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은 길었지만, 분단 전 세월은 더 길었지요“

허수경, "길모퉁이의 중국식당"

by yoonshun

"...베트남이라는 나라의 역사나 산수 등등을 저는 잘 알지 못합니다. 다만 그 나라가 백년 동안 프랑스의 식민지였다는 것, ... 그런 거대한 역사들은 이 요리책에는 들어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 이름하여 '프랑스 식민지 스테이크'. 고추기름과 마늘, 검은 식초로 쇠고기를 재운 음식을 그렇게 부른다고 이 책에는 적혀 있습니다. ...운동회나 소풍 때 언제나 우리를 설레게 했던 점심 도시락, 김밥이야말로 얼마나 식민지적인 음식인지요. ...이 음식은 그러나 얼마나 끈끈히 우리의 추억을 얽어매고 있던가요. ... 제가 추운 신촌 거리에서 먹던 오뎅 국물을 그리워하는 것처럼요." (p.39-40)


"...거대한 기념물은 그 기념물대로 중요합니다. 그러나 역사는 거대한 기념물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평범한 생활이 그 안에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고고학자들이 거대한 유물 발굴에 열을 올릴 당시 유럽의 제국주의가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었지요. 그때 세계 각 지역에서 식민지들이 발생했고 국가 간의 패권주의가 인류를 전쟁으로 이끌었습니다. 평범한 사람의 일상을 해석하는 것이 소중한 이유는 그 안에 평화주의의 정신이 깃들여 있기 때문입니다.”

(p.128)


"청산되지 않은 시대를 두고 다시 다른 시대를 시작하려는 일에는 망설임이 필요하다.“ (p.133)


“독일인들이 제 손으로 직접 히틀러를 뽑은 것은 1933년. 히틀러가 자살을 한 것은 1945년. 십이 년 동안 지속된 히틀러의 정치와 전쟁은(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히틀러 혼자서 그 정치와 전쟁을 치르지 않았다는 것. 그의 뒤에는 수많은 독일인들이 있었다는 것. 그들은 자발적으로 그리고 자신의 확신에 따라 히틀러를 밀어올렸다) 그후 오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독일인의 집단의식 속에 무시무시한 상처를 남겨놓았다. 오십 년 동안 그들은 타의에 의해서든 자의에 의해 서든 히틀러 시대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써야 했다. 그러나 이제쯤이면, 이만큼이면, 그 그늘에서 벗어나지 않았을까, 하는 사이, 히틀러의 시대는 독일인들의 목덜미를 다시 거머쥔다.” (p.175)


"고고학의 사실이 현실정치의 선전물이 되는 것을 우리는 자주 목격한다. 그 민족의 문화적인 자존심이라는 명목 아래 잘못 해석되고 이용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살았던 수메르인들은 현재 그곳에 살고 있는 아랍인들과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으며 소아시아에 살았던 히타이어트인 들은 현재 그곳에 살고 있는 터키인들과 아무 혈연관계가 없다. 고대로부터 오리엔트 지방에 살아온 많은 민족들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해체되거나 다른 민족집단에 흡수되거나 사라진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 또다른 집단들이 들어오고 그곳에서 살아간다. 사람들은 움직이고 살고 죽고, 또다른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살고 죽는다.“ (p.186)


"...나는 발굴지에서 나온 철기나 청동기 부스러기들을 앞에 두고 선생의 시를 읽는 나만의 즐거움을 누린다. 이성을 사랑하나 이성만을 신뢰할 수는 없는 것이다." (p.239)


"...독일은 팔십년대에 이미 통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동서독 학술 교류도 그 준비 중의 하나였다. ...동독 아카데미에서 일을 하면서도 노이만 교수는 서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수업을 할 수가 있었고, 디터만 교수는 동베를린에 있는 박물관에서 유물 연구를 할 수 있었다.

... 언젠가 나는 그 두사람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 당시 당신들을 이어주었던 공통의식은 무엇이었는가, 라고. 두 사람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분단은 길었지요. 하지만 분단 전의 세월은 더 길었지요. 분단 이전의 역사를 우리는 기억했습니다." (p.248)


허수경, "길모퉁이의 중국식당", 문학동네, 2003.


매거진의 이전글“언어가 달라지면 감정도 달라지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