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휘, "긴 밤의 약속"
결혼한 지 26년이 되는 나는 사랑의 이데아는 어떤 모습일까?에 대해 가끔 생각하곤 한다. 우리에게 학습된 사랑은 히말라야 산맥의 만년설처럼 변하면 안 되는 모습이어야 한다. 과연 현실에서도 사랑은 몇 만년 동안 녹지 않은 모습일까?
인연이었을까? 얼마 전 유튜브 알고리즘은 '진휘와 수경의 사랑이야기'를 내게 넌지시 보여주었다. 20여분의 짧은 영상을 본 후 주인공인 진휘 씨가 책을 냈다는 말을 듣고 망설임없이 스마트폰으로 종이책을 주문했고,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숨 죽이며 '긴 밤의 약속'을 읽었다.
작가 진휘 씨는 스리랑카에서 대학 5년 선배인 여행가 수경 씨를 만났다.
"수경은 여행가였다. 그녀는 전 세계 40개국을 누비며 생애 가장 빛나는 순간을 사막과 극지대, 배낭 여행자들의 활기로 가득 찬 거리 위에서 보냈다."
만남이 있은 후 몇 년 뒤(2014년) 여느 평범한 연인들처럼 외출을 하려는 찰나 "진휘야, 왼쪽 팔이 이상해. 감각이 없어."라는 말과 함께 수경 씨는 뇌출혈로 쓰러졌다. 이후 수경 씨는 의식은 있지만 몸의 모든 기관이 망가진 상태가 되어 버린다. 작가는 이런 수경 씨 곁을 떠나지 않고 10년 동안 지키고 있다. 이 두 사람의 사랑은 2024년 현재까지 진행형이다.
짐작한 대로 작가의 가족은 아들의 이런 모습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특히 작가의 아버지는 "너 거기서 뭐 하고 있어? 결혼한 사이도 아닌데 네가 왜 거기에 있어? 넌 네 인생을 살아야지!"라는 말을 하면서 떠나간 자식을 다시 당신의 품으로 되돌리려고 많은 노력을 한다. 가족뿐만 아니라 진휘 씨의 많은 주변인들도 '네 인생을 살라고' 조언을 했다. 하지만 진휘 씨는 "삶이 짓밟혀 어느 것도 위로가 되지 않을 때에도 그녀는 내 사소한 말장난과 익살스러운 표정에 미소 짓는다. 웃음이 있어 고통스러운 하루가 길지 않다."라는 말을 하면서 그녀의 손과 발이 되어준다.
진휘 씨는 대기업 입사 시험 최종 면접까지 갔다고 한다. 하지만 면접관이 '합격하면 병원에 가기 힘들 텐데 어떻게 할 거냐?'라는 질문에 "섣불리 결정하기 어려운 사안이라 회사에 다닐지 말지는 합격한 이후 신중하게 고민하려고 합니다."라고 답변을 하고, 최종 면접에서 떨어진다. 진휘 씨의 사랑은 그 깊이와 폭을 헤아릴 수 없다.
온몸이 마비되어 거의 움직일 수 없음에도 진휘 씨는 수경 씨 표정의 섬세한 변화를 읽어 내어 그녀의 마음과 의도를 파악한다. 아니 대화를 한다.
"수경은 모든 감정을 오직 두 가지 표정으로만 내비치지만, 오래 관찰하다 보면 표정에 미세한 차이들이 있다는 것을 감지하게 된다. (중략) 눈이 마주쳤을 때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면 나의 얘기에 귀 기울여 듣고 있다는 신호다. 시선을 거두고 아래턱을 살짝 벌리면 전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는 신호다. (중략) 인중이 길어지면서 양쪽 입꼬리가 아래로 내려간다면 자신의 처지가 서글프거나 마음이 속상해서 드러나는 서러움의 표시다."
작가인 진휘 씨는 사랑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10년이 지나고서야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사랑은 말이 아닌 결심과 행동으로 이루어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라고.
'사랑 그 죽일 놈의 사랑'이라고 외치고 싶은 분에게 이 책을 권한다.
믿을 수 없지만 이런 사랑도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2i679jWkRQ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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