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노래방에서 이루어진다

by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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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중간고사를 마치고 학원 원장 선생님이 아이들을 데리고 노래방에 갔다.

시험이 끝난 우리는 돌아가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때 한 남자아이가 015b의 'h에게'를 불렀다.

난 015b를 좋아했고 이 노래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였다.

원래 별 관심 없는 남자아이였는데...

그 노래를 끝내주게 불렀다.


그렇다. 난 그 순간 그 아이에게 반했다.


그때부터 그 아이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 아이는 농구를 좋아하고 학원 오기 전에 아이들과 농구 시합을 하고 땀에 젖은 채로 들어왔다.

그 당시 슬램덩크가 유행이었고 우리는 모두 농구에 미쳐있었다.

난 그 아이가 농구하는 것을 멀리서 지켜봤다.

슛도 잘 넣었지만 그 아이는 리바운드를 잘했다.

골대 밑에서 어떻게든 기회를 만들고자 했다.


리바운드를 지배하는 자가 경기를 지배한다

만화 슬램덩크


언제나 나의 오른쪽 대각선에 그 아이가 앉아 있도록 해서 그 아이를 바라봤다.

불행하게도 그 아이는 같은 학원 다니는 다른 여자아이와 사귀었다.

그 아이가 다른 여자아이에게 꽃을 주고 편지를 주고 손을 잡고 다니는 것을 봤다.

매일 그 감정을 내 일기장에 썼다.

구구절절 그 아이에 대한 나의 심정을 적었다.


그러나 나의 일기를 언니와 엄마가 훔쳐봤고

하루는 밥을 먹는데...


'너 누구 좋아하더라...'


이 말을 언니가 식구 모두 있는 자리에서 하고 말았다.

나는 너무 열이 받아서 내 일기 왜 보냐며 길길이 날뛰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난 암호를 만들었다.

가령 '바라봤다'이면 '손을 씻었다' 모 이런 식이었다.

가끔 중학교 때 일기장을 보는데...

분명 암호로 쓰인 부분인데 도통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암호 해독지를 잃어버려서 아쉽게도 알 수가 없다.


일 년 넘게 그 아이를 짝사랑했고

그렇게 나의 열병은 끝이 났다.


얼마 전 그 아이가 너무 궁금해서 구글신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래서 현재의 그 아이를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찾지 않는 것이 더 나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기억 속의 15살 그 아이의 모습은 단 1%도 남아있지 않았다.


가끔 015b의 'h에게'를 듣는다.

나를 중학교 시절로 인도한다.

싱그럽고 아름다웠던 나의 유년 시절로 말이다.

그 시절의 내가...

그 시절의 그 아이가 있다.

우린 그 노래방에 있고

그 아이가 부르는 노래를 가만히 듣고 있는 내가 있다.


h에게 가사


넌 아무것도 내게 줄 수 없지만

나의 마음 가져가버린 걸

난 수많았던 아픔밖엔 없지만

더 큰 아픔 주는 네가 되면 싫어

내 마음속에 커져만 가는

너의 자린 헤어날 수 없는

나만의 깊은 외로움만을 남기네


수십 번 그 아이를 생각하며 가사를 곱씹었던 노래이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이 나를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

얼마나 그 아이를 생각하며 가슴을 졸였는지...


나 아니 다른 아이와 행복한 그 아이를 보면서

수많은 밤을 무너져 내리고 슬퍼했다.

그 아이는 아마 나의 존재조차 모를 것이다.


00야

안녕~

00학원 기억나?

우리 같이 학원 다녔잖아..

나 너 그때 많이 좋아했었어.

고백도 못 하고 혼자 짝사랑으로 끝났지만...

이렇게 뒤늦게나마 말할게.

아직도 노래방 18번이 'h에게'이니?

너 그때 대게 대게 멋있었어.

농구는 가끔 해?

얼마 전 영화 슬램덩크 했는데...

너 생각나더라.

우리 그때 참 농구에 열광했지...

왜 이렇게 너에게 편지를 쓰는데 눈물이 날까?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라 그런가?

나의 10대는 너를 빼곤 이야기할 수 없어

우린 어설펐고

우린 뜨거웠고

우린 그랬지...

아마 넌 나에게 그런 시절을 추억하게 하나 봐

가끔 너를 그리고 나의 유년 시절을 기억할게.

잘 지내~

나의 첫사랑!


https://youtu.be/JKew8cFSK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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