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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초 Apr 06. 2020

외국계에서 영어로 업무하는 것: 전지적 외국인 시점

스스로 과소평가 하고 있는 그대들에게

나는 전 세계에 법인이 있는 외국계 회사에 다닌다.


내가 있는 한국 법인은 한국인이 대부분이지만 내가 인차지되는 업무는 거의 영어로 진행이 된다. 고객이 한국 기업인 경우는 한국어로 진행하게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이 글로벌 프로젝트에 투입이 되기 때문에, 고객이 전 세계 어디든 있을 수 있어 문서는 물론이고 회의로 영어로 진행이 될 때가 많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으로서, 글로벌 기업에서 영어로 근무하는 것에 대한 나의 견해를 공유해보고 싶다.



외국계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은 돌아보면 사실 나의 삶에서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 일수도 있다. 나는 중국에서 오랫동안 유학을 했다. 한 17년 정도. 고등학교 졸업 후 한국으로 대학을 진학했지만 북경에서 공부할 기회가 있어 또 다시 유학을 하고, 졸업 전 뉴욕에서 일할 기회가 생겨 미국에서 또 다시 일년,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들어왔다. 그니까 나는 한국어와 중국어가 나의 모국어와 다름 없고, 영어는 나에게 제3언어인 셈이다. 다양한 언어에 노출되는 삶을 살아서인지 자연스레 "3개 언어를 모두 사용할 수 있는 회사"가 회사를 고르는 기준 중 하나가 되었고, 나의 가치관에 맞는 곳은 자연스럽게 글로벌 외국계 회사가 되었던 것이다.


실제로 졸업 후엔 한국 대기업에 취업을 하긴 했지만 한 달 만에 퇴사했다. 문화나 회사 동료들의 가치관이 너무 달라 불편한 옷을 입고 있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반면에 외국계 회사에선 다양한 문화권에서 성장한, 소위 multicultural형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다양성에 대한 폭이 훨씬 넓었다. (다양한 문화권이 존재하는 회사여도 성급한 일반화주의자는 존재한다. 가령 본인의 경험으로 한 나라에 대해 다 안다는 듯 얘기하는 등, '역시 미국은 어떠하다, 중국사람들은 어떻다.' 하는 발언을 들을 때면 놀랍다. 일을 하면서 느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아주 가끔 이들의 일반화가 업무 프로세스를 좀 더 편리하게 해주기도 한다는 게 어처구니 없지만 사실이다.)


아무튼, 영어가 제2외국어로 아닌 제3외국어인 나에겐 근무할 때, 특히 고객 혹은 다른 나라 법인 동료들과 컨퍼런스 콜을 할 때가 가장 챌린지 되는 시간이다. 이 글을 쓰는 것도, 방금 뉴욕에 있는 동료들과 콜미팅을 마치고, 아쉬움과 짜릿함 따위의 복잡한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쓰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비즈니스 환경에서 영어 실력에 대한 현실과 오해


여러 외국 사람들과 업무를 하면서 알게 된 것은, 한국에서 말하는 영어실력과 영어권 국가에서 말하는 영어실력에 대한 인식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이었다. 일단 중국은 제외하고, 내가 지금 살고 있는 한국만 두고 이야기해보자. 한국에서 영어를 잘한다는 것은 "완벽한 문장을 구사하는 것", "듣기 실력이 뛰어난 것", "발음이 좋은 것", "사람들 앞에서 영어를 입 밖으로 내뱉는 것"으로 간주되곤 하는데, 영어 원어민이 생각하는 (외국인으로서) 영어를 잘한다는 것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에 초점이 더 맞춰져 있었다.




내가 회사에 와서 짧고 긴 미팅에 참석하면서 느낀 점을 간략하게 4가지 정도로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교과서 영어보다 자연스러운 것이 더 중요하다.

초반에 스몰토크 안하는 미팅을 본 적이 없네.

상황에 노출되는 것이 필요하다.

모국어가 아닌 이상 공부해야 한다.



1. 교과서대로 하는 것보단, 자연스러운 것이 더 중요하다.

