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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Oct 18. 2020

CCTV의 위력, 아이를 잃어버린 끔찍한 시간

베이징 위안밍위안(圆明园)

가을 햇빛이 어느 약이나 주사보다 이롭다는 생각에 아이들을 끌고 멀리 원명원(圆明园)*까지 나들이를 나갔다. 아이들로서는 거의 두 달 만의 외출이었다. 한때는 화려했을 유적 사이를 천천히 걷기도 하고, 미로 속을 헤매기도 하고, 색색의 물고기들과 새끼 오리를 넋 놓고 바라보기도 하고. 오랜만에 마스크도 벗고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위안밍위안(圆明园)에서 아이를 잃어버리기 직전까지의 즐거운 한때


한 시간쯤 지났을까. 잘 따라오고 있는 줄 알았던 막내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지나갔던 길을 되돌아오며 아이 이름을 소리쳐 불렀지만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정원은 너무 넓어 내가 있는 위치도 정확히 알 수 없는데, 아무리 찾아도 아이가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30분 넘게 근처를 다 돌아다녀도 아이를 찾을 수 없었다.


방송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담당자를 찾으러 가면서도 아이와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아 애가 탔다. 방송실 전화번호를 겨우 찾아 전화를 하는데 계속 받지 않는다. 출구를 지키는 경비원을 찾아 방송을 부탁했지만, 방송은 해도 소용없다고 한다. 엄마 잃어버린 아이가 방송을 제대로 알아듣기나 하겠냐는 것이다. 잠시 후에는 방송하는 기기가 고장 났다는 말도 해서 과연 아이를 찾아줄 수 있을지 도무지 신뢰가 가지 않았다. 아이 사진이 있으면 달라는 말에, 아이를 잃어버리기 직전에 찍은 사진이 떠올랐다. 위챗으로 아이 사진 몇 장을 전송했다. 


도대체 이 넓고 길도 많은 정원에서 몇 명 되지도 않아 보이는 직원들이 어떻게 아이를 찾을까 싶어 마음이 놓이지 않았는데, 한 시간 정도 걸리니 아이가 ‘동문’ 쪽에서 발견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우리가 있던 쪽은 동남문 근처) 내가 보낸 사진에 아이가 입고 있는 옷과 머리 모양 등이 자세히 나와 있어, 정원 내 설치된 CCTV로 아이를 찾아낸 것이다. 아이를 데리고 온 직원 분께 연신 고맙다고 인사하니, 이곳에선 어떤 상황에도 잃어버린 아이를 찾아낼 수 있다며 허허 웃는다. 그 말에 어떤 자부심 같은 게 느껴졌다. 



원명원 내 직원과 나눈 위챗 대화_사진 몇장을 보고 CCTV 로 아이를 찾아냄


영화가 아닌 실 생활에서 CCTV의 위력을 처음 느껴본 하루. 아이를 찾았으니 웃으며 집에 돌아오긴 했지만, 집에 돌아오니 녹초가 되어 뻗어버렸다. 그 끔찍했던 한 시간 반을 떠올려 보니, 부모가 아이를 잃어버리고는 도무지 살아갈 수 없을 것 같다.



*원명원(圆明园): 청나라 왕조의 황실 정원. 150여 년에 걸쳐 조성되었으며, 유럽 풍뿐 아니라, 몽골, 티베트 건축 양식을 차용해 화려하게 지은 정원이다. 제2차 아편 전쟁 때 프랑스와 영국 연합군에 의해 폐허가 되었다. 일부는 복구 작업을 하고, 일부는 역사를 잊지 말자는 의미로 폐허를 유지하고 있다. 


베이징 위안밍위안(圆明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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