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순두비 Aug 26. 2022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망설일 건가요?(하)

첫 상담을 마치며

교수님께서 질문을 더 하지 않으셔도 여쭤보고 싶은 게 너무 많아졌다. 내 기도에 단 한 번도 응답하지 않던 신을 만나 묻고 싶은 걸 쌓아두고선 하나씩 답을 듣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답이 없던 질문들. 혼자서 수년간 파도 파도 끝나지 않던 무저갱에서 손끝에 무언가 닿는 순간이었다.

"다 제 감정이 아닌 것 같아요. 교수님. 길 가는 강아지가 행복해 보이면 강아지가 너무 행복해 보여서 나도 행복하고 싶고, 누군가 다치고 살해당했단 기사를 보면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마음이 또 아파요. 근데 이게 다 제 것이 아니잖아요. 책을 읽고, 노래를 듣고 영화를 봐도 제 이야기가 아닌 것들로부터 가져오는 감정들에 동요하면서도 이것이 공허해요."
"자살의 문제가 아니라, 정말로 마음이 이젠 죽기 직전이라고 보내는 신호예요. 그러니까 정 씨는 자기 마음을 찾아가도록 해야 해요. 직업이 없고, 남들과는 다르게 사는 것의 문제가 아닌 거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인생에서 나 자신이 있어야 해요."
"그걸 어떻게 해야 하는지조차도 이젠 모르겠어요. 제가 뭘 원할까요?"
"엄마, 아빠의 감정과 분리하는 것부터 해보아요. 부모님 말씀에 반기도 좀 들어보고, 여태 하지 않던 걸 해보는 거죠. 정 씨가 좀 달라지면 부모님과 마찰이 생길 거예요. 쟤가 왜 이러지? 하실 거란 말이죠. 그럼 내가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돼요. 정윤 씨, 고양이 키우죠? 고양이가 말 안 들을 때 어때요?"
"하고 싶은 게 있나 보다 해요."
"맞아요. 자식은 부모님 뜻대로 살려고 태어난 게 아니니 속 썩이면서 자라는 게 당연한 거예요. 정원 씨의 고양이처럼요. 하고 싶은 걸 하고 속도 썩이는 거죠. 그렇지만, 부모님의 사랑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잊지 말아요. 무슨 일을 해도 부모님은 정윤 씨를 사랑해요."

고양이들은 나와 다르다. 내가 자고 싶을 때에도 고양이들은 놀고 싶으면 일어나서 뛰어다닌다. 그럴 때면 나는 고양이와 놀아주어야 하는지 무시하고 잠을 자야 하는지 고민하다 일어나 애들을 한참 보고 있는다. 애들이 하고 싶은 게 있으니 나와 늘 같은 생각일 수 없는 건 당연하다. 하고 싶은 것이 없는 삶, 무디게 살아온 20대가 떠올랐다. 아빠와 엄마 말을 잘 듣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 믿었던 내 숨겨진 원칙 하나가 또 깨졌다. 깨지고 나니 보이는 것이 진실이라니.

"교수님, 그런데 엄마가 저를 걱정하시는 건 당연한 것 같아요. 제가 쓰러진 적도 있고 밤길에 차를 몰고 응급실까지 오셨었던 적도 있고... 예전에 혼자 살 때 낮잠을 좀 깊이 잔 적이 있었는데요. 엄마가 전화를 하셨는데 제가 그것도 못 듣고 잤거든요. 그런데 전화를 10통도 더 하신 거예요. 혹시나 제가 아픈가 하셨을 거예요. 엄마를 안심시킬 겸 떨어져 사는 내내 엄마랑 하루에 3번씩은 통화를 했어요."
"정윤 씨가 크게 아팠으니 어머니께서 그러실 수는 있죠. 하지만 엄마의 불안은 엄마가 다스리는 거예요. 정윤 씨가 같이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도 엄마를 걱정시키지 않는 게 저도 마음이 편하니까요."
하고 말하는데, 착한 아이 콤플렉스란 게 있으면 나일까 하는 생각도 얼핏 들었다. 어르신들이 보통 부모님 걱정시키지 말란 말을 하면 이미 그러고 있단 답을 한다. 그럼 응당 듣게 되는 '착하네.' 같은 반응을 교수님께 기대한 것도 아니었지만, 여태 들어온 것처럼 교수님께도 그런 비슷한 말을 듣게 될 줄 알았다.

"왜 부모님을 걱정시키지 않아야 하죠?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아닌데. 부모님을 걱정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그 뼛속 깊은 관념조차 정윤 씨의 것이 아니에요.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거지."

적어도 부모님을 실망시키지 않으면, 부모님을 걱정시키지 않으면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던 나도 모르던 내 인생관과도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철저하게 나는 배제된 채 갖추어진 나의 모든 것들이 낯설고 물설었다. 그래서 교수님과 대화를 할수록 나는 닿는 데가 있으면서도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허하다는 생각을 하고 살았지, 정말로 내 속이 이렇게 비어있을 줄은 몰랐다. 나로부터 비롯된 것이 없다는 게 슬펐다.