영어는 완벽한 커뮤니케이션이 되는 수준이 아니어도 된다. 그들은 우리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회사 동료들이 많이들 오해하고, 걱정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영어로 메일을 작성하는 법이다. 우리나라에선 사내 메일을 작성할 때의 극존칭 법, 문어체, 한자어 등 여러 가지 고급 어휘를 사용해서 글을 작성하곤 하기 때문에, 영어로 그런 고급 어휘를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고민인 사람들을 여럿 보았다. 내 경험에 의한 바로는 (+영어권 친구들의 조언을 보태자면), 오히려 쉽게 써도 잘 설명되어 있는 메일이 좋은 메일이지 고급 어휘만 가득한 메일은 잘 없었다. (물론 써야 할 때는 쓴다.. 고객에게 주는 보고 메일 등) 처음 미국에서 일을 시작할 때 나도 가지고 있던 고민이기도 했는데, 동료가 메일은 사실 전달을 간략하고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쓰는 것이 본인은 좋은 것 같다는 조언을 해주면서 고민의 무게를 덜어주었었다. 그 후론 나도 가볍게 메일을 쓰면서 오히려 더 bonding 되는 기분을 느꼈다. 우리나라의 회사 문화와는 좀 달리, 중요한 것은 가벼운 투로 메일을 써도 (심지어 연장자에게도 - 부모님 친구도 이름 부르는 문화라는 것을 잊지 말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메일로 대화하는 경우가 태반인 영어권 문화에서 메일은 쪽지 같은 개념이라 이해해도 되는 것 같다. 매번 쪽지로서 사용하지는 않지만,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회신이나 전달을 몇 번씩 핑-퐁 하는 경우엔, "어 알겠어, 연락 줘" 등 짧게 주고받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매번 기-승-전-결을 지켜야 할 필요도 없으며, 오히려 가벼운 투로 대화가 명확히 전달하는 것이 소위 영어권 애들이 보기에, 자연스러워 보일 것이다.



2. 자연스러운 대화는 본론 10%, SMALL TALK 90%

주제를 휘황찬란 설명하는 영어 실력보다 시작과 끝맺음의 단백한 스몰토크를 티키타카 이어가는 실력이 더 중요하다고 할 정도로 스몰토크의 힘은 강했다.


컨퍼런스 콜에 들어가면, 가장 어색하고 눈치 보이는 순간이, 첫 입장할 때와 마무리 인사를 할 때이다. 대면하는 경우가 아니라 더 그렇다. 단체 콜방에 선착순으로 들어오다 보니 내 친한 사람들이 아직 콜에 안 들어와 안 친하거나 처음 보는 사람들이랑 인사를 나눠야 할 때가 있다. 게다가 소위 콜을 주최한 주최자가 입장하기 전이라면 전화기 너머도 정적만 흐른다. 이때 누군가가 ice-breaker가 되어주어 말을 건네 온다. 보통은 "안녕 거기 다 누구야 소개를 해야 하나? 껄껄껄" 이런 식이다. 그럼 하나둘 씩 그 정적을 깨기 위한 "스몰토크"를 시작한다. 요새는 코로나 얘기가 많고, 역시나 외신에서도 많이 소개되다 보니, 우리나라에 대한 상황을 많이 물어온다. 그럼 이때, 어쩌면 별 의미 없고 가벼운 대화인 이 스몰토크에 자연스럽게 받아치고 참여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러운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이다. 주제에 대한 이야기는 선 준비가 가능하기 때문에 누구나 어느 정도 이야기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스몰토크는 준비되지 않은 영어라서 즉흥적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스몰토크는 무거운 얘기가 아닌 대부분 아주 가벼운 얘기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스몰토크에서 자주 사용되는 언어나 표현법을 알고 있는 게 무척이나 중요하다 느꼈다. 나 또한 콜을 마치고 나면 본론에 대해 잘 이야기하지 못해 아쉬운 적보다 스몰토크에서 자연스럽게 반응하거나 이끌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느낀 적이 있을 정도였다. 스몰토크를 잘하면 콜 분위기 전체가 되게 좋고, 아이디어 수용도도 훨씬 너그러워진다. 짧은 스몰토크지만, 조금이라도 유대감을 쌓았기 때문에, 실제로는 본 적 없어도 친한 사이가 생기기도 하기 때문에, 스몰토크에 대한 공부, 난 필요하다고 보았다.



3. 상황에 노출되는 것이 필요하다.

실수하던 말던, 일단 그 상황 속에 속해야 한다.


