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많이 갖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고, 의외로 잘 잃어버리는 것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다. 나는 참 외로움도 많이 타고 심심한 걸 못 견디는 성격이라 늘 필요했다. 어떤 때는 나를 잘 드러내서 얻을 수 있었는데, 어떤 때는 나를 너무 드러내서 잃은 적도 여러번이었다. 십대나 이십대엔 정말 가진 것이 너무 없어서 친구에게 집착할 수 밖에 없었다. 삼십 대가 되고 나니, 친구, 아니, 사람의 필요성을 생각할 겨를이 없어진다. 어차피 모두 남이다. 나 살기가 너무 바쁘다.
많은 사람들은 사람이 걸러지는 시기, 친구가 걸러지는 시기 중 하나를 결혼식으로 꼽는다. 나 역시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건 사실 우정과 돈의 싸움이다.
제대로 된 첫 연애가 처참하게 깨졌을 때, 그 해 나의 친한 친구가 결혼을 하게 됐다. 나는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실연의 아픔으로 온갖 시련을 경험하고 있던 시기였다. (물론 이건 철저하게 나의 입장이다.) 나는 사랑도 잃고 세상도 잃은 기분으로 살고 있었는데, 친구는 내가 약속된 모든 것을 제대로 이행해 주길 바랐다. 남자친구와 헤어지기 전, 그 친구에게 ‘네가 결혼 할 때 내가 부케도 받고 축가도 부를래.’ 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나의 상황은 달라졌지만 친구의 상황은 바뀐 것이 없었다. 구두로 한 약속이지만 나는 온전히 저걸 이행해야 할 것 같은 책임감을 느꼈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슬픈데 온전히 친구의 행복을 축하할 수 있을까. 고심 끝에 장문의 메시지로 부케 받는 것을 거절했다. 친구는 내게 서운한 기색을 보였다. 결혼식이 이주 정도 남은 상황이었다.
요즘은 신부들이 부케 던지는 식순을 없애는 추세라고 한다. 그래, 오죽하면, 나도 이제 늙은 마당이라 나중에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내 결혼식에 더 이상 부케를 받을 미혼자가 없을 것 같아 가끔 걱정 됐는데, 참으로 잘된 유행이 아닌가 싶었다. 그 친구가 결혼 하던 그 해에도, 그런 유행이 시작될 조짐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우린 서로 마음 상하는 일이 없었을까? 중요한 건 나는 결혼 선물도 했고, 축가도 불러주었다. 내가 덜 잘못했다는 소리다.
결혼식으로 잃은 친구라면 또 있다. (이 글이 과연 친구에 관한 글인지 결혼식에 관한 글인지 혼란스럽다.) 3개월 연애에 속도 위반으로 부랴부랴 결혼한 그 친구, 생전 처음 가보는 지역에서 하는 그 결혼식에 나는 십년지기의 도리를 하기 위해 다녀왔다. 이제와 하나하나 치사하게 따지자니 우습지만, 그 친구는 그럴 줄 몰랐다, 가 솔직한 심정이다. 믿은 만큼 배신감이 컸달까.
나는 굉장히 변덕이 심한 성격인데 그게 친구에게도 적용되는 편이었다. 몇 명의 친구를 적당한 거리에 늘 두고, 어떤 시기에는 A와 어떤 시기에는 B,C와 친밀하게 지냈다.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어차피 모두 남이니까, 내가 스트레스 받으면서 만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같이 좋아하는 친구들이 좋다. 내가 싫어하는 것을 같이 싫어해주는 친구들이 좋다. 결국 철저하게 내 편인 친구가 나는 필요하다. 자신 있는 건, 나도 철저하게 그들의 편이 되어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사실 이제 이런 사소한 취향이 맞지 않는 친구들은 더 이상 곁에 없다. 지금 남은 몇 안되는 친구들은 내가 웃을 때 같이 웃어준다. 아니 진심으로 웃는다. 고맙게도,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그거면 충분하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