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인 작가가 프랑스어로 묻는 일본과 중국의 클래식 음악 인식
エティエンヌ バリリエ , 『ピアニスト』, 鈴木 光子 (訳), アルファベータ, 2013. (Étienne Barilier, “Piano chinois. Duel autour d’un récital”, Zoé, 2011.)
村上 春樹, 『スプートニクの恋人』, 講談社文庫, 2001. (초판 1999)
무라카미 하루키, “스푸트니크의 연인”
“중국의 피아노” 일본어판 맨 뒤편에는 저자 에티엔느 바릴리에가 2012년 “동양에서의 유럽음악”이라는 제목으로 진행한 강연 내용의 본문이 부록으로 실려있다. ‘경계가 분명한 언어’를 다루는 작가로서 그는 지난 한 세기동안 ‘음악’이 특정한 전통을 넘나들며 교차되어 온 현상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면서, 특히 한중일의 동아시아인들이 유럽의 전통음악을 유럽인들보다도 더 깊이 사랑하며 (신비로울만큼) 능숙하게 다루고 있다는 데 주목해 “중국의 피아노”라는 작품을 구상하고 집필하는 계기로 삼았다고 말한다.
바릴리에는 (영화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히치콕의 어느 영화 속 장면이 클래식 음악을 ‘무례하다 할 만큼’ 소홀히 다루었다고 한탄하는 반면, 일본에서 제작한 “노다메 칸타빌레” 애니메이션의 피아노 연주 장면이 대단히 섬세하고 정밀하게 묘사되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한다. 스위스 출신인 바릴리에의 입장에서, 서구음악에 대한 일본인들의 이와 같은 ‘자연스러운’ 시선은 어떤 경이로움을 넘어서 ‘탐구’의 대상이 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어서 그는 서구 클래식 음악을 다룬 일본의 소설 몇 편을 언급하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무라카미 하루키의 “스푸트니크의 연인”에 등장하는 피아노 전공의 한국계 여성 ‘뮤우ミュウ’를 사례로 든다. 바릴리에는 뮤우가 ‘프랑스 음악원에서 피아노를 공부했고, 엘리자베스 슈바르츠코프가 노래하는 모차르트 가곡이나 빌헬름 박하우스가 연주하는 베토벤 후기 소나타 작품번호 111을 선호한다’는 사실 자체보다도, 동아시아 출신임에도 (일본음악이 아닌) “서구의 클래식”을 전공하고 좋아하는 맥락에 대한 배경 설명이 (일본의 독자들에게는) 전혀 필요없다는 데 흥미를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바릴리에는 일본인들의 이러한 정서를, (안타깝게도?) 서구인들의 ‘오리엔탈리즘’과 대칭적인 현상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듯하다. “동아시아인들은 (일본인들은) 왜, 동양 특유의 자연이나 전통, 그 세계를 배제하고, 전혀 결이 다른 유럽의 음악을 온몸으로 받아들여 익히고 있는 것일까?”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대한 물음에, 작가인 그가 할 수 있었던 우선적인 작업은 “중국의 피아노”라는 픽션을 구상하는 것이었고, 그는 여기에서 “유럽의 클래식 음악은 과연 보편적인 가치는 갖고 있는지” (가상으로 설정한) 프랑스어권 평론가 두 명이 상반되는 입장으로 주고받는 글을 통해 지속적으로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