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F1963
부산의 상징적인 장소 광안리 해변의 북쪽에 조용한 동네 망미동이 있다. 낮은 맨션과 작은 공장들이 주를 이루는 이곳은 수영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해운대와 대조적인 분위기를 이끈다. 망미동은 1960년대 수영강 서쪽이 공업단지로 개발되면서 논밭이 펼쳐지던 망미동에는 선박・건설용 부품을 생산하는 공장이 들어섰고, 이후 아파트 및 도로 등 생활에 필요한 인프라가 조성되면서 지금의 모습이 형성됐다. 그러나 한 동네에 주거와 공업이 공존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소음을 유발하고 공해 물질을 배출한다는 주변의 민원으로 일찍이 자리 잡은 공장은 하나둘 문을 닫았고, 2014년부터는 주거 환경 재정비 사업을 시작하며 정부가 본격적으로 공장 가동을 제재하면서 타 지역 및 해외로 이전했다. 그리고 최근 수영강 일대를 중심으로 도시 재생 사업이 거론되면서 그 범위가 망미동까지 뻗어 남아 있는 공장단지들 역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이러한 지역성을 가진 망미동에 일찍이 터를 잡은 국내 최초로 철강선을 생산한 고려제강의 첫 생산 기지인 수영공장이 있다. 1963년 설립되어 기업의 모태가 되었던 이곳은 주거 환경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밀려나 2008년 생산시설이 이전되고 경제적, 사회적 기능을 상실한 유휴산업시설로 남았다. 공장은 멈췄지만 모습은 그대로였다. 오늘날 찾기 어려운 목재 트러스의 구조와 ‘산업단지 및 폐 산업시설 문화적 재생사업’ 정책에 따라 유휴산업시설을 문화적 재생을 통해 문화공간으로 조성하는 방안으로 모색하여 2016년에 고려제강이 주도한 유휴 산업시설, 즉 수영공장을 문화공간으로 조성하는 사업을 진행하기 시작했고, 부산 비엔날레 전용 전시관으로 탈바꿈해 2017년 부산 F1963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외관의 첫인상은 화려하지만 특출 나지 않다. 건물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익스팬디드 메탈은 하얀색이 아닌 푸른빛을 띠고 있으며 다양한 색깔을 가진 공장을 하나로 묶어 통일성을 부여한다. 또한 공장과 전혀 다른 소재가 만나 공간의 새로운 바람이 부는 가능성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촘촘한 그물망처럼 보이는 익스팬디드 메탈 사이사이로 빛이 스며들어 기존의 건물에 빛을 비추고 반사되어 채광을 만든다. 그리고 벽체를 제거하고 설치된 입면의 유리를 통해 빛은 투과되어 외부와 자연스럽게 유기적 연결을 만든다. 그리고 미래지향적인 ‘메탈’ 소재의 특성은 건물의 스토리를 부여한다. 와이어 공장이었던 과거, 복합문화공간이 된 현재 그리고 앞으로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질 미래로 나아가는 내러티브가 된다.
비엔날레 전시장으로 쓰임을 다한 장소는 이후 여러 문화 콘텐츠를 더하며 복합 문화 공간으로 조성됐다. 공간 구성요소는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중앙의 F1963 스퀘어는 공장의 일부분을 잘라내 만든 중정이다. 공장의 천정을 허물고 콘크리트 바닥을 잘라내 하늘과 땅이 맞닿은 중정이다.
가장 안쪽에 위치한 중정은 폐쇄된 공간에서 열린 공간으로 바뀌어 세미나, 파티, 음악회 등을 할 수 있는 문화 커뮤니케이션 공간이 조성됐다. 둘째, 이를 둘러싸고 있는 테라로사 카페와 전통 막걸리 복순도가, 식당은 쉼터공간으로 문화적 분위기를 즐기며 일상을 피로를 풀어주는 휴게공간으로 구분된다. 셋째, 미술관(국제갤러리), Yes24(서점), 도서관 등 다양한 문화예술 콘텐츠를 활용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의 핵심 공간으로 문화커뮤니케이션 공간으로 구분된다. 도서관은 F1963이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책을 이용한 콘텐츠는 카페나 레스토랑 등 다른 상업 시설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책이 전하는 지식과 정보야말로 다양한 문화의 바탕이라고 생각하는 의도를 짐작하게 된다.
햇살을 담은 중정은 위에서 바라보았을 때, 커다란 매스 가운데를 가로지른다. 잘린 공간에 중정을 둔 형태는 자연스럽게 주변에 전시공간과 휴게공간이 마련되고 환기와 채광을 확보해 중정을 둘러보며 기존 공장의 공간적, 시간적 위계를 경험하게 된다.
