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도시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그 날에는, 눈이 조금씩 내렸다. 정류장에서 나는 이십 분 넘게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추웠지만 버틸 만 했다. 버스가 당연히 올 거란 믿음 때문이었다. 멀리 사거리에서 신호대기 중인 버스를 발견했다. 직진해서 그대로 내 앞으로 오면, 타고 돌아 가기만 하면 되었다. 아주 평범한 일이었다. 그런데 버스는 기존의 노선을 뒤엎고, 좌회전을 해 눈앞에서 사라졌다. 결국 나는 택시를 타야만 했다.
“어떻게 버스가 갑자기 노선을 바꿔?”
내가 살던 도시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여긴 그게 흔한데, 날씨가 궂어서 탈 사람 없어 보이니까 태운 사람들만 데려다 주는 거죠.”
대중 교통이 그게 가능해? 그제야 나는 작은 도시의 룰을 알게 되었다.
서울은 정해진 시간에 버스가 오지 않으면, 지하철이 오지 않으면 사람들이 화를 냈다. 단 몇 초라도 더 시간을 많이 쓰기 위해, 가까운 빠른 환승이 몇 번째 칸에서 가능한지 외우고 다녔다. 남들보다 빠른 걸음으로 하루를 바쁘게 보내는 것이 서울의 법칙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미국에서 날아 온 커피숍의 커피를 맛 보기 위해 몇 시간씩도 줄을 섰다. 서울은 눈을 뜨자마자부터 잠들 때까지 소소한 경쟁으로 분주한 곳이었다. 그런데 그보다 조금 작은 도시에선 버스가 노선을 바꾸었다고 아무도 화내지 않았다. 아무리 맛있는 집도 줄을 서서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다. 편의점에 인기 신상 메뉴가 깔리는 속도에도 차이가 났다. 그 사실에 놀라는 것도, 음식이 빨리 나오지 않는다고 얼굴을 붉히는 것도 언제나 나 뿐이었다.
크면 많고 작으면 적다. 그래서 작은 도시에선 모두 너그러웠다. 급하게 무언가 하지 않아도 됐다. 버스만큼 나를 놀라게 한 건 아이들이었다. 대부분 어른이 되어도 작은 도시를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이유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서라고 말했다. 서울에선 몇 억을 갖고 있어도 내 집 마련은 어렵다. 아등바등 평생 벌어도 벌지 못한 그 돈을 위해, 사람들은 계속 바쁘고 화가 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작은 도시에선 일 억이 안 되는 돈으로 내 이름으로 된 아파트를 살 수 있었다. 그런 계산법을 알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은, 단 한 번도 초조함이라고는 느껴본 적 없는 모양새였다. 그래도 사람이 큰 꿈을 꿔야지! 라며 흔한 어른들의 생각을 내뱉었지만, 큰 도시에서부터 품고 끙끙대던 걱정들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세련됨이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그 도시에서, 조금씩 치유를 배웠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버스에게 화내지 않고 택시를 탔다. 북적대지 않는 식당에서 먹는 밥은 다 맛이 좋았다. 시끄럽지 않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일도, 큰 행운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