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스트라와 군악대의 상호작용과 유사성

일본 초기 오케스트라에 반영된 군악대적 특성들

by yoonshun

吉田 裕, 『日本の軍隊: 兵士たちの近代史』, 岩波新書, 2002. 요시다 유타카, “일본의 군대”


針尾玄三 編, 『海軍軍樂隊:花も嵐も...』, 近代消防社, 2000.


동아시아의 전문적인 서양음악 학습은 학교나 종교의 영역에서보다도 우선적으로 ’군대‘에서 시작되었다. 그 중에서도 메이지 4년(1871년) 창설된 해군 군악대는 일본에서 서양음악 연주를 직업으로 삼았던 최초의 단체로 규정되고 있다. 서양식 의례를 도입하기 시작하던 초기의 일본 황실 행사에서도, 군악대는 공식적으로 서양음악 연주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일본 해군 군악대의 초기 역사는 근대 일본 서양음악 도입의 전후 사정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배경을 이룬다.


메이지 11년(1878년)에는 독일 출신의 군악교사였던 에케르트(Franz Eckert, 1852-1916)가 해군 군악대 지도를 담당하게 되었는데, 에케르트는 군악대 이외에도 황실 소속의 전통음악 연주자들(伶人, 레이진)에게 서양음악을 가르치는 교사로 고용되었다. (레이진들이 일본 전통 아악과 서양음악 연주를 동시에 담당하는 관습은 이 시기 시작되어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한편 천황제 근대국가 체제 구축에 필수적인 요소로 여겨졌던 ’국가(國歌)‘ 제정 과정에서 ’키미가요(君が代)‘를 편곡하는 작업을 담당했던 인물도 에케르트였다.


20년 이상 일본에 체류하며 서양음악을 지도한 공로를 인정받았던 에케르트는 메이지 32년(1899년) 임기 만료를 앞두고 종신연금 지급과 훈위 진급(훈5등 욱일장)이 확정되었는데, 음악 관련 고용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종신연금 대상자가 된 사례라고 한다. (이후 에케르트는 1901년부터 1907년까지 한반도로 거점을 옮겨 대한제국 군악대를 지도하게 된다. 이 시기의 경위에 관해서는 국내에서도 논문이나 다큐 등으로 여러 차례 다루어지기도 했는데, 일본에서의 활동 내용과 연계해 더 심도있게 살펴볼 부분들이 많이 남아있는 듯하다.)


에케르트로 대표되는 군악대 학습이 곧 서양음악 학습의 시작점에 해당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일본과 한국에서는, 유독 초창기 오케스트라 연주 곡목에 군악대용 취주악 레퍼토리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 공통점을 보인다. 또한 1920년대 후반 군악대와는 방향을 달리하는 일본의 ’신교향악단‘ 같은 전문 오케스트라가 설립된 이후에도, 이들의 연습 과정에 대해 ’투쟁과도 같은‘, 또는 ’군대와 같은 엄격한‘.. 처럼 군대의 훈련을 연상하게 하는 수식어를 사용하는 자료들을 찾아볼 수 있다.


1940년대 전시체제와 맞물리게 되면서, 오케스트라의 ’군악대성‘은 점차 더 뚜렷해진다. 단지 동아시아에서 뿐 아니라, 서구의 오케스트라에서도 무대를 둘러싼 엄숙한 질서와 지휘자의 카리스마와 같은 전형적 이미지들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도, 미디어 시대의 등장과 세계대전이 맞물려 있던 20세기 전반기의 현상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이처럼 오케스트라 학습의 초기 형태로서 군악대 연구는, 동아시아의 서양음악 수용 맥락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가야 할 중요한 배경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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