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아스 카네티, "자유를 찾은 혀: 어느 청춘의 이야기", 2022.
Elias Canetti, "Die gerettete Zunge: Geschichte einer Jugend", Fischer Verlag, 1977.
도나우강 하류에 위치한 루세, 내가 태어난 그곳은 어린아이에게는 환상적인 도시였다. 내가 만약 그 도시가 불가리아에 있다는 말만 한다면 소개를 제대로 하지 않은 셈이리라. 그 도시에는 정말로 다양한 지역 출신의 사람들이 살았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는 하루에도 일고여덟 가지 언어를 들을 수 있었다. 시골에서 자주 올라오는 불가리아 사람들 외에 튀르키예 사람들도 많았다. 튀르키예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살았다. 그리고 튀르키예인 동네 바로 옆에 세파라드 유대인 거주 구역인 우리 동네가 있었다. 그 밖에도 그리스인, 알바니아인, 아르메니아인, 집시들이 있었다. 도나우강 저편에서 루마니아 사람들이 건너왔다. 전혀 기억나지 않는 내 유모도 루마니아 사람이었다. 간혹가다 러시아 사람들도 있었다. (p.15)
몇 달 뒤 학교에서 돌아온 내게 장엄하면서도 흥분되는 어떤 사건이 일어났다. 그 사건이 그 뒤로 펼쳐질 내 인생 전체를 결정지었다. 아버지는 내게 책을 한 권 가져다 주었다. ..어린이용 “아라비안 나이트”였다. … "아라비안 나이트”를 읽고 난 후에 “그림 동화” “로빈슨 크루소” “걸리버 여행기”, 셰익스피어 이야기, “돈키호테” 단테 “빌헬름 텔”을 읽었다. …훗날의 나를 구성하는 거의 모든 것이 내 인생 일곱째 해에 아버지 덕에 읽은 책들 속에 담겨 있었다는 걸 쉽게 입증할 수 있을 것이다. 이후 내가 벗어나지 못한 인물 중에 오직 오디세우스만 그 책들에서 빠져 있었다. (p.80)
나는 아버지가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버지에게는 음악과 연극이 책 읽는 것보다 더 큰 의미를 가졌다. 아래층에 있는 식당에는 피아노가 있었다. 아버지가 출근하지 않을 때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부모님은 거기서 연주하곤 했다. 아버지가 노래를 부르고 어머니는 피아노 연주를 했다. 늘 독일 가곡들을 연주했는데, 보통 슈베르트와 뢰베의 곡이었다. 누구의 곡인지는 몰랐지만 나는 ‘들판 위의 무덤’이라는 놸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아직 독일어를 알아듣지 못했다. …내가 배운 첫 독일어 단어들은 들판 위의 무덤이라는 노래에서 나왔다. (p.86)
내 머릿속은 항상 독일어 문장들과 그 영어 뜻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머니는 어떤 일도 쉽게 하면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언어를 공부할 때는 책이 나쁘다는 것이었다. 언어는 구술로 익혀야 하며 그 언어에 대해 뭔가를 알고 난 후에야 비로소 책이 무해하다는 것이었다. (p.139)
내가 “로빈슨 크루소”를 좋아했기 때문에 어머니는 스벤 헤딘의 “극에서 극으로”를 선물해줬다. 세 권짜리 책이었는데,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마다 한 권씩 차례로 받았다. … 아프리카를 탐험한 리빙스턴과 스탠리, 중국에 간 마르코 폴로 등 온갖 나라로 떠났던 탐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모험 가득한 탐험 여행을 통해 나는 지구와 여러 민족에 대해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이런 방식으로 시작했던 일을 어머니가 이어나갔다. …어머니는 나와 함께 실러는 독일어로, 셰익스피어는 영어로 읽기 시작했다. (p.162)
어머니의 가장 오랜 친구였던 올가는 러시아인이었다… 어머니와 올가는… 프랑스어로 이야기했는데… 나는 톨스토이라는 이름이 언급되는 걸 들었다. 그는 불과 몇 년 전에 죽었다.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말할 때 보이는 존경심은, 내가 나중에 톨스토이가 셰익스피어보다 더 위대한 작가냐고 물었을 때 어머니가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주저하며 마지못해 아니라고 부정할 정도였다. (p.202)
영국이 관계되면 나는 언제나 영국 편이었다…. 벨기에를 공격하여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은 다름 아닌 빌헬름 황제였다. 러시아의 차르에게도 마찬가지로 나는 적지 않은 반감을 품고 있었다. 열 살 때 불가리아에 갔을 때 톨스토이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다. 그가 전쟁을 살인 행위로 간주하며 그런 생각을 자신의 주군인 황제에게 말하는 걸 두려워 하지 않는 멋진 남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이미 여러 해 전에 죽었지만 사람들은 그가 정말로 죽은 게 아닌 것처럼 말했다. 이제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 어떤 황제의 통치도 받지 않는 공화국에 살고 있었다. 나는 열정적으로 그들의 역사에 몰두했다. 황제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게 가능했다. 자신의 자유를 위해 투쟁해야 했다. 스위스인보다도 먼저, 훨씬 더 앞서서 그리스인들이 이미 엄청난 폭력에 항거하고 언젠가 한 번은 손에 넣은 적이 있었던 자유를 관철하는 데 성공했다. (p.295)
이 책장에서 나는 우선 야콥 부르크하르트의 책에 몰두했는데 당시에는 그다지 잘 이해할 수 없었음에도 ‘르네상스 문화’에 덤벼들었다. 열네 살 짜리에게는 너무도 다층적인 책이었다. 실제 삶 속에서의 경험과 고민이 전제되어 있어야 이해할 수 있는 책이었는데 많은 부분에서 나는 아직 문외한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당시에 이미 내게 일종의 자극이 되었따. 그러니까 폭넓음과 다양성 면에서의 자극이었다. 또한 권력에 대한 불신을 한층 더 강화해줬다. 나는 이런 사람에 비해 내 지식욕이 얼마나 초라하고 보잘것 없는지를, 또 지식욕에도 등급이 있으며 내가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까지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놀랐다. 부르크하르트 자신은 인물로서 이 책 뒤에서 내게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다. 그는 그 책 속에 용해되어 사라졌다. 그를 다시 책장에 놓을 때, 마치 그가 내게서 떠나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언어로 도망쳐 버릴 것만 같아서 초조해했던 것이 기억난다. (p.376)
나는 어려서부터 다양한 언어가 존재한다는 것에 익숙해 있었다. 하지만 다양한 글자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라틴문자에 고트 문자도 있다는 게 짜증났다. 더군다나 두 문자의 경우 영역과 사용법이 모두 같았고, 서로 상당히 비슷했다. (p.461)
아직 내가 읽어보지 못한 작가 프란츠 베르펠에 대해 선생님에게 질문했다. 선생님은 그의 시에 인류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다고 했다. 그가 감정이입을 할 수 없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했다. … 살아 숨쉬는 모든 존재로 변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자기 자신을 예로 보여주며 우리에게 그 사랑을 가르쳐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p.482)
엘리아스 카네티, "자유를 찾은 혀: 어느 청춘의 이야기", 김진숙 옮김, 문학과 지성사,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