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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hos Nov 02. 2022

부모 옆에서 웃는 아이들

학교폭력예방법의 이면

학생부장, 교육청 담당장학사, 교감을 하면서 학교폭력 사례들을 많이 접했습니다.

욕심이겠지만 관련 이야기들을 많이 하고 싶은데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섭니다.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교감 선생님, 오늘 00 교과 시간에 앞에 있는 학생이 뒤에 있는 학생에게 학습지를 나눠주다가 얼굴을 때렸습니다. 앞에 앉은 학생은 실수로 그랬다고 하는데 뒤에 있는 학생과 학부모는 일부러 그랬다며 학교폭력 신고를 하겠다고 합니다. 제가 볼 때는 실수로 그런 것 같거든요."


   학교에서 일어나는 학생 관련 문제상황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학교폭력이고, 다른 하나는 학교폭력 이외의 사안 즉, 수업태도 불량, 시험 부정행위, 흡연 등입니다.

   학교폭력은 무조건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약칭: 학교폭력예방법)'에 따라 절차대로 진행해야 하고, 이외의 학생사안은 '학교규칙'의 학생생활교육위원회(또는 학생선도위원회)에서 진행해야 합니다.

   위의 사례처럼 고의가 아닌 실수 또는 학생 간 단순한 갈등의 경우도 피해 당사자가 학교폭력이라고 주장하면 법대로 처리해야 합니다. 물론 고의가 아니라도 당한 학생이 폭력이라고 느꼈을 경우라면 당연히 학교폭력으로 처리해야 하겠지만, 누가 봐도 단순 실수이고 단체생활에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갈등 상황임에도 상대방이 법대로 처리하길 요구하면 어쩔 수 없이 그래야만 합니다.

   문제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법'이 개입함으로써 대화를 통한 관계 개선과 성숙한 민주시민으로의 성장을 가로막는다는 것입니다. 서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 상황을 생각해봄으로써 사과와 용서를 통한 교우관계 개선을 원천 봉쇄한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모든 갈등 상황을 학교폭력예방법으로 처리하면 승자와 패자,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분법적인 인간관계와 서로 상처만 남기는 결과를 초래할 뿐입니다.



"안녕하세요? 어제 학교폭력 전담기구에 참석했던 피해학생 학부모입니다. 너무 속상해서 전화했습니다. 가해학생 어머니가 학교장 자체 종결처리를 해달라고 애원하고 또 가해학생이 초등학교 때부터 아는 아이라 마지못해 학교장 자체 종결처리에 동의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아이가 너무 억울하다고 울고불고 난리입니다. 자기를 때린 아이는 사과 한 마디 없이 학교에서 자체 종결처리됐다면서 아무 일 없다는 듯 떠들며 다니고, 자기는 맞은 것도 서러운데 때린 아이는 당당하게 학교생활하는 것이 너무 속상하다고요."


   피해학생과 보호자가 교육지원청의 심의위원회 개최를 원하지 않고 다음 각 호에 모두 해당하는 경미한 학교폭력의 경우, 학교장은 학교폭력사건을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학교폭력예방법 제13조2) .


 - 2주 이상의 신체적ㆍ정신적 치료가 필요한 진단서를 발급받지 않은 경우

 - 재산상 피해가 없거나 즉각 복구된 경우

 - 학교폭력이 지속적이지 않은 경우

 - 학교폭력에 대한 신고, 진술, 자료제공 등에 대한 보복행위가 아닌 경우


   문제는,

   '경미한 학교폭력의 경우' 위의 조건을 충족할 시 학교장 자체 종결로 끝납니다. 그런데 이렇게 끝난 학교폭력은 가해자에게 이런 경미한 폭력은 법에 의해서 처벌받지 않는다는 잘못된 생각으로 자칫 면죄부를 줄 수 있습니다. 또한 자체 종결로 끝난 사안이므로 폭력을 행사한 당사지에게 책임을 지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피해학생에 대한 사과나 협박 금지와 같은 가해학생에 대한 조치는 교육지원청의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의 결과가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즉 학교장 자체 종결로 끝난 학교폭력은 가해학생에 대한 조치를 강제할 수 없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장학사님 큰 일 났습니다. 본교 학생 한 명이 편의점에서 대학생을 때려 코 뼈를 부러뜨렸습니다. 지금 대학생은 병원에 실려 갔고 우리 학생은 경찰서에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학교폭력이란? 학교 내외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발생한 상해, 폭행, 감금, 협박, 약취ㆍ유인, 명예훼손ㆍ모욕, 공갈, 강요ㆍ강제적인 심부름 및 성폭력, 따돌림, 사이버 따돌림,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음란ㆍ폭력 정보 등에 의하여 신체ㆍ정신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를 말합니다(학교폭력예방법 제2조).

   대학생을 때린 학생은 법령상 학교폭력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학교폭력은 '학생을 대상으로' 저지른 것으로 피해자가 반드시 학생이어야 합니다. 또한 여기서 말하는 학생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특수학교에 다녀야만 합니다(학교폭력예방법 제2조). 그래서 최근 증가하는 유치원 아이들의 폭력은 법령상 학교폭력이 아닙니다. 이 때문에 유치원 피해학생에 대한 지원 대책을 학교폭력예방법으로는 도울 수가 없습니다.


   학교폭력예방법은 2004년에 시행된 법으로 지금까지도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폭력을 일으킨 학생은 응당한 처벌과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의 모든 갈등을 '법대로' 처리하는 것이 과연 지금의 우리 아이들에게 온당한 것일까요?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에서 서로 자기 아이만 감싸며 언성을 높이는 부모 옆에서, 우리가 언제 그랬냐는 듯 어린아이들이 서로 웃는 모습. 그 자리에 있던 아이들의 눈에는 어른들의 이런 모습이 어떻게 비쳤을까요?



다음은 학교폭력 담당 책임교사의 일상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소개한 사례들은 사실에 근거했지만 학교, 학년, 학생 등은 가공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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