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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Z 교장 Oct 04. 2023

공중전화기

벽에 딱 붙어 있어라!

제목 : 공중전화기


벽에 딱 붙어 있어라.

숨도 쉬지 말고,

눈동자도 움직이지 말고,

마치 원래부터 그 담벼락과 한 몸인 것처럼.

그것만이 네가 살 길이다.


찾는 이 없다고 슬퍼하지 말아라.

옛 추억의 영광 곱씹으며 기다려라.

너는 한 때

수많은 연인들의 사랑의 전도사였고,

도시로 떠난 가난한 자식들이

부모에게 효자 노릇을 하게 해 준

고마운 존재였음을 기억해라.


앞사람이 통화를 다 마칠 때까지 기다리는 여유와

하고 싶은 말은 동전이 허락하는 데까지만 하는 절제와

남는 동전은 다음 사람을 위해 남겨두는 이웃사랑을

깨닫게 해주는 이가 바로 너 였음을

언젠가는 다시 알아주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러니 기다려라.

아이들이 자기만의 세상에 갇혀 있을 때,

어른들이 사유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세상을 받아들일 때,

그래서 온 세상이 커다란 스마트폰의 세상에 갇히게 될 때,

비로소 꿋꿋이 버틴 너를 마침내 찾을 것이다.



신기하게도 한 달이 지나니 학교 주변에 있는 소소하고 작은 것들이 눈에 보입니다

교장실 창가 바로 아래에는 누가 심었는지 모를 고추나무 여러 그루가 있답니다. 고추 몇 개는 늦가을 단풍잎처럼 빨갛습니다. 파란 고추 한 개를 따서 가운데를 동강 내어 코 끝에 갔다 대니 매운 기운이 콧구멍을 타고 온몸에 퍼집니다. 순간 정신이 아찔합니다.

고추나무 바로 옆에는 방울토마토도 있습니다. 방울토마토는 따지 않고 눈으로만 그 맛을 보고 맛이 없다고 단정 내립니다. 고추와 방울토마토 나무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태양과 물을 영양분 삼아 살아가는 식물에는 도통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학생과 교사에게는 좋은 교장일지 몰라도(혼자만의 생각이 아니길), 이 녀석들에게는 나쁜 교장임에 틀림없습니다.


학교 본관 출입문 옆에 낡은 공중전화기 한 대가 오래된 영사기 필름처럼 제 눈에 들어옵니다.  모두 핸드폰을 갖고 있는 요즘에 벽에 딱 붙어 있는 공중전화기가 너무 낯설었습니다. 스마트폰 없이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우리 아이들에게 이 공중전화기는 어쩌면 스마트폰의 한낱 배경화면일 뿐일 것입니다.


저와 그녀가 결혼할 수 있게 한 일등공신은 단연코 공중전화기였습니다. 아마 이 전화기가 없었다면 군대 가자마자 우린 헤어졌을 것입니다. 그 시절 아내는 군인인 나와의 연락을 위해 용돈의 대부분을 전화비로 썼습니다. 우린 백 원짜리 동전을 수북이 쌓아 놓고 뒤에 기다린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일상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공중전화기 덕분에 지금의 아내와 결혼 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학교 공중전화기는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언제든, 긴급할 때, 꼭 필요할 때 소식 전해 줄 요량으로 딱 한 번의 쓰임을 위해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공중전화기가 참 대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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