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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zakka May 08. 2024

문화적 도시재생으로 태어난 마을

감천문화마을



작년 가을, 오랜만에 방문한 부산은 여전히 매력적이고 다채로운 풍경을 선사하는 도시로서 지난 추억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그때의 기분을 다시 마주하고 싶어 부산 산동네를 찾아 떠났다. 




형형색색의 옷을 입고 벗은 마을 


마을 전체를 뒤덮은 형형색색의 지붕과 파스텔톤이 비추는 따뜻한 분위기, 골목 사이사이 가파른 비탈길과 계단을 밟으며 누리는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마을. 끊임없이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다양한 예술 체험과 문화 교류를 이끌어내는 이곳 감천문화마을은 '꿈꾸는 부산의 마추픽추' 사업과 '미로미로 골목길 프로젝트' 사업으로 보고 즐기는 체험관광지로 부산의 대표 관광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동남쪽으로 처마산, 북동쪽으로는 아미산과 연결되며 남쪽으로 감천항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비탈에 위치한 마을은 1948년 중구 보수동에 본부를 두었던  태극도(太極道) 교도가 집단 이주하여 태극도 마을이라고도 불렸으며, 피란민들까지 몰려들면서 지금의 대규모 마을이 형성된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입구에서 보이는 계단식 구조의 독특한 마을 형태는 멋진 경관을 보여주지만 산비탈을 따라 마을 깊숙이 들어가면 그 이면을 마주하게 된다. 경제력이 약하고 연고가 없는 피난민들이 몰려든 경사도가 심한 산비탈 고개는 열 평 남짓한 판잣집과 움막들이 즐비하게 들어선다. 화장실과 수도 같은 필수 시설은 꿈도 꿀 수 없었고, 일본인 공동묘지 위에 세워진 인근의 아미동 비석마을과 초량, 수정동 일대 형성 및 생활환경이 흡사했다. 하지만 감천문화마을은 산기슭의 경사면을 수평으로 구획한 여러 층의 가로 구조를 가지고 있어 전체적으로 질서 정연한 느낌을 주며, 비교적 근거리의 시점을 제공해 마을을 한눈에 조망하는 시각적 경험을 갖게 한다.



이는 모두가 힘들고 어려웠지만 ‘모든 길은 통하고, 앞집이 뒷집을 가려서는 안 된다.’는 주민들의 원칙이 있기에 가능했다. 또한, 다른 산복 도로 마을과 차이를 보이는 색채도 한몫한다. 크게는 밝은 색조들과 녹색 계열 및 분홍이나 청색 계열 등으로 나뉘지만, 보라색이나 진한 벽돌색 등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색채의 조합을 볼 수 있다. 세월이 흘러 판잣집과 움막이 시멘트 집으로 바뀌면서 회색 콘크리트의 삭막한 외관을 환경 미화를 이유로 집집마다 외벽에 다양한 칠을 하게 됐고, 가구마다 각자 다른 색으로 집을 칠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이루게 된다. 당시에는 하얀 시멘트 보다 원색의 페인트가 더 저렴하기도 했다.



밀집한 슬라브의 작은 집과 좁은 골목으로 이루어진 길을 얼마 걷지 않아 금세 옷이 땀에 흥건해진다. 여전히 세월이 많이 흘렀음에도 눈앞에 보이는 낮은 생활환경과 빈집들은 그림자가 드리우면 삭막한 분위기를 다시 꺼내어 남아있는 활력마저 내쫓는듯한 인상을 풍긴다. 이러한 환경이라면 재개발이 이루어지는 게 당연한 수순이다. 90년대 이후 인근 주거지의 노후화와 도시개발 및 생활환경 개선을 위해 이곳 역시 재개발을 검토했지만 감천동이 가지고 있는 올망졸망한 자연환경은 그리 도움을 주지 못했다. 낮은 접근성과 심각한 교통체증, 그리고 저소득층의 주민들이 갈 곳도 전무했다. 자본주의적 관점으로 봤을 때 사업성이 있을 수가 없는 지역이었다. 



