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빅쇼트' 역사는 정말 되풀이되는가?
"곤경에 빠지는 건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다. 뭔가를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 - 마크 트웨인
영화 <빅쇼트>는 이 한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시대를 막론하고 자본주의의 거대한 파도 속에서 허우적대는 인간의 본성을, 이만큼 정확하게 꿰뚫는 말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은 실존 인물들입니다. 2008년 하락을 예상하고 하락장에 베팅하에 큰돈을 법니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터지기 직전, 세상은 대체로 평온해 보였습니다. 집값은 계속 오를 것 같았고, 은행은 안전해 보였고, 신용평가사는 그럴듯한 등급을 붙였으며, 사람들은 내일도 오늘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고 믿었습니다. 그 평온함 속에서 누군가는 '뭔가 이상한 것'을 발견하고 있었습니다. 신발도 신지 않은 채 사무실에 틀어박혀 헤비메탈 음악을 들으며, 수만 페이지에 달하는 모기지 채권 데이터를 읽어 내려가던 한 남자입니다. 마이클 버리. 한쪽 눈이 의안이고, 의대 출신이며, 이후 자신이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헤지펀드 매니저였습니다.
그는 모두가 안전하다고 말하는 숫자 안에서 균열을 보았습니다. 겉으로는 멀쩡한 금융상품 속에 갚을 수 없는 대출들이 빽빽하게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입니다. 모두가 파티를 즐기고 있을 때, 혼자 비상구를 세고 있는 사람의 뒷모습. 저는 그 장면이 처음에는 우스꽝스럽게 보이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다들 그렇다니까"라는 가장 위험한 말
저는 영화를 보다 문득 제 일상을 떠올렸습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남의 확신을 빌려 살아갑니다. 다들 괜찮다고 하니까 괜찮은 줄 압니다. 다들 오른다고 하니까 오를 줄 압니다. 다들 안전하다고 하니까 안전한 줄 알고, 다들 침묵하니까 나도 침묵합니다.
사람은 관성에 의해 갑니다. 어제 하던 대로 오늘도 하고, 오늘 믿던 것을 내일도 믿습니다. 그 관성은 우리를 편하게 만들어 줍니다. 매번 모든 것을 의심하며 살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나 바로 그 편안함 때문에, 우리는 종종 가장 중요한 신호를 놓치게 됩니다.
주변도 그러면 나도 그러합니다. 모두가 뛰면 나도 뛰고, 모두가 멈추면 나도 멈춥니다. 모두가 박수를 치면 나도 박수를 치고, 모두가 아무 말하지 않으면 나도 아무 말하지 않습니다. 영화 속 내레이터 재러드 베넷(라이언 고슬링)이 부패한 월가의 뱅커들을 조롱하며 던지는 대사가 이 집단 심리의 본질을 정확히 찌릅니다.
"멍청한 것과 불법인 것의 차이를 말해주면, 당장 내 처남부터 체포하라고 하겠소." — 재러드 베넷
합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시스템이 묵인하는 광기는, 그것이 아무리 어리석은 짓이라 해도 대중에게는 달콤한 정답으로 둔갑합니다. 모두가 함께 미쳐 있을 때, 함께 미쳐 있는 것이야말로 가장 정상적인 행동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빅쇼트>는 결국 믿음이
무너지는 이야기였습니다.
영화가 정말로 보여주는 것은 금융상품의 복잡한 구조만이 아닙니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결국 '믿음의 구조'입니다.
집값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는 믿음.
대형 은행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믿음.
신용평가사는 객관적일 것이라는 믿음.
전문가들이 알아서 잘하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
설마 이 거대한 시스템이 모두 틀렸을 리는 없다는 믿음.
그 믿음들이 모여 거대한 성을 쌓았습니다. 그러나 그 성은 단단한 돌이 아니라, 빚과 탐욕과 침묵으로 쌓아 올린 모래성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실수처럼 보였습니다. 조금 과한 낙관처럼 보였고, 금융권 특유의 복잡한 계산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들여다볼수록 그것은 단순한 착오가 아니었습니다. 위험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알면서도 팔아넘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가 터지기 전까지만 돈을 벌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거짓은 혼자 완성되지 않습니다. 거짓을 말하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그 거짓을 믿어주는 사람들, 또는 믿는 척해주는 사람들이 함께 있어야 비로소 완성됩니다.
