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우리 엄마가 보여서
작년 화제의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는 많은 분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누군가는 눈물로 보았고, 누군가는 오래 잊고 있던 가족의 얼굴을 떠올렸다고 했습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그 마음으로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끝까지 보지 못했습니다. 드라마가 재미없어서도 아니고, 연기가 부족해서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너무 잘 알아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화면 속 애순이가 낯선 인물이 아니라, 제 외할머니였고, 저희 엄마였고, 한때 이 땅에서 조용히 희생하며 살아야 했던 수많은 여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드라마를 보다 멈춘 이유를 생각해 보면, 그것은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애순이의 삶을 '이해'할 수 있었고, 그래서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이해하는 슬픔은 때때로 모르는 슬픔보다 더 아프게 다가옵니다. 이야기가 허구라는 사실이 아무 위로도 되지 않을 만큼, 그 삶은 너무 많은 실제 얼굴들과 겹쳐져 있었습니다.
학교에 가고 싶었던 여자들
얼마 전 돌아가신 외할머니는 살아생전 늘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학교가 그렇게도 가고 싶으셨다고 말입니다. 교복 입은 또래 아이들이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서럽게 눈물이 났다고 하셨습니다. 누군가는 아침마다 학교 종소리를 들으며 교실로 향했지만, 누군가는 그 시간에 집안일을 해야 했습니다. 할머니에게 학교는 당연한 일상이 아니라, 너무 갖고 싶어서 더 아팠던 꿈이었습니다.
할머니는 나중에 야학에서 한글을 배우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한 글자 한 글자 힘주어 쓰셨습니다. 저는 그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이상해집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 어떤 사람에게는 평생이 걸려 겨우 도착한 기쁨이었기 때문입니다. 저희 친할머니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겨우 한글을 익혀 이름을 쓰는 정도까지 배우셨습니다. 이름을 쓴다는 것은 단지 문자를 안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이 자신을 한 사람으로 불러주기를, 자신도 자신을 증명할 수 있기를 바라는 오래된 소망처럼 느껴졌습니다.
지금은 학교를 가는 일이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집니다. 그러나 불과 한 세대, 두 세대 전만 해도 여자가 배운다는 것은 집안 형편 앞에서 가장 먼저 접혀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가난한 집에서는 늘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습니다. 한정된 자원은 누군가에게 몰려야 했고, 그 과정에서 가장 힘없는 존재가 가장 먼저 밀려났습니다. 대개는 여자아이였습니다.
교복을 부러워하며 공장으로 가던 소녀들
저희 엄마도 중학교까지만 다니셨습니다. 졸업 후에는 미싱공장에 나가 일을 하며 외삼촌 둘의 뒷바라지를 하셨습니다. 엄마도 말씀하셨습니다. 공장에 가는 길에 교복 입고 학교에 가는 아이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웠다고요. 그 말은 아주 담담하게 들렸지만, 저는 그 담담함 속에 눌린 마음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너무 오래 참은 사람은 오히려 울지 않고 말한다는 것을 저는 엄마를 보며 배웠습니다.
제가 고등학생이 되어 교복을 입고 등교하던 어느 날, 엄마는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참 고등학교를 가고 싶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때 비로소 제가 입고 있던 교복이 단지 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안에는 엄마가 가지 못한 길, 외할머니가 닿지 못한 문 앞, 수많은 여자들이 포기해야 했던 꿈이 함께 들어 있었습니다.
이제는 압니다. 그 시절의 부모들이 딸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는 것을요. 모두를 데리고 갈 수 없을 만큼 가난했고, 누군가는 생계를 위해 먼저 일터로 가야 했다는 것을요. 그 시절은 그렇게 잔인했습니다. 사랑이 있어도 구해낼 수 없는 삶이 있었습니다. 미안한 마음이 있어도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는 형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슬픕니다. 누구 한 사람만 나빠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 시대 전체가 약한 사람에게 희생을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장손에게 몰린 기대,
가족에게 강요된 희생
물론 그 시대의 희생이 여성에게만 향했던 것은 아닙니다. 장손에게 모든 기대를 몰아주던 문화 속에서 다른 형제자매들도 각자의 몫으로 희생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누군가는 학업을 포기했고, 누군가는 도시로 떠나 돈을 벌었고, 누군가는 평생 집안의 성공을 위해 자신의 욕망을 뒤로 미뤘습니다. 장손 역시 편안하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이 잘되어야 집안을 살릴 수 있다는 압박, 자기 때문에 동생들이 희생하고 있다는 미안함, 실패조차 허락되지 않는 책임감은 결코 가볍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시절 많은 사람들이 외화벌이를 위해 사우디로, 독일로 떠났습니다. 말도 통하지 않는 먼 나라에서 위험한 노동을 견디며 번 돈을 고스란히 집으로 부쳤습니다. 저희 아버지도 몇 년 동안 사우디 건설 현장에서 일하셨습니다. 어린 시절 저희 가족은 아버지가 보내온 사진과 편지를 읽으며 살았습니다. 낯선 사막과 작업복을 입은 아버지의 얼굴, 몇 줄 안 되는 안부가 집안의 버팀목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저희의 일상은 아버지의 목숨값 같은 돈 위에 놓여 있었습니다. 가족이 먹고살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아주 멀리 가서 몸을 닳게 해야 했던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의 대한민국을 볼 때마다, 이것이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안정과 교육과 기회는 누군가의 젊음과 건강, 꿈과 체념 위에 세워진 것이라는 사실을 자주 떠올립니다. 눈부신 성장의 역사 뒤에는 이름 없이 버텨낸 사람들의 뒷모습이 있습니다.
