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아름다움 찾기
누구나 시간을 헤아리고 기록해야 한다. 누구나 공동체가 필요하다. 누구나 ( ) 하는 사람을 맞아들이거나 혹은 그들에게 작별을 고해야 한다. 내게 신앙이 없다고 해서 이 지구 상의 삶의 리듬을 따라 살고 싶은 욕망도 없는 것은 아니다.
샤샤 세이건의 에세이에 따르면, 시간은 그저 흐르는 개념이기에 인지하기 위해 자신만의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한다. 시간을 느끼기 위해 리듬을 부여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금요일 저녁에는 서점을 들려서 책을 사는 의식을 갖기로 했다. 그리고 주말에 읽는다.
사실 일주일은 계절처럼 천문학적인 근거가 있는 시간 단위는 아니다. 달의 위상 변화와 연관 지을 수는 있다. 달은 지구 둘레를 28일에 한 바퀴 도는데, 28은 7로 딱 나눠 떨어진 수다. 그래서인지 7일을 주 단위로 삼은 문화권이 많다. 그렇다고 한 주가 반드시 7일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고대에는 8일, 9일, 20일을 한 주로 택한 문화가 있었다. 프랑스 혁명기에는 프랑스 사회의 모든 것을 의문시하면서 달력도 바꾸어서 10일을 한 단위로 보는 체계를 택한 적이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도 20일을 한 단위로 삼았다.
우리가 시간을 경험하는 방식은 우리의 믿음과 밀접한 관련이 많을 때가 많다. 일주일 달력을 보아도 뚜렷이 알 수 있다.
영어로 월요일을 가리키는 ‘Monday’는 달 moon과 day 가 합쳐진 말이다. 화요일은 화성 Mars의 날이다. 수요일은 수성 Mercury, 목요일은 목성, 금요일은 금성, 토요일은 토성, 일요일은 해의 날이다
대체로 근로자는 Moon을 싫어한다. 나의 주관적인 의견을 덧붙이자면, Moon 보다 Mars가 더 싫다.
가끔 수요일은 쓰레기 요일이 아닐까 의문을 품는다. 한편, 노동의 맛을 알기에, 휴일이 더 달콤하게 느껴져서 좋은 것 같기도 하다.
여하튼. 오늘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토성의 날(토요일)이었다. 게다가 완연한 봄의 기운이 느껴졌다. 날씨가 미쳤다.
샤샤의 글대로, 계절은 굳이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인식할 수 있는 패턴이었다. 집순이도 집돌이도 모두 밖순이와 밖돌이가 되었는지, 길거리에 사람이 너무 많았다. 모두 벚꽃 의식을 행하기 위해 집 밖으로 나왔다. 길거리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친구랑 운동 끝나고, 인파를 피해서 제일 후미진 카페로 향했다. 한 폭의 그림 같은 창을 바라본다… 벚꽃이 날리면서 해가 창에 넘실거린다.
돌아오는 길에, 사람들이 따릉이를 다 털어가서, 새싹 따릉이만 덩그러니 남겨있다. 건장한 성인 여성은 새싹 따릉이에 몸을 실었다. 패들을 힘차게 밟으며, 중랑천을 가로질러서 집으로 귀가한다. 오늘은 운동도 하고 책도 읽고 기록을 하며 나만의 의식을 완성했다고 본다.
이번 주 수요일에 연차를 썼다. 길게 연달아 쉬는 것보다 빈도 있게 쉬어야 더 행복하다고 한다. 이번 주 수요일은 토요일과 같은 쾌감을 나에게 안겨줄 것이다.
암스트롱은 이런 개념을 ‘ 언제나 everywhen’라는 말로 표현한다. 지구가 해의 주위를 도는 일보다 더 ‘언제나’인 것은 없다. 우리가 경험하는 문자 그대로의 ‘언제나’에 가장 가까운 것이다. 50억 년 동안 이어져왔고 앞으로도 수십억 년은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땅이 있는 한
씨 뿌리기와 거두기,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그치지 않으리
-창세기-
계절, 낮과 밤, 요일 이외에, 당신은 얼마나 일상에 패턴을 부여하고 있나요? 가령, 저는 뚜렷한 기교가 없는 영화도 좋더라고요. 영화[카모메 식당]에서 주인공이 하루 일과가 끝나면, 수영장에서 평영을 하고, 영화[패터슨]에서 주인공이 점심시간에 시를 쓰던데.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운율이라면, 그 안에 아름다움이 숨어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