기존 와이어 공장을 문화적 재생한 F1963 복합문화공간은 리노베이션 된 재생건물로서 기존 산업시설의 공간특성을 보존하고 활용하여 기존의 공장 생산 기계도 특별한 실내 장식이 된다. 기업의 유산과 이야기가 담긴 모든 요소들을 쉽게 버릴 순 없다. F1963 공간 곳곳에는 다양한 오브제와 공간에서 시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데, 공장의 허물어진 벽돌벽, 발전기 등의 원형이 보존되어 있고 걷어낸 콘크리트 슬라브를 발판으로 재활용하여 새롭게 태어났다. 목재 트러스는 벤치로. 철재는 안내판으로 재사용됐다. 공장 바닥의 기초를 다질 때 사용한 돌은 건물 주변의 정원에 배치했다.
버리는 것을 최소화하여 재활용하여 남겨진 것과 새로운 것들이 만나는 지점에서 새로운 경험이 발생한다. 그렇게 문화적으로 조성된 F1963 복합문화공간은 다양한 공간기능도 갖추어 문화공간, 상업공간, 오락공간, 및 야외 대나무숲과 화단으로 구성된 친환경 그린 공간도 갖췄다.
쇳가루 가득한 공장 부지를 문화의 중심지로 탈바꿈한 것은 단순히 고려제강만의 역할이 아니다. 문화시설의 불모지 같던 망미동으로선 F1963이 문화 지구로 개발된 기회를 준 변화의 시작이었다. 문화적 재생으로 탄생한 복합문화공간 역시 상업공간과 동일하게 자본의 논리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 생산과 소비가 순환되어야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다양한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찾아와야 한다. F1963을 이용하기 위해 수영구를 찾는 사람이 많아지자 종합상사가 밀집한 거리에 독립 서점, 소품, 숍, 공방 등 다양한 가게가 차례차례 모여들면서 '망미 골목'을 형성했다. 망미 골목에서 가게를 운영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 20-30대가 많아지면서 부산시에서는 2022년, 새 정부 도시 사업의 일환으로 망미동을 청년 창업 보조 지역으로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F1963 복합문화공간은 고려제강(Kiswire) 기업, 부산광역시 지방정부, 부산문화재단이 전문성과 공공을 위해 공동 운영하는 문화예술 플랫폼으로서 소프트웨어의 중심은 예술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고 다양한 예술을 문화콘텐츠로 접목시켜 재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F1963은 운영 주체에 따라 담당하는 운영 부분도 다르다. 고려제강(Kiswire) 기업은 문화예술 플랫폼 조성을 주도하여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통한 F1963 복합문화공간의 사회 문화 예술 공헌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며 부산광역시는 더 많은 문화예술행사를 개최하여 시민의 편의를 위해 F1963 복합문화공간의 주변 환경 조성과 공공시설 정비를 지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부산문화재단은 F1963 복합문화공간의 기본 문화콘텐츠 개발 및 제공을 지원하여 전시, 공연, 이벤트 등의 프로그램 개발을 통해 F1963 복합문화공간의 기능을 유지하며, 대중의 문화예술 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문화커뮤니티 공간 마련에 노력하고 있다.
유휴산업시설 활용을 통해 복합문화공간으로서 부산 시민과 예술가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다양한 파일럿 프로그램 공연, 사운드아트 전시를 추진하며 약 40,000명의 시민이 참여해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하였다. 즉, F1963의 문화적 핵심목표는 대중의 정신적 문화적 욕구에 따라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다.
흔히 유휴시설의 리노베이션을 통해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면 도시가 저절로 재생할 것이라고 그렇게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의미 있는 도시재생은 기존의 지역민을 유지하며 지역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기존의 것을 주의 깊게 살펴보며 어떠한 방식으로 활용할지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자본이 훨씬 많이 들어갈 수도 있고 그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 그렇지만 재생건축은 정부, 기업 구분 말고 역사, 환경 등 거시적인 관점에서 고려해 볼 가치가 있는 선택지다.
F1963은 다양한 과정을 통해 새로운 방식의 건축을 통해 원형을 보존해 과거를 기억하며 미래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도록 ‘절제’의 키워드에 맞춰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고 과거의 흔적과 새로운 빛을 머금은 문화 활력소로 자리하게 되어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이 유기적으로 순환하는 재생건축인 것이다.
- 영업시간
매일 09:00 - 21:00
글, 사진 | yoonzakka
내용참고 | F19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