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방향이 바뀌는 시간,
그리고 흔들리는 나

by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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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계절이 오듯, 권력의 지도가 다시 그려졌습니다. 새로운 수장의 취임식이 시작되고, 화려한 환호 뒤로 전임자는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처럼 빛의 속도로 자취를 감춥니다. 그 빈자리를 채우는 공기는 서늘하고, 남겨진 사람들은 생존 본능에 따라 빠르게 태세를 전환합니다. 어제까지의 충성이 방향을 트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조직이라는 거대한 유기체는 그렇게 비정하리만치 유연하게, 또 냉혹하게 굴러갑니다.


새로운 권력은 늘 긴장을 동반합니다. 수장은 자신의 손발이 되어줄 사람들을 찾고, 그 선택을 받기 위한 물밑 작업은 치열하게 펼쳐집니다. 누군가는 발령이 나기도 전에 이미 모든 정보를 손에 쥐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소위 '정치력'이라 불리는 그것, 누구보다 빠른 정보력과 거미줄 같은 인맥을 가진 이들이 득세하는 계절입니다. 그들은 회식 자리에서, 회의실에서 자신이 얼마나 이 조직에 필요한 인재인지, 승진의 자격이 있는지를 능수능란하게 어필합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저는 묘한 이질감을 느낍니다. 마치 다른 차원의 세계를 보는 듯한 신기함, 그리고 그 세계에 결코 섞일 수 없는 저 자신에 대한 씁쓸한 자각이 교차합니다. 저는 흔히 말하는 '간부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야망을 드러내며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어필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마음 한구석에서부터 거부 반응이 일어납니다. 두드러기처럼 돋아나는 그 거북함은 아마도 제가 이 조직의 생리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증거일지도 모릅니다.


조직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은 늘 그림자처럼 저를 따라다닙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도 꾸역꾸역 출근길에 오릅니다. 일이 좋아서도, 회사가 좋아서도 아닙니다. 매달 통장에 찍히는 월급의 달콤함, 그리고 그 뒤에 도사리고 있는 대출금이라는 현실의 무게 때문입니다. '밖은 지옥이고 안은 전쟁터'라지만, 저는 지옥의 추위보다는 전쟁터의 포화 속에서 버티는 쪽을 택했습니다. 그것이 가장이자 생활인으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업무 그 자체보다는 사람이 늘 어렵습니다. 새로운 상사와의 합은 어떨지, 동료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조절해야 할지, 매 순간이 보이지 않는 살얼음판 같습니다. 관계의 미로 속에 갇힌 기분입니다. 요즘은 책임만 무겁고 실속은 없는 팀장 자리를 마다하는 세대가 늘어났다고 하지만, 저 같은 사람에게는 그마저도 닿지 않는 먼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인사철의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저는 미로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아이가 됩니다. 문을 열면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또 어떤 파도가 저를 덮칠지 알 수 없는 두려움. 하지만 도망칠 곳은 없습니다. 그저 운명이라 받아들이고, 또 한 번 이 악물고 버텨내는 수밖에요.


그래서 저는 결심합니다. 비록 몸에서는 두드러기가 날 것 같은 거부감이 일지라도, 어색하게나마 새로운 간부 앞에서 '딸랑이'를 흔들어보겠다고 말입니다. 그것은 비굴함이 아니라, 나의 일상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입니다. 비록 마음은 울고 있을지라도, 입가에는 경련 같은 미소를 띠며 오늘도 저는 조직이라는 거대한 톱니바퀴의 부속품으로 하루를 살아냅니다.


잘하지 못해도, 낯이 두껍지 못해도, 이 거친 파도 속에서 지금까지 버텨온 제 자신이 가끔은 대견합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각자의 두드러기를 참아내며,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 싫은 내색 없이 딸랑이를 흔드는 슬픈 광대들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흔들리는 것은 바람이 아니라, 그 바람 앞에서 어떻게든 뿌리 뽑히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우리네 마음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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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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