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몰래 그녀를 바라본다. 집안 거실에서 옆집 그녀의 거실창을 본다. 그녀는 창문으로 앞마당에 놀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고 있다. 그녀는 이렇듯 닿을 듯한 거리에 있지만 마주 할 순 없다. 뒤늦게 생긴 그녀에 대한 감정에 나도 적잖이 당황스럽고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나 내 감정에 솔직해지기로 했고 이런 나를 받아들였다. 그녀는 아이들 때문에 몇 번 왕래가 있어 얼굴만 아는 정도였다. 우리 집 아이와 그녀의 아이가 같은 어린이집에 다녀 등하교를 하면서 알게 된 것이다. 옆집이어서 애들끼리 서로 집에서 놀기도 했다. 그때까지도 그녀는 나에게 그리 눈에 띄는 존재는 아니었다. 그녀는 다소 마르고 신경질적으로 보였다. 그러다가 독서모임에서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주 1회 모이는 독서모임에서 그녀는 조용하지만 조곤조곤히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편이었다. 가녀린 몸매와는 다르게 그녀는 꽤나 자기 소신과 주장이 강했다. 그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전 주인공이 그러한 결정을 하기까지 충분히 힘들었고 많은 생각 했다고 봐요. 의무감 책임감만으로 가정을 이끌 수는 없으니까요~”
그날은 여주인공이 남편과 불화로 우여곡절 끝에 결국 이혼하게 되는 소설책을 읽고 느낀 점을 토론을 하고 있었다. 여주인공이 남편과 이혼까지 한 것을 두고 너무했다는 의견이 팽배했다. 가정을 지키지 위해서는 어느 정도 희생이 필요하다는 의견들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조용히 반박을 한 것이다. 그전에도 자기주장을 내세우긴 했지만 이번에는 매우 강한 어조였다.
“서로 맞지 않다고 이혼이 해결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노력도 희생도 필요하죠.”
“저도 그 점에 동의하지만 도저히 접점이 보이지 않는다면 주인공처럼 이혼하는 것도 답이라고 봐요.”
“너무 본인만 생각하는 것 아닌가요? 아이도 있고 남편이 아주 나쁜 사람도 아닌데...”
“나쁘지 않아도 서로 안 맞을 수가 있죠. 전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그녀의 말 한마디가 내 가슴속에 박혔다.
“행복하세요?”
내가 그녀에게 물었다.
“행복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행복이 노력으로 되나요?”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말하는 그녀의 눈빛이 쓸쓸해 보였다. 그녀는 소설 속 주인공에 강하게 감정이입하고 있었다. 그녀 역시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은 듯했다. 그런 말을 아내가 전에 했기 때문이다.
“옆집 부부 사이가 안 좋나 봐. 남편이랑 항상 심각하게 이야기하고 저번에 집에 갔을 때는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있더라고”
“여주인공의 선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녀가 나에게 물어왔다.
“전 잘 모르겠어요. 결혼을 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어느 정도 희생은 따르게 되고 아이가 있다면 부모로서 책임과 의무감도 있죠. 그와 동시에 가정에 매몰되지 않고 한 인간으로서 행복해야 된다고 봐요. 둘 다가 조화롭게 이루면 좋겠지만 어느 하나도 소홀할 수는 없는 문제인 것 같아요.”
“둘 다 조화를 이루고 계신가요?”
나는 그녀의 질문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노력하고 있습니다.”
“둘 다 노력 중이군요. 노력만 하다 끝날까 봐 두렵네요.”
그녀가 허탈한 듯 웃었다. 그녀와 단둘이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서로 나눌 이야기가 많아 보였다. 나도 이 소설에 나를 심각하게 대입하면서 읽었다. 아내와 나 역시 관계가 냉랭하기 때문이다. 우린 결혼 후 3년이 지났을 때 서로 함께하기 힘들다는 데 동의했다. 그러나 마침 아이가 생겼고 책임감 있는 부모가 되어야 했기에 지금에까지 이르고 있다. 아내와 정신적 유대감이 없어지자 집은 더 이상 나에게 따뜻한 보금자리가 되지 못했다. 아이 앞에서 서로 다정한 척 하지만 언제까지 속일 수 있을지 이게 과연 옳은 일인지 알 수가 없다. 나와 같은 처지인 소설 속 주인공을 보면서 몰입하면서 읽었다. 이혼으로 끝난 소설을 보면서 대리만족도 했다. 내면에 억눌러 온 무언가를 건드렸다.
그녀도 이런 고민을 할까? 그녀는 소설 속 주인공과 같은 결론을 내리려는 것일까? 나는 어떡해야 할까? 이런 내면의 이야기를 그녀와 하고 싶다. 같은 처지인 그녀에 대한 이 마음은 단순한 호기심일까? 이성의 끌림일까? 중요한 건 하루 종일 그녀 생각을 한다는 점이다. 그녀에게서 나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런 나를 이해해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녀에게 다가갈 용기는 없고 오늘도 난 거실에서 그녀의 집을 바라본다. 때마침 그녀가 창밖을 바라본다. 아, 그녀와 마주 보고 이야기하면 얼마나 좋을까? 독서모임에서처럼... 그녀는 지난주 독서모임에 나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그녀가 독서모임에 앞으로도 나오지 않는다면 영영 그녀와 대화할 기회는 사라지는 것일까?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렇게 그녀를 몰래 바라보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