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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 Jul 16. 2020

삶에서 자동차 빼기

제17회 서울환경영화제 리뷰



사실, 나는 운전하는 걸 좋아한다. 어떤 곳에 도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드라이빙 자체를 즐기는 편이다. 아침에 일어나 그런 충동이 오는 날, 훌쩍 어딘가에 가서 커피 한 잔 마시고 돌아온다든지, 해변 한 번 찍고 다시 몇 시간을 운전해 돌아오는 식이다. 고속도로보다는 당연히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는 국도를 좋아한다. 차가 막히는 주말이나 시간대는 피해서 다니기에 그런 날은 퍽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한편으로는 혼자 차를 타고 다니는 게 불편한 마음이 들어 평소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앞에서 서술한 날은 일상의 일부일 뿐이고 내가 운전을 할 때란 대개 아이들과 어딘가에 가거나 가족들과 함께 놀러갈 때 등등이기 때문에 차에 타고 있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일 때가 많다. 가족들 때문에 그렇다는 얘긴 아니다. 도로를 꽉 채운 차들, 빵빵대는 소음, 앞인지 옆인지 어디선가 훅 들어오는 담배냄새의 습격, 고속도로에서 종종 만나는 무개념 운전자들, 때로는 처참한 사고의 흔적들까지.

운전을 즐기는 나와 상충되는 또 다른 정체성은 자동차를 없애라고 충고한다. 내 차는 요즘 같은 때, 한 달이면 20일 이상을 주차장에 모셔져 있기에 비용 면에서는 당연히 없애는 게 맞다. 급히 차를 써야할 때는 어쩌냐고? 따지고 보면 가끔 급히 차를 써야 할 일이라는 게 생각보다 별로 없다. 그게 아이들이 어릴 때 갑자기 응급실에 가야 한다든가,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어딘가에 가야 한다든가 하는 일인데. 내 경우는 아이들이 어릴 때도 집에서 10분 거리에 떨어져 있는 대학병원 응급실에 가본 일이 거의 없었고, 부모님이 점점 나이 들어가는 건 사실이지만 아직 운전을 하고 계시니 별로 해당이 안 된다 할 수 있겠다.     


연식이 오래돼서 고장이 나거나 사고가 나면 없애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긴 했다. 헌데 어쩐 일인지 아직까지 별 이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사고 한 번 낸 적이 없다. 주차하다가 사람 피하느라고 한 번 긁은 적은 있지만 스크래치 지우는 약으로 정비소에 안 가고 해결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이 차와 지내온 지 8년 정도 됐는데 한 번씩 고비가 온다. 그게 언제인가 하면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보거나 환경에 관한 책을 읽을 때다. 별로 팔랑귀라고 생각하는 편은 아닌데 유독 그런 데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다. 20대에는 존 로빈스의 「음식혁명」이라는 책을 읽고 7년 동안 채식을 한 적도 있었고, 출산 후 육식을 하다가 영화 ‘옥자’를 보고 그 좋아하는 삼겹살을 끊었으니 팔랑귀가 맞을 런지도.     



얼마 전에 서울환경영화제가 있었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대부분의 작품을 온라인 상영관에서 볼 수 있도록 했는데 환경영화제가 내게는 일 년에 한 번씩 오는 고비라고 말할 수 있겠다. 대개는 식습관에 관해 영향을 많이 받았다면 올해는 자동차에 말 그대로 팍 꽂혔다. 이제 그 시기가 온 것이다. 차를 없애야 하는 때.

첫 번째 위기는 ‘위장 환경주의’를 볼 때 왔다. 자동차 매연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 그래, 다 알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지. 그래서 지금 내가 전기차 사려고 기다리고 있잖아. 이 다큐멘터리 영화에서는 그런 태도조차 ‘위장 환경주의’의 일부분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사실 전에도 들었지만 왠지 외면하고 싶어져서 한쪽 귀로 흘렸던 얘기였다. 어차피 전기차의 동력인 전기라는 것도 완전한 에너지라고 볼 수도 없는 것이 밀양 송전탑 같은 논란을 생각해 보면 된다. 도시에 사는 수천만의 안락한 삶을 위해 희생되는 지역과 사람들이 생기게 마련이니까. 마음이 불편했다.

두 번째는 ‘마더 로드’였다. 한때는 자전거에 별다른 안전장비도 없이 어린 아기를 태우고 다니는 엄마들을 보면 속으로 욕했었다.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소리를 질러 의사표현을 한 적은 없지만 그들이 무책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카고 바이크’를 보니 눈이 번쩍 떠졌다. 왠지 멋있고 힙한 대체물을 발견한 것 같아 기뻤다. 그래, 저 정도면 차를 없앨 수도 있겠어. 자전거에 태우고 다닐 만큼 어린 자식이 없다는 건 이미 중요하지 않았다. 영화가 끝난 후 폭풍 검색. 연식 오래된 중고차 한 대 값이면 카고 바이크를 해외 직구로 받아볼 수 있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태우고 다닐 어린 아이가 없으니 음, 일단 보류.

결정타는 영화제 마지막 작품이었던 ‘2040’이 날렸다. 데이먼이라는 호주의 영화감독이 자신의 딸 벨벳이 성장한 2040년에 어떤 미래를 영위하길 바라는지, 희망사항으로 채워진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뭐, 환경영화제에서 틀 수 있는 판타지 영화 정도라고 보면 되겠다. 마지막에 튼 영화니만큼 희망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고 나는 나름대로 앞으로의 인생에서 ‘이건 더하고 이건 빼면 되겠구나’를 저울질할 수 있었다. 더해야 하는 건 채식 식단으로 돌아갈 것, 그리고 여권신장을 위한 활동을 할 것. 빼야 하는 건 자동차 없애는 걸로 가능할 것 같았다.


다시 결론은, 그렇다. 자동차를 없애고 쏘카나 그린카 같은 공유 서비스 체제를 삶에 들이는 것이었다. 운전을 좋아하는 나에게 여러 가지 차종을 운전해 보는 경험도 썩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더해졌다.

항상 이럴 때는 손이나 발보다 머릿속이 더 분주하다. 아직 가족들에게 말도 꺼내지 못했는데(참고로 남편은 애들 데리고 동네 미용실 갈 때도 차를 타고 가는 인간이다)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상상은 이미 경험해본 것처럼 생생하다. KTX를 타고 경주에 도착해 쏘카의 전기차를 빌려 경주 시내를 활보하는 건 꿈으로 꿀 정도다. 그런 리스트를 머릿속에 나열하면서 오랜만에 즐겁다. 과연 이제 때가 무르익긴 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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