실수하면 어떡하지, 나를 능력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나를 무시하면 어떡하지, 괜히 한국사람 욕 먹이는 거 아냐, blah blah blah.... 걱정이 많고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들은 영어권 동료나 고객사와 대화하기 전 다양한 걱정을 한다. 나도 처음에 그랬다. 사실 요새도 가끔 스펙이 화려한 사람들이나 글로벌 대기업 담당자와 대화를 하기 전 멘탈 갑자기 흔들릴 때 이런 생각이 들지만 바로 멘탈 똑바로 잡으려 노력한다. 내 멘탈을 잡아주는 말은 이거다. "난 외국인이고 영어는 내 세 번째 언어이고, 난 영어권 출신도 아닌데 영어 원어민처럼 못하는 게 당연한 거 아냐? 누가 나한테 뭐라 해. 이 정도면 졸라 잘하는 거지." 거의 토플 만점자 수준 마인드 셋으로 하는 것이다. 좀 과하긴 해 보여도, 원래 멘탈 잡을 땐 내가 최곤데?라는 마인드로 잡아야 잘 잡힌다. 이러고서 콜 들어갔다가 콜 끝나면 다시 실수한 걸로 혼자 골방에서 의기소침해 있고. 맨날 그 반복이다. (ㅋㅋㅋ) 어쨌든, 일만 잘 돌아가고 있다면 실수해도 상대방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중요한 건 일이 잘 돌아가는 것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그런 상황이 와서 내 실수 경험치를 쌓을 수 있는 기회는 아주 좋은 경험인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나 스스로에 데이터베이스가 쌓여서 실수는 줄기 마련이고, 전보다 여유를 찾게 되고, 대처하는 능력도 자연스레 상승하게 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수 안 하는 것은 최고지만 신만이 완벽할 수 있다. 인간인 우리는 실수한다. 휴먼에러라는 것을 우리는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두말할 것 없이 상황에 노출되는 경험은 기회이니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러나저러나 멀리 볼 땐 나에겐 좋은 작용을 할 것이다.



4. 공부해야 한다.

뻔하지만 기본을 무시할 수는 없다.


나는 이소룡의 철학적 가치관을 존경하는데, 이소룡이 남긴 말 중엔 이런 말이 있다. "1000가지 발차기를 하는 사람은 무섭지 않다. 다만 한 가지 발차기를 1000번 해본 사람은 무섭다." 아무리 잔머리를 잘 굴린다고 해도, 기반이 다져진 사람은 이길 수 없다. 상황에 자주 노출되고, 스몰 토크할 만한 여유 정도는 있고, 자연스러운 뉘앙스를 잘 파악한다 하더라도, 기본적인 어휘 구사력과 대화법에 대한 공부를 멈추는 순간 물 빠진 독처럼 eventually 바닥이 날 것이다. 외국어란 그런 것 같다. 나도 그렇다. 한국어와 중국어를 모국어로 가지고 있지만 한국적 문화와 사고가 더 강한 사람으로 중국어를 잘 안 쓰다 보면 잊어버린다. 모국어도 잊어버리는 판에, 외국어는 얼마나 더 빨리 독에 물이 빠져나가겠는가. 공부를 빼고 경험을 쌓는 것은 모레 위에 성을 쌓는 것과 다름없다. 단어 공부는 필-수.





영어를 잘하는 것이 한국에선 엄청난 장점. 아직까진.


여기서 내가 말한 '영어 잘하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99% 가지고 있는 토익 고득점자 말고, 위 4가지를 충족한 기본적인 회화가 가능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내가 속해 있는 부서만 해도, 팀원이 60명 가까이 되지만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10명도 채 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영어를 할 줄 아는 것만으로 회사에서의 입지는 더 강해진다. 한국계 영어권 친구들이 한국으로 들어와서 일하는 경우가 적어서인지 (많아지고 있다곤 하지만) 아직까지는 영어가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 같다.



회사를 다니며 알게 된 것 중에 아이러니하게 재밌는 것은, 한국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영어를 꽤 하는데 본인들이 그것을 잘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걸 아는 사람들이 영어를 장점으로 활용하게 된다. 외국에 나가보면 알겠지만, 영어권 나라를 제외하고 우리나라 사람들 만큼 영어교육 잘 받고, 기본적으로 문법에 빠삭한 나라가 몇 없었다. 기본적으로 토익 점수 높게 나오는 사람들은 본인이 회화만 못하는 것으로 영어를 못한다고 생각한다. 용기를 내고 말만 뱉으면, 다른 국가 사람들에 비해 빠른 속도로 회화도 익힐 수 있는 능력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데, 그걸 모르는 것 같다. 한국 특유의 겸손 문화도 한 작용하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꽤 하는 한국사람들끼리 서로 못한다 못한다 하다 보니 정말로 자신이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신감을 가지고 회화만 한발 내딛으면 당신도 누구도 할 수 있으니 부담을 덜어보시길.


꼭 영어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데 익숙해져 있는 것은 아닌가,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린 생각보다 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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