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검은 꽃

by 아메리카노

검은 꽃은 역사 소설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나, 읽기 시작했던 순간만큼은 '에네켄 한인'에 대해 무지했다. 일제강점기 시대에 일어났던 일의 대부분 배경은, 조선, 동경, 만주, 또는 상하이 정도라고 생각했다. 묵서가, 멕시코에서도 우리 민족이 고통받았다는 사실에 대해 전혀 몰랐다. 이 작품을 계기로 좀 더 고찰해 봐야 할 역사에 가까워졌다. 물론, 작품에 드러난 일이 전부 팩트가 아니라 픽션이라는 점을 고려하고 말이다. 제목이 일컫는 검은 꽃은, 에네켄이다. 에네켄은 '악마의 발톱을 거꾸로 세운 것 같은, 불꽃같기도 하고 웃자란 난초 같기도 한 그 식물'은 우리 민족에게 많은 생채기를 냈다. 노예무역은 흑인들을 대상으로만 일어난 끔찍한 사건이라고 알았던 터라 충격적이었다.


불과 100여 년 전, 일본이 조선을 침략했던 그때 살고 싶어서 천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나라로 향하는 배를 탔다. 부푼 희망을 가진 사람들의 신분은 다양했다. 머슴 출신, 박해당하던 신부, 도둑, 군인, 그리고 사대부 가족. 그들은 길고 긴 항해 속에서 마구 섞였다.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육지에 도달했을 땐 모두 공평하게 사람답게 살지 않을까 더 큰 희망을 품었을 것이다. 고향을 떠나 낯선 땅으로 가는 여정은 불편하고 어려웠지만 꿈은 깨지지 않은 상태였다. 유카탄의 에네켄 농장에 도착하는 순간 산산조각 나다 못해 짓이겨질 것이라는 것도 전혀 알 수 없었던 평화로운 때.


끔찍한 계약이 4년짜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3개월 만에 일본에게 끌려가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하게 만든 그 농장의 실태는 정말로 어떠했을까.



어느 농장에서 오셨습니까? 춘추쿠밀이요. 거기엔 통역이 있습니까? 물론 없지요. 통역도 없이 어떻게 일하셨습니까? 이정이 몇 살 아래의 진우를 보고 씩 웃었다. 소나 말을 부릴 때 어디 말로 합디까, 다 통하게 되어 있지요. 진우는 눈을 반짝이며 이정의 말을 들었다. 춘추쿠밀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독설이 눈을 비비며 말했다. 벌써 셋이나 죽었소. 칼에 맞아 죽고 채찍질에 죽고 자살하여 죽고. 190쪽


소설은 역사를 토대로 최대한 다양한 위치의 사람들의 감정을 보여주고자 했다. 조선에서였다면 인연이 될 수 없었던 사람들을 골라 서사를 엮었다. 머슴 출신의 김이정과 사대부 여식인 이연수의 애정이 특히 그렇다. 이들은 몸이 피투성이가 되어도 조선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일제의 만행을 너무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또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것은 연수의 아버지 이종도였다. 사대부랍시고 책상에만 앉아, 신 양반전의 행태를 보여주는 듯했다. 딸과 아들이, 아내가 고통받는데도 붓과 종이만을 생각하는 사람. 황족이랍시고 끝까지 정신 못 차리는 모습이 1센타보의 가치도 되지 못했다. 박수무당과 천주교 신분, 도둑의 구성도 흡인력 있었다.


중간중간 서술된 멕시코의 역사와 그들만의 사건들이 조금은 지루한 감도 있었다. 동시대의 이야기를 다뤄야 하는 것이 역사소설의 숙명이라고는 하나, 장편 소설이라고 하기에도 이미 너무 많은 인물들이 있는데, 마야의 사회적 갈등까지 얽혀 들어가니 조금 복잡해졌다.


한 해가 지났다.
그리고 또 두 해가 지났다.
더러 죽은 자, 달아난 자가 있었다. 245쪽


작품이 2부로 넘어가고부터는 또 다른 전개가 펼쳐진다. 1부가 사실적인 고통에 집중했다면 2부부터는 정말 소설 같은 이야기가 등장했다. 기대도 더 이상 할 수 없을 만큼의 시간이 흐른 뒤의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목숨을 이어나갔다.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진 이연수의 삶은 비참하고 끔찍한 사건들 범벅이었다. 오랜 과거 속 노예로 살던 여자들에게 너무도 흔한 일이라 놀랍지는 않았으나, 분노가 일어 읽어나가기 어려웠다. 그래서 소설에서만큼은 비현실적인 결말을 기대했는데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마무리된다.


계약이 끝나면 지옥을 모두 탈출할 것이라 믿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저앉았다. 그것이 나라 없이 사는 약한 자들의 삶이었다. 백성을 지켜 줄 국가가 없으니, 돌아간다 한들 또 다른 지옥은 아니었겠는가 그리고 나름의 방식으로 정착하고 삶을 마무리하는 것이 어쩌면 그때의 인지상정이라 여겨졌다.


이정은 가끔 일기에다 이렇게 썼다. 국가가 영원히 사라질 수 있을까? 그렇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혁명이 시작되고부터 이미 멕시코엔 국가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모두가 각자의 화폐를 찍고 다른 돈을 쓰는 자는 죽인다. 살육이 살육을 부른다. 힘을 가진 자들은 모두 멕시코시티로 진격한다. 그것이 곧 이 길고 긴 혁명의 시작과 끝이다. 벌써 수십만이 죽었다. 이것은 국가 때문에 벌어진 일인가 아니면 국가가 없기 때문에 벌어진 일인가. 대한제국이 있었지만 우리는 행복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의 멕시코도 마찬가지다. 어디에서나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더 센 국가가, 일본이, 그리고 미국이, 약한 나라를 지배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내전을 지원한다. 295쪽


비단 1900년대의 일만은 아니다. '국가'와 '사람답게 사는 법'을 논하고자 한다. 이 작품은 검은색으로라도 피고자 했던 꽃 같은 삶들에 대한 서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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