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처럼 살아야지

자주 등장할 저의 고양이들을 소개합니다

by 정윤

고양이 두 마리, 솜이와 유자를 키우고 있다. 여느 집사님들처럼 마음으로 낳아 통장으로 기르고 있다.


바야흐로 에세이 세상(?)의 중심에 선 요즘, 고양이와 관련된 책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도 우리 고양이를 떠올리면 하고 싶은 말이 차고 넘쳐 입이 바빠지려고 한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조금 더 얹어 두 배정도 더 이야길 하고, 고양이를 안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반절로 줄여 조금만 이야기하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고양이가 요물이라는 옛말은 틀린 것이 하나도 없다. 고양이가 내게 준 사랑은 내 세상을 바꾸어준 요술같기 때문에 요술을 부리는 요물이 딱 맞는 것이다.



호에엥?

솜이는 처음 봤을 땐 털색이 뽀얘 솜이라고 이름 지었는데, 살다 보니 얼굴이 점점 까매지고 있다. 가족들과 우스갯소리로 혼자 햇볕에 나가서 밭일하다가 왔냐고 할 정도로 얼굴의 털색만 자꾸 어두워지고 있다. 귀여운 솜이는 혼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고, 눈치가 빨라 여태껏 사고 한 번을 친 적이 없다. 그렇다 해서 가족들과 안 친한 것도 아니고, 부르기만 해도 간드러지게 대답을 한다. 물리적 거리를 좀 둔 채로 갖은 아양을 떤다. 특히 엄마를 큰 고양이로 생각해서 엄마의 주변에서 자는 것을 좋아하고, 냥냥거리며 엄마와 대화하는 것을 즐긴다. 그럴 때 보면 똑똑한 것이 나를 닮은 것 같긴 하다.




어이구, 인간아......(유자)

반면 유자는 맹한 구석이 있는 치즈 색깔의 고양이다. 솜이보다 덩치가 조금 더 큰데, 울 때 '구우우'하는 소리를 낸다. 솜이와 달리 낙천적인 것 같다. 문을 열어보려고 매달렸다가 안 열리면 그 바닥에 누워 기지개 켜듯 문을 밀어보고, 안 열리면 그런대로 바닥에 누워 있는다. 마치 그 방 문을 열어보려고 한 적이 없는 것처럼 그냥 누워있다. 솜이에 비해 사람 손을 많이 필요로 하지만 자기 입으로 도와달라고 부르는 일은 잘 없다. 언제 한 번은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고양이 화장실 앞에 아무렇게나 누워 자고 있는 것을 본 적도 있다. 이 넓고 넓은 집을 두고 왜 그런 곳에서 자나 싶었지만, 끈기 있는 유자가 또 무언갈 하다가 그대로 잠들었을 거란 걸 알고 있다.


이렇게 성격이 다른 솜이와 유자의 일상 중 가장 중요한 과제는 '간식 얻어내기'인데, 이 과제에는 둘의 역할이 나름 분담되어 있다. 솜이가 갖은 애교로 엄마를 부르고, 배를 보여주고 바닥을 구르며 귀염을 떤다. 그럼 어느 구석에서 자고 있던 유자가 슬그머니 간식 통 앞에서 기다리다가 함께 먹는다. 재주는 솜이가 부리고, 간식은 유자가 함께 먹는 것이다! 반대로 유자가 솜이에게 도움을 주는 일이 있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이 역할에 있어서는 항상 고정적인 것 같다. 하지만 유자는 먹는 속도가 느리고 굳이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먹는 습관이 있어 날쎈 솜이에게 다 빼앗기는 날도 있으니, 조삼모사다.




고양이를 보고 있으면 고양이처럼 살아야겠단 생각이 절로 든다. 부지런한 솜이를 보면 솜이처럼 살아야지 다짐하게 된다. 부지런히 움직이면 뭐 하나라도 더 먹을 수 있고 눈에 띌 수 있겠다 싶은 것이다. 그러다가 유자를 보면 유자처럼 살아야지 하고도 생각한다. '가만히 있어도 떡이 떨어지기도 하는구나(될놈될; 될 놈은 된다)', '안 되는 것도 해볼 만큼 해보고선 딴 걸 하면 되는구나'같은 삶의 교훈들을 주곤 한다.


고양이들의 고충을 다 알 수는 없지만,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열심히 사는 것이겠지. 솜이는 솜이 나름의 행동 양상대로 오늘도 간식을 얻기 위해 엄마를 부지런히 쫓아다니고, 아닌 척 해도 유자는 귀를 열어둔 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사를 엄격하고도 근엄하게, 아주 진지하게 생각하는 버릇을 고양이들 곁에 살다 보면 좀 버릴 수도 있다. '진지하게 문을 열어보려고 했으나 잘 안돼서 누워있었어요.' 하는 유자나, '진지하게 뛰어올라보려고 했는데 떨어진 김에 다른 데로 갑니다.' 하는 솜이를 보고 있으면 말이다.


유자와 솜이


하고 싶은 거 해라, 너 잘하는 거 해라.

고양이들이 매일 몸소 보여준다.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이 안된다고 매일 말하는 나를 나의 어린 고양이들이 지극히 달랜다. 서성이는 내게 이 시간들의 교훈을 차차 알려준다. 고양이 세계의 시간으로!



p.s. 언젠가 솜유자, 너희가 한글을 배워 이 글을 읽게 될 것을 대비해 고맙다는 말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