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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버스의 세계와 택시의 세계, 그리고 그 사이

경계를 훌쩍 넘나드는 자유

by 윤소희

2위안의 행복, 요즘 시내버스 타는 재미를 누리고 있다.

목적지까지 가는 길은 조금 더 길어졌지만, 시간은 오히려 더 빨리 흐르는 듯하다. 창밖의 풍경이 끊임없이 바뀌고, 차 안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읽는 일이 묘한 즐거움을 준다.


평생 시내버스만 타던 사람은 택시 기본요금이 얼마인지 몰라서 택시 한번 타기가 머뭇거려지고,
평생 택시만 타던 사람은 시내버스 요금이 얼마인지 몰라서 시내버스 한번 타기가 머뭇거려지는 것.

안도현 '삶이란 무엇인가' 중


평생 시내버스만 타던 사람 편에도, 평생 택시만 타던 사람 편에도 속하지 못했다. 한 세계에 익숙해진 적도 없고, 다른 세계를 두려워하거나 낯설어한 적도 없다. 어느 한편에 서서, 저 너머의 세계를 그려보며 머뭇거리는 것이 삶이라면, 나는 시인이 말한 그 '삶'을 모른다.


WechatIMG7554.jpg 중국 상하이 시내버스 요금은 2위안 (400원 정도)



평생 한 세계에 머물지 못하고, 수시로 경계를 넘나들며 살아왔다.

시내버스와 전철을 타다가, 그마저도 없어 하염없이 걷던 날들이 있었다. 걷다 지쳤을 때 기사가 모는 벤츠나 모범택시를 타는 세계로 훌쩍 건너가기도 했다. 좁은 중고 트레일러에 살며 비바람을 맞다, 어느 날에는 복층 아파트나 타운하우스의 따뜻한 불빛 아래에 머물렀다.


그 모든 세계가 내 삶이었다. 돈도, 집도, 사람도, 그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았다. 영원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을 덜어 내고 나니, 경계를 넘는 일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딱 그만큼 자유롭고 가벼워졌다.


WechatIMG51280.jpg 시내버스 타고


삶은 경계를 넘나드는 과정이었다.

시내버스의 세계와 택시의 세계, 그리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세계들. 나는 그 사이를 오가며 배웠다. 내가 당연하게 여겼던 것이 누군가에게는 꿈일 수 있고, 내가 한 번도 가지 않았던 길이 누군가의 매일일 수 있다는 것을. 가끔은 낯선 세계에서 내가 누구인지조차 모를 것 같은 날들이 있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시내버스만 타는 사람과 택시만 타는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두 세계 모두를 경험했기에, 그들의 불안과 두려움을 모두 느낄 수 있다. 경계에 서 있다는 건 두려운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자리다.


요즘 버스를 타는 시간이 즐거운 이유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목적지에 빨리 다다르는 것보다 중요한 건, 그 사이의 수많은 세계를 눈여겨보는 일. 조금 천천히 가도 괜찮다.




WechatIMG7556.jpg 윤소희 작가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고, 2025년 2월 심리장편소설 <사이코드라마> 출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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