뭔가 이상한 것을 발견한 사람은
대체로 이상해 보였습니다.
마이클 버리는 처음에 괴짜처럼 보였습니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사무실에서는 맨발로 돌아다니며, 음악을 크게 틀고, 숫자 속으로 깊이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이상함 때문에 그는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보통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사람을 신뢰합니다. 말이 매끄럽고, 분위기를 잘 읽고, 다수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섞이는 사람을 안정적인 사람이라 여깁니다. 반대로 혼자 다른 말을 하는 사람, 모두의 낙관 속에서 불안을 말하는 사람, 축제의 자리에서 조용히 출구를 확인하는 사람은 어쩐지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역사를 돌이켜보면, 진실은 종종 그런 불편한 사람들의 입에서 먼저 나옵니다.
영화에는 이런 인용이 등장합니다.
"진실은 시와 같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를 싫어한다." - 워싱턴 D.C.의 어느 술집에서 들은 말
진실은 대개 불편합니다. 진실은 우리가 믿고 싶은 이야기를 방해하고, 분위기를 깨고, 수익을 가로막고, 안전하다고 믿던 세계를 흔듭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진실을 싫어합니다. 진실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진실이 불편해서입니다.
이 영화의 원작자 마이클 루이스는 책 말미에 이런 분석을 덧붙입니다. 진실을 본 사람들이 특별히 천재여서 본 것이 아니라고요. 그들은 단지 시스템 안에 깊이 물들지 않은 '아웃사이더'였기 때문에 볼 수 있었다고요. 버리는 의대를 나온 의사 출신이었습니다. 찰리 레들리와 제이미 마이는 창고에서 단돈 11만 달러로 시작한 아마추어 투자자들이었습니다. 마크 바움은 시스템 안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심리적으로 늘 그 바깥에 서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어떤 의미에서 '바깥'에 있었고, 바깥에 있었기 때문에 안의 풍경이 보였습니다.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 가장 자신감이 넘쳤고,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가장 의심이 많았다." - 마이클 루이스, 『빅쇼트』
너무 이른 진실
진실을 먼저 알았다고 해서 곧바로 승리와 환희가 찾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마이클 버리는 붕괴를 확신하고 고객 자금 13억 달러를 공매도 포지션에 베팅했습니다. 그러나 조작된 시스템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서브프라임 연체율이 치솟는데도 채권 가격은 떨어지지 않는 기형적인 장세가 이어졌습니다. 투자자들은 그를 사기꾼이라 욕하며 환매와 소송을 요구했고, 매달 막대한 프리미엄이 피처럼 빠져나갔습니다.
모두가 'Yes'라고 외치는 광장의 한가운데서 홀로 'No'를 외치며 버텨야 했던 그 고립감 속에서, 그는 분노하는 투자자들에게 이렇게 맞섭니다.
"내가 틀린 게 아닙니다. 너무 일렀을 뿐입니다." — 마이클 버리
이 짧은 문장은 영화에서 가장 뼈아픈 대사 중 하나입니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아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그 자체에서, '너무 일찍 진실을 맞추는 것'은 종종 '틀린 것'과 같은 파멸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베넷도 같은 진실을 다른 어법으로 풀어냅니다.
"틀린 게 아닙니다. 그저 타이밍이 이른 것뿐입니다. 그리고 월스트리트에서 타이밍이 이른 것은 틀린 것과 같습니다." — 재러드 베넷
자신을 향한 세상의 조롱과 의심 속에서, 버리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과도 싸워야 했습니다. 내 계산이 틀린 것인지, 내가 미친 것인지, 세상이 미친 것인지를 매일 묻는 일. 그는 영화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사람들을 잘 읽지 못합니다. 하지만 시장은 읽을 수 있습니다." — 마이클 버리
이 짧은 고백 안에 그의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과 평판에 무감각했기 때문에,
오히려 숫자의 진실에 집중할 수 있었다는 것.
사회성의 결여가 역설적으로 그를 가장 정확한 독자로 만들었다는 것.
그것은 낭만이 아니라 지독한 고독의 다른 이름이었습니다.
왜 시스템 전체가 같이
틀린 방향을 보았을까요?
그렇다면 왜 세상은 그토록 오랫동안 틀린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을까요? 무지 때문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더 무서운 진실은, 모두가 자기 자리에서 그럭저럭 합리적으로 행동했다는 사실 그 자체에 있습니다.
