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녀 심청’ 프레임에 갇히길 거부하는 어느 반항아의 독백
어릴 적부터,
저는 이 동화가 어딘가 수상했습니다.
솔직히 한번 여쭤볼게요. 어린 시절 ‘심청전’ 읽으면서 다들 감동받으셨나요?
저는 아니었습니다.
코흘리개 시절부터 저는 책장을 덮으며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아니, 인당수에 왜 빠져? 미쳤어?’
모두가 심청이의 효심에 감동할 때, 저는 홀로 눈을 가늘게 뜨고 진실을 간파했습니다. “이건 사기다!” 하고 말이죠. 인당수의 푸른 물결이 넘실거릴 때, 저는 단호히 결심했습니다. 만약 내가 심청이었다면 절대로, 네버, 에버, 그 차가운 바닷물에 발가락 하나 담그지 않을 것이라고요. 왜냐하면 제 목숨값은 공양미 삼백 석보다 훨씬, 훠얼씬 비싸거든요.
물론 이 마음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른들이 모두 한 목소리로 “심청이처럼 되어야 한다”라고 가르치는 분위기였으니까요. 어린 제가 “저는 인당수에 안 빠질 건데요?” 하고 말했다가는 그날 어른들의 이쁨을 받기는 곤란해졌을 겁니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저는 분명히 정해두었습니다.
‘나는 절대로, 절대로 인당수에 빠지지 않을 거야.’
그리고 나이가 들어 다시 이 이야기를 펼쳐 보니, 어릴 적의 그 직감이 그리 틀리지 않았더라고요. 오늘은 효녀 심청이를 한번 삐딱하게 읽어볼까 합니다. 모처럼 어린 날의 저를 소환해 봅니다.
심학규 씨, 솔직히 당신이 제일 큰 문제 아닌가요?
심청 이야기에서 제가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인물은 사실 심청이가 아닙니다. 바로 아버지 심학규 씨, 일명 심 봉사님입니다.
냉정하게 한번 살펴볼까요? 이분, 참 대책 없는 분이세요. 어린 딸을 젖동냥으로 겨우 키워놨더니, 이번에는 길을 가다 개천에 풍덩 빠집니다. 그리고 자기를 구해준 스님에게 ‘공양미 삼백 석’이라는 거액의 대출을 그 자리에서 덜컥 일으킵니다. 담보가 무엇이냐고요? 하나뿐인 딸의 목숨이었습니다.
심봉사는 눈을 뜰 수 있다는 말에 덜컥 약속을 해버립니다. 검증된 임상 시험 결과도, 보건복지부 인증도, 환불 정책도 없는 약속에 “네! 약속하겠습니다!” 하고 도장부터 찍으셨습니다. 그러고는 집에 와서야 정신을 차리고 통곡합니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가, 가난한 살림에 삼백 석이라니…”
그 한탄을 어린 딸이 옆방에서 다 듣게 됩니다. 저는 이 장면이 가장 무섭습니다.
심학규 씨, 정말 모르셨을까요? 효심 깊은 어린 딸이 그 한탄을 들으면 어떤 결심을 하게 될지를. 정말 그 가능성을 한 번도 떠올려보지 못한 채 그저 서럽게 우셨을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자식을 사지에 몰아넣고 자기 눈을 뜨겠다니, 이쯤 되면 요즘 시대 같았으면 ‘금쪽같은 내 새끼’에 출연하셔서 오은영 박사님의 뒷목을 잡게 했을 빌런 캐릭터입니다. “딸아, 어서 팔려가거라”를 “아이고 어쩌나, 어쩌나”로 포장하는 그 화법, 너무 익숙하지 않습니까?
이걸 현대식으로 옮기면 이런 장면이 됩니다. 아버지가 거실에서 들으라는 듯이 한숨을 쉽니다. “아이고, 내가 사기를 당해서 빚을 졌네. 이 돈을 어디서 갚는단 말인가?” 그러고는 딸의 통장을 흘끗 봅니다. 딸은 그 시선의 무게를 느끼고 자기 적금을 해지합니다. 아버지는 딸이 자발적으로 그렇게 했다고 말합니다.
이게 효도일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스님, 그리고 뱃사람 여러분, 당신들도 무사하지 못합니다.
심학규 씨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도 공평하지 않으니, 다른 분들 이야기도 좀 해보겠습니다.
먼저 그 스님. 부처님의 자비를 전한다는 분이 가난한 맹인에게 “삼백 석 시주하면 눈을 뜰 수 있어요” 하고 영업을 하십니다. 그 시절엔 라식 수술도 없었을 텐데, 어떤 의학적 근거로 그런 약속이 가능한 것인지요. 만약 시주는 받았는데 눈을 못 뜨면 환불은 되는 건가요? 영수증은 끊어주시는지요. 그 시절 삼백 석이면 한 가족이 몇 해를 너끈히 먹고살 수 있는 양식이었을 텐데 말입니다.
이건 명백한 가스라이팅에 가깝습니다. “네가 더 정성을 보여야 부처님이 들어주신다”는 프레임을 씌워, 결국에는 어린 딸의 등을 인당수 쪽으로 떠미는 구조이거든요. 종교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이 거대한 폭력 앞에서, 어린 저는 ‘절대로 속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 절이 좀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뱃사람들. 이쪽도 만만치 않습니다.
“저희가 인당수를 안전하게 건너야 하니, 처녀 한 명을 제물로 바쳐야 합니다.”
이게 21세기였다면 즉시 신고감입니다. 인신매매에 살인 교사가 더해지는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분들은 너무나 당당하게 “공양미 삼백 석에 처녀 한 명 사겠습니다”라며 거래를 합니다. 그리고 마을 사람 누구도 이 거래를 말리지 않습니다.
심청전이 무서운 건 단지 한 사람이 나쁘기 때문이 아닙니다. 마을 전체가, 종교가, 상인들이, 그리고 이 동화책을 만드는 어른들이 모두 합심해서 “어린 딸을 바다에 던지는 일”을 미담으로 만들고 있다는 점이 무섭습니다.
뺑덕어멈 등장에 솔직히 좀 통쾌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자, 여기서 솔직한 고백을 하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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