저는 애순이가 끝내 대학에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저는 드라마를 보며 끝내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애순이가 대학에 갔으면 좋겠다고요. 애순이가 끝내 자신의 공부를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요. 물론 한 여자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가족을 꾸리며 살아가는 삶이 무가치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 삶 역시 충분히 귀하고, 누군가를 먹이고 입히고 지켜낸다는 것은 결코 작지 않은 일입니다. 저는 그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압니다. 제 삶 자체가 그 희생 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애순이가 부엌에서 웃는 모습을 선뜻 아름답게만 볼 수 없었습니다. 누군가는 그것을 생활의 단단함으로 받아들이고, 누군가는 사랑의 다른 이름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 눈에는 그 웃음보다 먼저, 너무 일찍 접어야 했던 꿈이 보였습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철들어야 했던 마음이 보였습니다. "나는 괜찮다"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괜찮을 수 없었던 수많은 여자들의 얼굴이 겹쳐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 보지 못했습니다. 애순이가 행복하다고 말할수록, 저는 오히려 더 짠해졌습니다.
어쩌면 저는 착한 사람의 서사를 견디지 못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자기 몫을 줄이고, 자기 꿈을 접고, 자기 삶을 뒤로 미루면서도 그것을 희생이라 부르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는 마음이 무너집니다. 그런 사람들은 늘 조용합니다. 자신의 고통을 크게 말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더 오래 잊히고, 더 쉽게 미화됩니다. 저는 그 점이 가장 아픕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는 애순이가 있습니다.
드라마 속 애순이는 과거의 인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현재형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와 있는 동남아시아 여성들, 중국에서 온 노동자들, 낯선 나라에서 아이들을 위해 버티는 이주민들 속에도 저는 애순이를 봅니다. 자기 아버지뻘 되는 한국 남성과 결혼한 앳된 외국인 여성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녀는 사랑보다 생계를 먼저 생각해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본국의 부모와 동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한국에 왔을지도 모릅니다. 그 사정을 다 알 수는 없지만, 그 어린 얼굴에서 이상하게 낯익은 슬픔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식당에서 일하며 쉬는 시간마다 휴대전화로 본국의 아이들과 영상통화를 하는 여성도 보았습니다. 화면 너머 아이에게 웃어 보이지만, 통화가 끝난 뒤 금세 무표정으로 돌아가는 그 얼굴을 볼 때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지금도 누군가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미루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며, 오늘을 버텨 가족의 내일을 보냅니다. 한국에서 고된 일을 하며 아이들을 키우는 이민자 가족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미국에 이민 가면 한국에서 어떤 직업을 가졌든 미국에 가면 그저 이방인이 되어, 남들이 기피하는 일을 하며 자식 교육에 모든 것을 걸기도 합니다. 그 모습은 낯설면서도 낯설지 않습니다. 시대와 장소만 달라졌을 뿐, 희생의 문법은 놀라울 만큼 비슷합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합니다. 애순이는 드라마 안에만 있는 인물이 아니라고요. 오늘도 세계 여러 곳에서, 너무 어린 어깨로 가족의 삶을 떠받치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애순이라고요. 너무 착해서, 너무 성실해서, 너무 참고 견뎌서 더 마음이 아픈 사람들 말입니다.
그래서 더,
자신을 위해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솔직히 그런 의미의 '착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희생해야만 모두가 편안해지는 상황을 잘 견디지 못하는 성격이었습니다. 억울하면 억울하다고 말하고 싶었고, 왜 늘 내가 참아야 하느냐고 묻고 싶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애순이 같은 사람을 보면 더 아프기도 합니다. 나는 차마 그렇게 못 살 것 같아서, 그런데 누군가는 정말 그렇게 살아냈다는 사실이 미안하고 고맙고 슬퍼서 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희생을 미덕으로 배웠습니다. 특히 여자들에게는 더 자주 그런 말이 주어졌습니다. 참을 줄 알아야 한다, 양보할 줄 알아야 한다, 가족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요. 그러나 저는 이제 그 말이 언제나 아름답지만은 않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인내가 다른 누군가의 편의를 위해 당연한 것으로 소비될 때, 그 미덕은 쉽게 폭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어딘가에서 자신을 조금씩 덜어내며 살고 있는 수많은 애순이들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이제는 조금 자신을 위해 살아도 된다고요. 꿈이 있다면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라고요. 공부하고 싶으면 다시 배워도 되고, 쉬고 싶으면 쉬어도 되고, 누군가의 딸과 아내와 엄마 이전에 먼저 자기 자신이어도 된다고요. 삶은 끝까지 타인을 위해서만 바쳐야 하는 숙제가 아니라고요.
제가 『폭싹 속았수다』를 끝까지 보지 못한 이유는, 결국 드라마가 너무 잘 만들어져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 사실적이어서, 너무 많은 얼굴을 떠올리게 해서, 너무 오래 묻어두었던 감정을 건드려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애순이가 화면 속에서 웃을 때마다 저는 그 웃음 뒤에 가려진 수많은 체념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멈췄습니다. 끝까지 보지 못한 것이 아쉬우면서도, 어쩌면 그만두기를 잘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떤 이야기는 끝까지 보는 것보다, 중간에서 멈춰 선 채 오래 마음에 품는 편이 더 진실할 때가 있습니다. 제게 애순이는 그런 인물입니다. 끝까지 따라가지는 못했지만, 오래 잊지 못할 사람. 그리고 여전히 이 세상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을, 우리 곁의 많은 애순이들 말입니다.
여러분에게도 끝까지 보지 못한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너무 잘 알아서, 너무 내 이야기 같아서 도중에 멈춰버린 작품이 있으셨는지 문득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