대출업자는 대출을 많이 팔아야 했습니다. 은행은 금융상품을 많이 만들어야 했습니다. 신용평가사는 고객사를 잃고 싶지 않았습니다. 투자자는 더 높은 수익률을 원했습니다. 집을 사는 사람은 집값이 더 오르기를 바랐습니다. 각자만 놓고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선택들이 한 방향으로 쌓였을 때, 세상은 위험한 곳으로 굴러갔습니다.
영화 속 한 신용평가사 직원의 짧은 대사가 이 모든 구조를 한 줄로 정리해 버립니다.
"우리가 AAA를 안 주면, 그냥 경쟁사한테 가거든요." — 신용평가사 직원
그는 이 부실 채권에 최고 등급을 줘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줍니다. 안 주면 경쟁사가 줄 것이고, 그러면 자신은 일자리를 잃기 때문입니다. 모기지 중개인의 논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서류만 있으면 돼요. 서류가 없으면 우리가 만들어 드리죠." — 모기지 브로커
이것은 한 사람의 부정직이 아닙니다. 시스템 전체가 같은 방향을 보고 있을 때, 다른 방향을 보는 사람은 살아남지 못한다는 구조의 이야기입니다. 모기지 브로커는 대출을 팔수록 수수료를 받으니 심사를 하지 않습니다. 은행은 부실 대출을 묶어 팔아버리니 책임이 없습니다. 신용평가사는 은행에게 수수료를 받으니 좋은 등급을 줍니다. 시스템 안의 모든 사람이 이 구조에서 돈을 버는 동안,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베넷의 내레이션이 이 허망한 진실을 정리해 줍니다.
"월스트리트는 한 가지만 잘합니다. 복잡하게 만들어서 아무도 이해 못 하게 하는 것." — 재러드 베넷
플로리다 현장으로 직접 내려가 두 눈으로 그 광기를 확인한 마크 바움은 회의실에 돌아와 이렇게 묻습니다.
"도대체 언제부터 사기가 이렇게 합법이 되었지?" — 마크 바움
우리는 IMF 때 뭔가 이상한 것을
인지할 수 없었을까요?
영화를 보다가 자연스럽게 우리의 시간을 떠올리게 됩니다. 우리는 1997년 IMF 외환위기 때 '뭔가 이상한 것'을 인지할 수는 없었을까요?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의 일상은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진 것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어제까지 다니던 회사가 흔들리고,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깨지고, 구조조정과 명예퇴직이라는 단어가 가정의 식탁 위로 올라왔습니다. 그러나 위기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IMF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1997년 위기와 관련해 총외채 대비 단기외채 비중이 1996년에 약 3분의 2 수준까지 증가했다고 합니다. 짧은 만기의 빚이 많아진다는 것은, 겉으로는 성장처럼 보여도 속으로는 만기와 유동성의 위험이 빠르게 커지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또 다른 분석은 기업 부문의 과잉투자 상당 부분이 단기부채로 조달되었고, 이것이 기업 부실과 은행의 부실자산 증가로 이어졌다고 설명합니다.
돌이켜보면 신호는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신호가 그때 우리의 일상 속에서는 신호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경제가 성장하고 있다는 말, 대기업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믿음, 좋은 회사에 들어가면 평생 괜찮을 것이라는 확신, 나라가 이렇게 빨리 성장했는데 설마 무너지겠느냐는 안도감. 그런 믿음 속에서 이상한 것은 이상한 것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상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위기는 늘 지나고 나서야 설명이 쉬워집니다. 그때는 왜 몰랐을까? 그때는 왜 보지 못했을까? 그때는 왜 멈추지 않았을까? 그러나 위기의 한복판에 들어가기 전까지 사람들은 대체로 현재의 관성을 미래의 보증서처럼 믿습니다. 어제도 괜찮았으니 내일도 괜찮을 것이라고 믿고, 남들도 가만히 있으니 나도 가만히 있어도 될 것이라고 믿으며, 설마 모두가 틀렸겠느냐고 믿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바로 그 질문을 자주 배반해 왔습니다.
승리자의 비애 — 파멸 위에 세워진 카타르시스
마침내 2008년, 진실을 영원히 덮을 수는 없었습니다. 거짓으로 쌓아 올린 모래성은 무너져 내렸고, 베어스턴스가 흔들렸으며,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했습니다. 주인공들의 예측은 소름 돋게 적중했고, 천문학적인 수익이 돌아왔습니다. 마이클 버리는 개인 수익 1억 달러, 펀드 전체로 10억 달러 이상을 거둬들였습니다.