상상이 현실로 되다



2009년 예술문화단체 ‘아트팩토리인다대포’가 마을미술 프로젝트 공모에 당선되어 ‘꿈을 꾸는 부산의 마추픽추’라는 이름의 공공 미술 프로젝트가 시작되며 버려지다시피 했던 감천동에 새로운 변화가 시작된다. 또한 2010년 ‘미로미로(美路迷路) 프로젝트’로 이어지는 공공 미술 프로젝트가 연속으로 이어진다. 우연한 계기로 시작된 프로젝트는 마을의 빈 터나 벽면에 미술 작품을 만들고 설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마을 안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 주민들과의 긴밀한 협의와 소통을 통해 ‘문화 마을 만들기’에 대한 생각과 협의회를 구성하기에 이른다. 공공 미술 프로젝트가 연속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단순 사업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프로젝트 참여 작가와 주민들은 모두 ‘문화 마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되었고, 지자체의 적극적인 관심과 긴밀한 협조로 문화 만들기 사업에 결정적인 힘을 토대로 상상을 현실로 이루기 시작한다.



태극도 신도들과 피란민의 흔적이 깃든 마을의 역사성, 산비탈 좁은 골목을 따라 계단식으로 들어선 독특한 경관, 남천항을 내려다보는 아름다운 풍경. 감천동이 가진 스토리는 풍부했다. 그렇게 지역의 역사와 문화 자원을 활용해 마을 환경을 개선하고 주민 삶의 질을 높이고자 문화적 도시재생을 통해 ‘감천문화마을 도시재생사업’이 본격화된다. 미관을 해치는 이질적이고 강렬한 색상의 건물은 다시 칠하고 수선했고, 무질서한 간판과 조명, 재질 등 하나부터 열까지 사소한 것 모두 바꿀 수 있는 건 바꿨다. 이러한 꾸준한 노력과 변화를 알아주었는지 감천문화마을은 점차 관광객이 늘기 시작했고, 전체 관광객 중 외국인 관광객이 60%를 차지할 만큼 부산을 넘어 한국을 방문하면 꼭 들려야 하는 국제적 명소로 탈바꿈하게 된다. 



관광객이 몰리면 그 수요에 맞게 다양한 사업장이 열리고 자연스럽게 일자리 창출과 수익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수익의 일부는 다시 마을의 주거환경개선 및 관광사업을 위해 사용되어 마을 활성화와 경제적 선순환 효과를 가져왔다. 그렇게 집을 리모델링하고 하수와 정화조 처리 시설도 갖추고, 빈집을 활용해 공동 사업장, 녹지 공원, 목욕탕 등 편의시설을 만들기도 한다. 또 주차공간과 도로를 확충해 주민 불편을 덜어주는 등 문화적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마을은 깨끗해지고, 편리해지고, 관광객을 불러 모으며 다양한 생활상이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과거 버려지다시피 했던 산비탈 빈민촌이 이렇게 될 줄 상상이나 했을까?



빛이 있는 곳엔 그림자도 있다



달콤한 사탕을 계속 먹으면 쓰고 체하듯, 문화마을의 변화는 어두운 그림자도 함께 동반했다. 마을이 개발되는 과정에서 길 가에 자리한 주택들은 개선되고 지원도 받게 되었지만 그 뒤로 자리한 공간들은 이전과 큰 변화를 누리지 못했다. 외형에 집착한 나머지 깊은 곳까지 그 변화의 물결을 타지 못했고, 밀물처럼 쓸려 오는 외부인으로 인해 주민들의 사생활 노출, 관광객이 버리고 간 생활 쓰레기와 대형 관광버스의 무자비한 진입으로 지역민과 외부인의 갈등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그 결과, 매년 감천문화마을 방문객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반대로 주민 수는 줄어들고 있다. 인구 감소, 원도심 쇠퇴 등 다양한 요인을 감안하더라도 10년여의 시간 동안 문화적 도시재생이 오히려 주민 이탈의 결정적 이유가 돼버린 것이다.


과거와 같은 도시 재개발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면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쫓아내지 않으면서 어떻게 재생·복원할 것인가 대한 문제와 씨름하면서 나온 문화적 도시재생 개념은 문화·예술·관광의 외형에 기울어진 채, 그 내면은 자꾸 감추듯 덮어버리는 모순적인 자세를 함께 동반했다.



마을 소멸을 막기 위해 힘을 합쳐 성공을 이룬 도시 재생이 다시 마을을 소멸을 초래하고 있다. 관광 경쟁력과 도시 생활권 보장의 저울이 양립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마을을 즐기러 찾는 관광객과 마을을 지키는 주민들이 함께 공존하는 대안을 찾고 실행해 해결점을 찾아가는 것이 앞으로 감천문화마을이 직면한 과제이며 다시 새로운 가능성을 꿈꿀 수 있는 마을로 남게 될 것이다.






글, 사진 | yoonzakka

내용 참고 | 부산역사문화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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