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베를린 음악학의 기반을 다진 오스트리아인

게오르그 크네플러의 결심과 토마스 페인의 영향

by yoonshun

David C. Hoffmann, “American Freethought: The History of a Social Movement, 1794–1948”,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2025.


Thomas Paine, “ Common Sense”, 1776. (Dover Thrift Editions, 1997).


20세기 초 빈의 부르주아 집안 출신임에도 일찍부터 마르크스주의 기반의 학문을 추구하며 오스트리아 공산당 활동에도 참여했던 크네플러는, 나치 집권 초기 영국으로 망명해 12년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종전 후 다시 빈으로 복귀했지만, 1947년 전후로 고조되기 시작한 냉전의 기운으로 반공주의가 뚜렷한 빈에서는 크네플러와 같은 지향을 추구하는 인물들을 위한 적절한 일자리나 지위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지인들의 초청과 도움으로 베를린으로 이주를 추진하던 시기 마흔 무렵이었던 크네플러는, 18세기 후반 미국 독립혁명 시기 서른 일곱의 나이로 미국행을 결심했던 영국인 토마스 페인(Thomas Paine, 1737-1809)을 떠올렸다. “개인 차원의 더 나은 삶을 추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사회의 건설을 돕기 위해” 미국 독립 지원에 적극적으로 앞장선 페인의 결의는 새로운 시작점에 서 있던 크네플러에게 결정적인 동기부여가 되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Common Sense”는 당시 페인의 주장이 집약된 상징적인 기록이다.


고전과 현대의 레토릭을 매개로 하는 커뮤니케이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뉴욕시티대 교수로 재직 중인 데이비드 호프만은 건국 이후 20세기까지 미국이 거쳐 왔던 국가-종교 분리의 역사를 크게 네 단계로 요약한다. 그는 그 중에서도 가장 초기에 해당하는 1790년대 중요한 역할을 했던 토마스 페인의 영향력과 그의 저작 “The Age of Reason”(1793)에 주목한다. 스스로를 유니테리언으로 소개하는 저자는 미국에서 특정 종교 기반의 국가가 현실화 될 경우 그동안 미국 사회를 지탱해 왔던 다원주의 전통이 무너질 수 있다며 우려한다.


전혀 별개의 맥락에 있는 듯하던 미국 근현대사와 20세기 중반 독일어권 음악학의 흐름 사이에서 의외의 연결 고리를 제시하는 토마스 페인의 존재감과 영향력에 관해 기록해 둘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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