일반적인 영화라면 여기서 통쾌한 음악과 함께 짜릿한 카타르시스가 터져 나와야 합니다. 그러나 <빅쇼트>의 결말에는 환호성 대신 무거운 정적만이 흐릅니다. 전직 트레이더 벤 리커트(브래드 피트)가 춤을 추며 기뻐하는 찰리와 제이미에게 차갑게 던지는 그 한마디가 영화 전체의 무게중심입니다.
"우리가 맞았다는 건 사람들이 집을 잃고, 직장을 잃고, 은퇴 자금과 연금을 잃는다는 뜻이야. 내가 은행업을 왜 혐오하는지 알아? 사람을 숫자로 전락시키거든. 실업률이 1퍼센트 오를 때마다 4만 명이 죽어. 알아? 그러니 제발 춤추지 마." - 벤 리커트
자신의 분석이 옳았음이 증명되는 순간, 동시에 무언가가 무너지는 광경을 함께 봐야 한다는 것. 옳음이 반드시 승리는 아니고, 승리가 반드시 기쁨도 아닌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마크 바움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포지션 청산을 망설입니다.
"우리가 옳다면, 사람들은 집을 잃고 저축을 날립니다. 이게 우리가 이기는 방식이군요." — 마크 바움
어떤 승리는 박수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 승리의 반대편에 너무 많은 눈물이 쌓여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가 끝나도 마음 한쪽이 묵직해지는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더욱 절망적인 것은 이 사태를 만들어낸 진짜 책임자들의 태도였습니다. 마크 바움은 파국을 맞이한 월스트리트를 바라보며 씁쓸하게 말합니다.
"그들은 알고 있었어. 납세자들이 자신들을 구제해 줄 거란 걸. 그들은 멍청했던 게 아니야. 그냥 남들이 어찌 되든 신경 쓰지 않았던 거지." — 마크 바움
탐욕에 눈이 먼 이들은 시스템이 무너져도 국가가, 즉 국민의 세금이 자신들을 살려줄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미국 정부는 실제로 약 7,000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TARP)을 집행했고, 구제받은 은행들은 이후 다시 임원 보너스를 지급했습니다. 실패의 책임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전가됐습니다. 미국에서만 약 800만 명이 실직했고, 수백만 가구가 집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자막으로 막을 내립니다.
"이 사람들은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감옥에 가지 않았습니다."
"2008년 붕괴 이후, 은행들은 더 커졌습니다. 그리고 월스트리트는 같은 상품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이름만 바꾸어서 말입니다."
이것이 이 영화가 가진 가장 서늘한 진실입니다. 진실을 본 사람들이 이겼지만, 시스템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영화는 그 분노를 그대로 관객의 손에 쥐어주고 끝납니다.
코스피 6,615, 시가총액 6,000조,
그리고 AI라는 새로운 믿음
영화를 끄고 2026년 오늘의 현실로 돌아와 봅니다.
2026년 4월 27일, 코스피는 사상 처음으로 6,600선을 돌파해 6,615.03으로 장을 마감했습니다. 같은 날 한국 증시 시가총액은 사상 처음으로 6,000조 원을 넘어섰고, 코스닥은 25년 만에 1,200선을 회복했습니다. 미국 빅테크의 실적 기대감과 AI 데이터센터 수요가 반도체와 전력기기 업종을 끌어올린 결과였습니다. 시장에서는 "코스피 사상 최고치 행진은 반복될 것"이라는 전망이 거듭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곧 거품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AI는 실제로 산업의 변화를 만들고 있고, 반도체 슈퍼사이클의 실적 개선은 분명한 숫자로 입증되고 있습니다. 마이클 버리가 본 2005년의 시장과 지금의 시장은 구조도, 기초체력도, 데이터도 다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이 상승은 어디까지가 실적이고,
어디부터가 기대일까요?
이 기대는 어디까지가 미래이고,
어디부터가 욕망일까요?