"저는 그런데도 집에 있으면 부모님 이야기를 늘 들어주는 입장인데요. 그렇다 보니 부모님한테 속 얘기를 잘 못하겠어요. 마찬가지로 친구들한테도요. 얼마나 힘든지 기분이 어떨지가 눈에 선하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깊은 얘기가 잘 안 나와요. 모든 일이 해결되면 자꾸 털어놔서 서운하다는 얘길 듣기도 해요."
"그걸 정서적 부모화라고 하거든요. 정윤 씨는 집에서 막내인데, 부모님의 이야길 들어주다 보니 마치 부모님의 부모가 된 것 같은 거죠. 서열은 제일 아래, 정신적으론 부모님을 책임지는 위치? 말이 안 되는 거죠. 앞으론 부모님께서 정윤 씨가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지 않을 때나 듣고 싶은 이야기가 아닌 걸 얘기할 땐 거절의 의사부터 밝혀보는 거예요. '그런 건 친구랑 이야기하면 안 돼?'라든지, '나 지금은 이야길 들을 상황이 아냐.' 이렇게 말하는 거죠. 그리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엄청 신뢰받고 있겠네요. 공감도 잘해주고, 내 마음처럼 말해 줄 거 아냐. 그렇지만 본인 속은 썩죠. 지금은 남들 도울 때가 아니에요. 남들 돕고, 남들 이야기 듣고, 남과 관련된 건 내가 서고 난 다음, 그다음이에요."

왜 힘든 걸 말을 안 했냐고 그랬다. 우울증을 털어놓기 위해 편지를 써서 보냈을 때 돌아온 따뜻한 답 대부분이 그랬다. 이제부턴 같이 털어놓고 맛있는 거 사 먹고 잊어버리는, 그런 삶을 살아보자고들 했다. 그런데 사실 그게 쉽지가 않았다. '회사 일이 너무 힘들어. 진짜 관둘까? 그 과장 새끼 미친 것 같은데...', '아, 걔만 보면 얼굴에 열이 오르는데 이거 화병 아니냐?' 같이 사소한 대화에서 전해오는 감정들이 내겐 너무 크고 무거웠다.

그러니 내 감정은 나만 알자는 결론에 도달했었다. 다 해결이 되고 말하면, 서로 걱정할 게 없으니 그렇게 살자고. 그런데 이상하게도 친구들은 서운해했다. 내가 이 지경이 된 게 자기들이 부족한 탓 같다고도 말했다. 자기들만 이야길 털어놓는 게 미안하다고 했다. 늘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었는데 혹시 나를 친구로 생각하지 않은 것이냔 말까지도 했지만, 짐을 나누지 않는 게 친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정작 나누지 않으니 마음의 무게도, 인생의 허무함도 무엇 하나 가감된 것이 없이 그대로였다. 매일.

"정윤 씨는 지금 균형이 좀 많이 무너져 있어요. 다른 사람들로 채워 넣은 거죠. 그러니까 내 것이 없어서 불안하니까 안정감을 느끼고 싶어서 몸으로 드러나는 거예요. 저도 고등학생 땐 머리카락을 손으로 자꾸 만지는 버릇이 있었어요. 친구의 사랑으로 고쳤지만."
"엇, 저도 태어났을 때부터 없는 머리카락을 만지고 자고 있었대요. 그래서인지 저도 머리카락을 만지는 걸 좋아해요."
"태어날 때부터 기본적으로 좀 그렇게 태어날 수도 있지만, 안정감을 느끼려고 하는 행동들인 거죠."

"그럼 제가 자해를 하는 건요? 고치고 싶은데..."
"그런 지 얼마나 됐어요?"
"20대 중반쯤 그러다가 고쳤었는데, 또 그러네요. 한 넉 달 됐나? 이번엔 쉽게 안 고쳐져서요."
"얼마큼? 어디에?"
"보여드릴 순 없긴 한데, 발뒤꿈치 쪽이에요. 피부 색깔이 완전히 달라요. 피를 볼 때도 있고 해서."
"보여준 사람은 있어요?"
"가족들과 남자 친구는 봤어요. 특히 오빤 하루에 한 번씩 방에 들어와서 상처가 더 심해졌나 보고 가요."
"음... 그거 그냥 더 해요."
"네?"
"더 하라고. 정윤 씨 마음이 안 편하니까 그거라도 하고 있는 건데, 더 해야지. 정윤 씨 마음이 괜찮아지면 그것도 절로 나아요. 그리고 그걸 왜 고치고 싶어요?"
"미관상 안 좋으니까요?"
"미관상 안 좋은 게 어때서?"
"남들이랑은 좀 다르잖아요. 피부 색깔이."
"다른 게 나쁜 건가요?"
"음... 아뇨. 그렇진 않아요. 아, 그런데 저는 사실 이 상처에 대해 별생각이 없었어요. 그런데 엄마가 하루는 슬리퍼를 신고 다니는 저를 보고 그러셨어요. 네 발을 보면 사람들이 놀라겠다고요. 놀란 건 엄마였을 것 같은데 말이에요. 어쨌든 그때부터 상처를 숨기려 했어요. 이것도 제 생각이 아니네요."
"그렇죠. 그러니까 마음 편해질 때까지 해요. 첫 번째로 말한 이유가 아파서가 아니었잖아요. 아프니까 안 했으면 좋겠다는 식의 걱정과 그런 마음이어야 해요."

