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너무 미워하지 않아도 괜찮구나
취침 시간이 훨씬 지났지만, 전철역까지 남편 마중을 나갔다. 헤어진지 겨우 12시간 만의 만남이었다.
엊그제 무릎 밑이 7센티 정도 찢어졌다. 열어놓은 서랍을 보지 못하고 지나치다 모서리에 부딪혔는데, 모서리가 칼처럼 피부를 찢었다. 그 서랍을 열어놓은 것도 나였기에 모두 내 탓이었다. 이를 악물었다.
저녁 때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이 상처를 보고 많이 아프겠다며 얼굴을 찡그렸다. 마치 자신의 피부가 찢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남편은 알코올 솜으로 꼼꼼하게 소독을 해주었다. 알코올이 날아가길 기다렸다 상처에 바르는 연고를 천천히 발라 주었다. 남편 다리에 상처가 났을 때, 나 역시 소독을 해주고 연고를 발라준 적 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아픔에 공감해주기는커녕 다 큰 어른이 주의하지 못해 다쳤다며 핀잔을 주었다. 말에도 마음에도 가시가 잔뜩 돋쳤다.
마음의 가시는 실은 나를 향한 것이었다. 나는 나를 미워하고 있었다. 약을 발라주는 내내, 단 한 마디도 내 탓을 하지 않는 남편을 보는데 눈물이 났다. 잘못하고 실수해도 괜찮구나. 내가 나를 너무 미워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남편은 무릎 밑 상처에만 연고를 발라 준 게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상처를 찾아 약을 발라주는 남자를 그리워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책과 함께’ 등의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책 소개와 책 나눔을 하고 있다.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공저로 <소설, 쓰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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