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출신 유대계 바이올리니스트의 언어론

"기돈 크레머, 젊은 예술가에게"

by yoonshun

"평생의 대부분을 러시아어로 의사소통하며 살아왔지만 (반면 모국어는 독일어다), 1997년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에서 단원들을 모아 크레메라타 발티카를 창단하면서 리가에서 학창시절 배웠던 라트비아어로 ‘회귀’했다. 기본적으로는 러시아어와 영어를 번갈아가며 작업했지만, 내 고국 출신 단원들과는 기꺼이 라트비아어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따라서 요즘은 여러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여기에는 앞서 말한 독일어와 러시아어, 라트비아어 등 ‘태어나면서부터 깨친’ 언어와 영어, 서툰 프랑스어까지 지금껏 세계를 유람하며 ‘습득’한 언어가 모두 포함된다. 그래도 내가 가장 편하게 구사하고 그런 만큼 사용 빈도도 높은 언어는 독일어와 러시아어이다." (p.127)


"그러나 요즘 연주자들은 악기 연주 기법 면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최고 수준에 올라서 있지만 그럼에도 개성이 담긴 독해를 모험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영어가 의사소통의 제1수단으로 세상을 지배해 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의 현상이 음악계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일상적인 필요를 해결하기 위해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의 수가 그 어느 때보다 많아진 것이 작금의 추세다. 하지만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언어 구사 스타일과 어휘를 선택하는 미묘한 뉘앙스는 어떻게 되고 말았는가? 아니, 심지어 문법의 정확성은 또 어찌되고 말았는가? 이제 이런 것들은 더이상 중요치 않다는 말인가? 그 어느 언어(음악을 포함하여) 건 간에 고작 기법적인 면만 알아가지고서야 깊은 곳까지 더듬으려는 노력이 없는 연설이 될 뿐이라는 걸 사람들은 모르는 걸까?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언어적 지평이 오직 영어로 제한되면 프랑스어나 이탈리아어, 러시아어 등 다른 언어로 기록된 보물들을 알아볼 눈을 잃고 만다. 정보가 넘치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말들 하는데, 치러야 할 값어치가 너무 무겁다. 음악을 해석하는 자들이 가시적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반드시 필요한 ‘함축’을 간과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의 현상이다." (p.193)



기돈 크레머, 젊은 예술가에게, 이석호, 홍은정 옮김, 포노, 2017

Briefe an eine junge Pianistin,

Albtraumsymphonie,

Deklang eines Interpreten, 2013

Searching for Ludwig,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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