얼마나 아플지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패인 상처를 보면 그냥 오늘은 너무 과했단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마음 아파하는 것은 이런 상처를 본 적 있는 가족들과 남자 친구였다. 엄만 내 발을 제대로 마주한 날 꿈을 꾸면서도 비명을 질렀다. 나를 사랑하는 법은 애를 써야 겨우 알아가는 것이었지만,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디에나 있었다. 웅크렸다 일어나 둘러보니 보이는 새삼스럽지 않은 것들.

지금 하고 있는 자격증 시험에 대해서도 물어보셨다. 내가 아마 재미없어할 것 같다고 하셨다. 진짜로 재미가 없는데, 그냥 해보고 있다고 답했다. 여기서도 '그 정도 대학을 나왔으니 이건 턱 하고 붙겠지.'하고 말한 아빠의 기대가 떠올라 말씀드렸다.
"응~ 그건 아빠 생각. 이렇게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해요. 그리고 재미없으면 하지 마요. 재미있는 거 해야지."
"저는 글 쓰는 게 좋아요. 우울한 거만 적긴 하지만, 다 쓰고 보면 내 새끼 같고 뿌듯해서 좋아요."
"음, 그렇구나. 정윤 씨, 작가한텐 그런 경험들이 다 도움 되니까. 지금은 20대의 시간들이 다 의미 없고 고통스러운 시간들 같죠? 그런데 상담을 하면서 이제 그런 시간들을 견딜 수 있는 고통으로 만들어 가는 거예요. 이유가 있으면 견딜 수 있어. 예술한다는 사람들이 자기 살 파먹어서 하는 거잖아요. 이런 시간들이 있어서 자기를 닮은 예술작품이 나오는 거예요."

정해진 것 하나 없는 세상에서 내일은 어떻게 맞는 건지 몰라 헤매었다. 점을 봐서 내일을 알게 되면 나아지나 싶어 타로점을 미친 듯이 보고 다닐 때도 있었다. 다 비슷한 얘기, 모호한 얘기, 나의 내일과는 닿아있지 않은 것 같은 희망찬 말들만 해줬다. 그것도 이내 질려갔다. 그리고 첫 상담을 마치고 오래간만에 나는 일어나고 싶은 아침을 맞았다. 특별한 일이 없는 오늘이었지만, 이유 있는 하루가 되면 견딜 수 있는 날이 된다는 말로 알아들어서인지 간밤엔 점사도 보지 않았다. 불안에 떨며 붙잡아두었던 미신은 떠나보내고 나 자신만 남겨야겠단 생각을 했다.

상담이 끝나감에 따라 오늘 어땠냐는 교수님의 질문에 또 한 번 눈물이 터졌다. 교수님께서야 말로 텅 비어있는 제 인생 이름 칸에 적당한 이름을 찾아주실 수 있을 것 같아서 너무나 기쁘고, 도움을 받을 수 있어 또 감사한 시간이라고 하니 교수님께서도 인연이 닿아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이 고맙다고 하셨다.


상담을 마치고 다음 주를 기약하며 사무실을 나섰다. 푸른 나무들 사이로 오빠와 오빠의 여자 친구가 70분이나 되는 시간 동안 앉아 나를 기다려주었다. 연두색 이파리가 황금색으로 보였다. 사진을 하나 찍어주려고 했는데, 내가 나온 것을 알아채곤 일어서는 두 사람을 카메라에 담진 못했다. 인생은 좀처럼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다. 만만히 볼 구석이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좋아하는 걸 해봐야지, 봐야지.

진정한 부산인으로 만들어주겠다며 부산대학교의 산속에 있는 솔밭집에 갔다. 부산대에 재학 중인 상담을 소개해 준 친구 생각도 많이 나고, 새로워진 내 인생에 대해 고민하며 밥을 먹었는데 행복해서 자꾸 코가 찡했다. 가까이 솟은 까만 나무 사이로 보이는 저 먼 하얀 달을 보는 것이 인생일까.

이전 09화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망설일 건가요?(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