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과 중국인의 클래식 음악과 서구 전통 계승법

동아시아의 서구 클래식 음악 수용과 ‘전통의 발명’

by yoonshun

Étienne Barilier, “Piano chinois. Duel autour d‘un récital”, Zoé, 2011.


Eric Hobsbawm, Terence Ranger (edited), “The Invention of Tradition”, 2012.


일본인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1935-2024)는 서양음악에 진심인 일본인들이 ‘유럽 전통’을 대하는 근본적 콤플렉스를 언급하며 스승인 사이토 히데오(1902-1974) 선생의 가르침을 회상한다. “독일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자란 사람은 독일음악 전통을 알고 있다. 프랑스인이나 이탈리아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일본인들은 아무것도 없는 백지 상태(真っ白)이지만, 이런 상황이 우리에게 의외로 장점이 될 수 있다.” 백지 상태’에서 꾸준한 공부와 자신의 ‘경험’을 더해가며 어떤 것이든 자신만의 전통으로 극대화할 수 있다는 사이토 선생의 주장은 ‘일본인’ 지휘자 오자와가 서구의 오케스트라를 이끌 수 있었던 계기가 된 한편, ‘일본의 클래식 음악’이 일본을 넘어 서구 전통의 흐름 속으로 합류하게 되는 과정의 핵심적인 명분이기도 했다.


스위스 출신의 작가 에티엔느 바릴리에(Étienne Barilier, 1947-)가 2011년에 발표한 “중국의 피아노: 어느 리사이틀에 관한 논쟁”은 프랑스 남부에서 개최된 가상의 여름 음악 페스티벌에 출연한, 스물 두 살의 중국계 미국인 여성 피아니스트 메이 진(Mei Jin)의 연주를 중심으로, 상반된 입장의 프랑스어권 평론가 두 명이 각자의 블로그와 이메일을 통해 약 한 달 넘는 기간동안 주고받든 (역시 가상의) 서른 편의 글을 모아놓은 일종의 픽션이다. 스타 피아니스트 유자 왕(Yuja Wang, 王羽佳, 1987-)을 모델로 설정된 ‘메이 진’은 그동안 유럽의 관객들이 경험한 적 없던 동아시아 출신 피아니스트의 현란한 무대 매너와 연주를 선보이며, 전통과 문화의 수용과 전이를 둘러싼 다각도의 논쟁거리들을 던진다.


본문을 이어가는 (가상의) 평론가 중 한 명인 프레데릭 발라드(Frédéric Ballade)는 메이 진의 등장에 당황스러움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이며 비교적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반면, “중국인의 클래식 음악 연주는 그저 흉내내기일 뿐”이라고 적극적으로 반감을 드러내는 레오 폴도프스키(Léo Poldowsky)의 글에는 ’내실 없는 기교만으로 무장한’ 비서구 출신 연주자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서구화 이후의 동아시아인들이 (클래식 음악을 비롯한) 서구식 관습과 전통을 (동아시아 고유의 전통과는 별개로) 공교육을 포함하는 제도권에서 체계적으로 학습해 왔고, 그런 과정에서 자체적인 ‘서양식 전통’을 이루어 왔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거나)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


1961년 출간된 “일본의 사상日本の思想”에서 유럽의 사상이 20세기 일본에서 이미 ‘전통화’되고 있음을 지적한 마루야마 마사오는 일본인들 사이에서 “메이지 이전의 사상적 유산을 버리고 ‘서구화’된 현상을 개탄하는” 목소리에 대해 “과거 수백년의 전통사상이 진정한 유산으로 전통화 되어 있었다면, 어떻게 그렇게 간단히 서구화의 흐름에 휘말려버릴 수 있었겠는가”라고 되묻는다. 일찍이 서구 주요 강대국들의 주요 요소들을 조립식 ‘모듈’ 개념으로 도입해 퍼즐을 완성하듯 전개해 갔던 19세기 후반의 로쿠메이칸 시대가 상징하듯, 서구화 단계에서 어떤 전통이라도 수용 가능한 ‘백지 상태’를 적극 활용했던 사례들은 (단지 일본 뿐 아니라) 동아시아 근대사의 한 부분을 이루는 특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침 오래 전에 전혀 다른 관점에서 읽었던 “만들어진 전통”을 다시 펼쳐보며, (국가나 도시마다 상대적 편차는 있다 하더라도) 전통이나 관습이 결코 고정된 가치가 아니며 끊임없이 변화할 수 있음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아울러 지난 세기 동안 ‘동아시아의 서구 전통’이라는 일종의 ’발명’에 대한 안팎의 인식과 해석들에 대해서도 유의해서 돌아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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