기 친구의 도시적 생활양식과 무의미하다고 밖에 여겨지지 않는 그의 직무를 경멸하고 조소했다.
그러나, 둘의 차이점은 스테판은 누구나 하고 있는 대로 (속마음을 숨기고)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짓는 게 익숙한 반면에, 레빈의 웃음은 자신이 없고, 때로는 노한 듯이 보인다는 점이다.
스테판은 단번에 레빈의 정직한 속마음을 꿰뚫는다. "도시가 싫으면서 여기까지 왜 온 거야?"
레빈은 별안간 얼굴을 붉혔다. 그러나 어른들이 자기도 모르게 살며시 얼굴을 붉히는 것과 같은 식이 아니라, 아이들이 자신의 수줍어하는 모양이 사람들에게 우습게 보인다는 것을 느끼고 그 때문에 한층 더 부끄러워 마침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이 붉어지는 것과 같은 식이었다. >> 순수한 촌뜨기 레빈
그렇다, 레빈은 스테판의 처제인 키티를 마음에 품고 있다. 그녀에게 청혼하고 앞서서, 그런 점에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스테판을 찾아서 그의 집무실까지 찾아온 것이다.
" 오, 자네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야"
"어째서?"
"준마는 그 낙인으로 알고, 사랑에 빠진 젊은이는 그 눈으로 알 수 있도다." 스테판 아르키디치는 낭독조로 말했다. "자네는 괜찮아. 모든 것이 미래에 있으니까"
"그럼 자네는 과거 사람이라는 거지?"
"아니, 설사 과거는 아닐지언정 자네에겐 미래가 있는 데 반해 내겐 현재만 있을 뿐이야. 더구나 그 현재라는 것도 마치 떠올랐다 가라앉다 하는 사주같은 것이지
스테판은 당장 빨리 청혼하라고 일러주면서, 경쟁자인 브론스키의 존재도 넌지시 알려준다.
레빈의 숭고한 짝사랑은 경쟁 운운하는 스테판의 충고 때문에 혼란스럽다. 주연이었던 그가, 자신의 사랑에 있어서 조연이 될 수도 있다.
스테판은 레빈이 할 구애에 대한 충고를 해주고, 자신이 저지른 외도에 대한 조언을 구한다.
"그런데, 친구야. 여자란 온갖 일이 돌아가는 중심축 같은 거야. 지금 내 사정도 엉망이야. 정말 엉망이다. 이게 다 여자 때문이야. 자네 어디 한번, 숨김없이 이야기해 주게... 자네 의견을 좀 들려줘"
"도대체 무슨 일이야?"
"말하자면 이런 거야. 가령 말이야, 자네가 결혼을 했고, 부인을 사랑하는데, 다른 여자에게 마음이 끌렸다면..."
"잠깐만, 나는 그런 말은 전혀 이야기를 못 하겠어. 그건 마치.... 내가 지금 배가 부르면서도 빵집 앞을 지나가다가 빵을 훔친다는 것과 같은 얘기니깐"
스테판의 눈은 빛나며 " 왜 그래? 때로는 빵이 못 견딜 만큼 좋은 냄새를 풍기는 수도 있을 거 아니야?"
2. 레빈 ( 가축화될 수 있는 인물)
빵을 훔쳐서는 안되지
"자네가 그렇게 내 진의를 듣고 싶다면 말하겠는데, 그게 드라마라는 식의 말을 나는 믿지 않아. 그 이유는 이래, 내 생각으로는 사랑..... 플라톤<<향연>>에서 유별한 두 가지 사랑이 사람들에게 시금석 역할을 한다네.* 어떤 사람들은 한쪽 사랑만을 이해하고, 어떤 사람들은 또 다른 쪽 사랑만을 이해하지. 그리고, 비 非 플라토닉러브만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쓸데없이 드라마니 어쩌니 하지, 하지만 그런 종류의 사랑엔 어떠한 드라마도 있을 수 없어, 기껏해야 '덕택에 즐거웠어, 고마워, 그럼 안녕' 정도가 드라마의 전부야. 그리고 플라토닉러브에도 드라마란 있을 수 없어. 왜냐하면 그런 사랑에서는 모든 것이 명백하고 순결하니까, 그리고..."
그 순간 레빈은 자신의 죄와 자기가 겪었던 마음속의 고투를 상기했다. 그리고 얼떨결에 덧붙였다.
"어쩌면 자네 말이 옳을지도 몰라, 정말 그럴지도... 그렇지만 모르겠어, 정말 모르겠어"
두 사람은 그들이 그들이 비록 친구이고 식사를 같이 하고 한층 더 친분을 두텁게 하는 술까지 나누어 마셨지만, 각자가 자신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상대에 대해서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을 통감했다. 스테판은 이미 여러 차례 식사 뒤에 /친밀함/ 대신 이러한 극도의 /소외감/을 경험했기 때문에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계 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