우리는 정말 알고 투자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남들도 믿으니까 같이 믿고 있는 것일까요?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이 한국 GDP를 훌쩍 넘었고, 빅테크 몇 곳이 미국 증시 전체를 떠받치고 있는 이 풍경 앞에서, 데이터센터에 투자된 천문학적 자본이 정말로 회수될 수 있을지를 진지하게 묻는 목소리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마이클 버리는 지금도 SNS를 통해 거품 경고를 올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영화 속 그 시절처럼, 그의 경고는 또다시 미친 소리로 흘러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베넷의 다음 한 마디가 더욱 무겁게 다가옵니다.
"진실은 영화 같지 않습니다. 진실은 지루하고, 복잡하고, 아무도 보상받지 못합니다." — 재러드 베넷
역사는 정말로 되풀이되는 것일까요? 아마 똑같이 되풀이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2008년의 서브프라임과 1997년의 외환위기와 지금의 AI 시장은 구조도, 원인도, 시대도 다릅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자주 비슷한 방식으로 반복됩니다. 믿고 싶은 것을 믿고, 오르는 것이 더 오를 것이라 믿고, 남들이 번 돈을 보며 뒤처질까 두려워하고, 위험을 말하는 사람을 싫어하다가, 나중에야 말합니다. 그때 신호가 있었는데, 라고요.
의심은 냉소가 아니라 감각입니다.
저는 이제 '의심'이라는 말을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의심이 부정적인 태도라고 생각했습니다. 잘 믿지 못하는 마음, 꼬아서 보는 습관, 세상을 어둡게 보는 성격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좋은 의심은 냉소가 아니었습니다. 좋은 의심은 나를 지키는 감각이었습니다. 세상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너무 쉽게 믿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조심성. 모두가 믿는다고 해서 진실은 아니고, 모두가 산다고 해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며, 모두가 괜찮다고 해서 정말 괜찮은 것은 아니고, 모두가 침묵한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라는, 아주 단순한 인식 말입니다.
회사에서도 종종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모두가 괜찮다고 말하는 프로젝트가 이상하게 불안할 때가 있습니다. 모두가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누군가에게서 나만 불편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모두가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조직의 방식이, 어딘가 사람을 조금씩 지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자주 스스로를 의심합니다.
내가 예민한 걸까?
내가 분위기를 못 읽는 걸까?
내가 너무 부정적인 걸까?
나만 이상한 걸까?
그러나 어쩌면 그 감각은 틀린 것이 아니라, 아직 설명할 언어를 얻지 못했을 뿐일 수 있습니다. 마이클 버리의 말처럼, 틀린 것이 아니라 너무 이른 것일 수도 있습니다.
모두의 믿음보다 중요한 것
물론 의심만으로는 아무것도 만들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불신하며 살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어느 정도 믿어야 하고, 시스템을 어느 정도 신뢰해야 하며, 내일도 오늘처럼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일상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에는 질문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질문 없는 믿음은 쉽게 맹신이 되고, 검증 없는 확신은 쉽게 폭주가 되며, 불편한 신호를 외면한 낙관은 언젠가 더 큰 대가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2008년 서브프라임이 터지기 직전에도 세상은 믿었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 직전에도 사람들은 믿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코스피 6,615와 시가총액 6,000조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도 믿고 있습니다. 믿음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아무도 묻지 않을 때 시작됩니다.
<빅쇼트>가 제게 남긴 것은 결국 금융 지식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몇 개의 질문이었습니다. 세상은 숫자로 움직이는 것 같지만, 그 숫자 뒤에는 늘 사람이 있습니다.
욕망하는 사람,
두려워하는 사람,
침묵하는 사람,
믿고 싶은 사람,
그리고 아주 가끔, 모두가 보는 방향과 다른 곳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처음엔 이상해 보입니다. 그러나 어쩌면 그는 가장 먼저 균열을 본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모두가 파티에 취해 춤을 출 때, 기꺼이 춤을 멈추고 문밖의 어둠을 직시할 수 있는 용기. 어쩌면 그것이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이 세계에서 우리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자기신뢰일 것입니다.
지금 당신은 무엇을 당연하다고 믿고 계신가요?
그 믿음은 스스로 검토한 것인가요?
아니면 모두가 그러하기에 따라간 것인가요?
혹시 이미 무언가를 보고 계시면서도, 모르는 척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여러분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으셨나요?
모두가 괜찮다고 말했지만,
혼자 이상하다고 느꼈던 순간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때 내 감각이 틀리지 않았구나" 하고 깨달았던 순간이
그리고 주인공처럼 행동할 수 있으신가요?
- 코스피가 사상 최고치를 다시 쓰는 어느 봄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