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거리가 주는 평온함에 대하여
오전 9시, 사무실의 공기는 언제나 묘한 긴장감과 느슨한 활기가 뒤섞여 있습니다. 커피 머신 앞에서 나누는 주말의 안부, 누군가의 연애 상담, 그리고 낮게 깔리는 상사의 뒷담화까지. 그 활기찬 웅성거림 속에서 나는 가끔 생각합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어디까지 닿아야 비로소 함께 일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회사 사람들과 깊게 섞이지 않는 편입니다. 업무적인 소통 외에는 나만의 투명한 막을 치고 그 안에서 머뭅니다. 누군가는 나를 무뚝뚝하다고, 혹은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선택한 가장 안온한 생존 방식입니다.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었습니다. 나도 한때는 동료들과 '식구'처럼 지내는 것이 미덕이라 믿었습니다. 어제 먹은 저녁 메뉴부터 집안의 대소사까지 공유하며 웃음을 나누던 시절이 있었죠. 하지만 친밀함이 깊어질수록 업무의 경계는 흐릿해졌습니다.
"우리 사이에 이 정도는 좀 봐줄 수 있잖아?"
친하다는 이유로 건네오는 무리한 부탁을 거절하는 일은, 모르는 사람의 부탁을 거절하는 것보다 몇 배의 에너지가 소모되었습니다. 공과 사의 경계가 무너진 자리에는 어김없이 오해가 피어났고, 업무상 확실히 매듭지어야 할 순간에 서운함이 앞서는 경험을 하며 나는 조금씩 지쳐갔습니다. 나의 사정을 다 안다는 사실이, 때로는 나를 겨냥하는 가장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이제 나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아낍니다. 누군가 나의 일상을 궁금해하며 다가올 때면 적당히 두루뭉술한 대답으로 웃어넘깁니다. 궁금해하는 이의 호의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내뱉은 말들이 사람들의 입을 거쳐 형태가 일그러진 채 다시 내 귀로 돌아오는 경험을 한 뒤로, 침묵은 나의 가장 든든한 방패가 되었습니다.
특히 누군가에 대한 평판을 묻는 질문은 가장 경계하는 순간입니다. 타인에 대한 날 선 말들은 빛의 속도로 번져나가 결국 모두를 상처 입히곤 하니까요. "00 씨 어때요?"라는 물음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답은 "잘 도와주십니다"라는 건조하지만 진실한 한마디뿐입니다.
내가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들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누군가 나에 대해 좋지 않은 소리를 한다 해도 '그럴 수도 있지'라며 넘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타인의 평가라는 파도에 내 감정의 배를 내맡기지 않기로 한 것입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오은영 박사님의 조언 중 내 마음을 가장 편안하게 해 준 말이 있습니다. "모두와 잘 지낼 필요 없다. 나쁘지만 않으면 된다." 그렇습니다. 호호 깔깔 웃으며 모든 회식 자리에 주인공이 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대신 나는 그 에너지를 업무의 본질에 쏟기로 했습니다. 말로 채우지 못한 빈자리를 더 꼼꼼한 업무 처리와 실력으로 채우는 것. 승진이나 간부라는 목표보다는 오늘 나에게 주어진 책 장을 넘기고, 업무 스킬을 하나 더 익히는 것에서 오는 성취감이 나에게는 훨씬 소중합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조금 고립되어 보일지도, 혹은 이해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나는 이렇게 생겨 먹은 인간인 것을요. 억지로 나를 깎아 타인의 틀에 맞추려 노력하던 시절보다, 부족한 나를 인정하고 내가 잘하는 것에 집중하는 지금이 훨씬 수월하고 행복합니다.
회사라는 거대한 기계 속에서 부품처럼 마모되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합니다. 이 거리는 상대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상대를 존중하고 나를 지키기 위한 필수적인 여백입니다.
오늘도 나는 사무실 한구석, 나만의 섬에서 조용히 일을 합니다. 거창한 연대감은 없어도,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는 이들과의 느슨한 연결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나는 나의 방식으로 회사생활을 하고, 또 그렇게 나의 인생을 살아갑니다.
당신은 어떤가요? 회사라는 숲에서 당신을 지키기 위한 적당한 거리를 찾으셨나요? 혹시 관계의 무게 때문에 오늘 밤도 잠 못 이루고 있다면, 조금은 이기적이어도 괜찮으니 당신만의 '투명한 막'을 만들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그 여백이 당신의 내일을 조금 더 평온하게 해 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