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호소해도 참으라고만 할 때
어머니 빈소에 도착한 날부터 목이 아팠다. 감기려니 하며 마스크를 쓰고 감기약을 먹었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건 발인을 마친 후였다. 감기라고 하기엔 목 통증 외에는 기침도, 콧물도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통증이 멈추지 않고, 목에 이물감이 커지면서 급기야 목에 뭔가가 만져지기 시작했다. 급히 검색해 보니 부위가 하필 갑상선이다. 수차례 수술로도 부족해 약 부작용으로 인한 뇌출혈까지, 오랜 시간 어머니를 지긋지긋하게 괴롭히던 병이 갑상선암이다. 내게는 악마 같은 단어 ‘갑상선.’
수술한 아이의 병실을 지키던 며칠 사이 내 염증 수치도 호르몬 수치도 한꺼번에 나빠졌고, 아이가 퇴원하자 약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한약이든 양약이든 몸에 조금만 들어가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설염(혓바늘)과 구내염, 구각염(입꼬리가 갈라지는 염증)은 기본. 혓바닥에 새까만 반점이 돋는 흑모설 증상까지 보였다. 눈부심에 어지러움, 구토감, 변비와 설사, 끝없이 쏟아지는 졸음. 밖에 거의 나가지 못하고 집에만 틀어박혀 지냈다. 견디다 못해 스테로이드를 복용했지만, 첫날부터 밤새 갈증 때문에 물을 2리터나 마시고 화장실을 들락거리느라 잠을 잘 수 없었다.
어머니가 쓰러지기 전 마지막 통화 내용 역시 약 부작용에 관한 것이었다.
소희야, 나 정말 약 그만 먹고 싶다.
발바닥까지 피부가 벗겨져 통증 때문에 걸을 수도 없는 어머니에게, 그래도 약을 드셔야만 암을 이길 수 있다는 말만 반복했다. 바보 같이. 아무것도 모르면서. (결국 어머니는 약 부작용으로 뇌출혈을 일으켜 1년 여 병원에서 꼼짝없이 누워 계시다 돌아가셨다.)
나는 암도 아니고 어머니가 겪은 것에 비하면 ‘아주 소소하고 귀여운’ 부작용을 겪고 있다. 하나 둘 증상이 나타날 때마다 어머니가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생각한다. 아무리 고통을 호소해도 참고 견디라는 말만 돌아올 때, 얼마나 답답하고 막막하셨을까. 진작 그 마음을 헤아려드렸더라면 이렇게 괴롭지는 않을 텐데. 몸이 내게 화를 내며 벌을 주고 있는 것 같다.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책과 함께’라는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책 소개와 책 나눔을 하고 있다.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공저로 <소설, 쓰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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