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율율 Feb 08. 2022

뮤지컬 덕심 에세이를 쓰기로 했다.

내일의 내가 비웃지 않을 오늘의 글쓰기

‘내가 00을 하게 된 이유’, '나는 00하기로 했다.' 같은 글에 관심을 가진 적이 없다. 그런데 막상 브런치 작가 승인이 떨어지고 나니 나도 이런 안물안궁 이야기로 브런치를 시작해보고 싶어졌다. (이미 브런치 심사를 위해 쓴 글을 먼저 발행했지만, 그건 이력서의 경력 소개서 같은 것) 어차피 유명인도 아닌 내게 먼저 뭘 물어보거나 궁금해할 사람은 없다. 어차피 내가 올릴 모든 글이 안물안궁 스토리다. 지나가던 누군가에게 우연히 읽혀 ‘꽤나 영양가 있었다’ 평가된다면 매우 땡큐요, ‘시간 낭비는 아니었다’ 평가된다면 매우 다행인 글로 브런치를 시작한다.



첫 글, 자괴의 요정


회사에 글 잘 쓰는 사람이 많다. 환경이 중요하다 했던가, 나도 내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 되어야만 할 것 같았고 혼자서 끄적거림을 몇 차례 시도했다. 근데 다음 날 내가 쓴 글을 보면, 왜 이리 어제의 나를 비웃게 되는지. 세상 부끄러운 것. 다신 떠올리지 못하게 삭제 한 글이 수두룩하다.


회사는 온라인 자체 저널을 운영한다. 저널 담당자에 의해 그 달의 주제에 적당한 사람으로 지목당하면 ‘자네 저널 한 번 써보겠나.’ 메일이 도착한다. 작년에 내가 지목당했다. 네? 저 말씀이신가요? 전 입사 지원을 위한 자기소개서와 에세이를 제외하고 남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글을 써 본 적이 없는데요? 하지만 강제성이 없는 한 나는 내 글을 절대 내어 놓지 못함을 스스로 깨달은 바, ‘한 번 써 보겠습니다’ 답장을 보냈다. 이 전에 저널을 쓴 회사 동료들은 다들 한 편의 글을 뚝딱 써낸 것 같은데, 나는 2주 내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질척거렸다. 능력도 없으면서 동료 누군가의 글, 좋아하는 작가님의 글을 흉내 내 봤다가 이내 스스로 부끄러움을 참지 못하고 내 말투로 복귀하기를 반복하며 겨우 겨우 어찌 저찌 글을 마무리했다. 글은 저널 담당팀에 구글 문서로 전달했다. 구글 문서는 댓글 기능이 있는데 댓글이 달릴 때 문서 소유자에게 알람이 간다. 담당팀의 첨삭 댓글로 인해 댓글 알람이 연신 울렸다. 제 글이 참 고칠게 많지요. 알람 소리가 나를 부끄럽게 했다.


문장 하나하나 훨씬 말끔해진 수정본이 도착했다. 하지만 다시 보니 글의 흐름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처음 읽는 사람에게 정보를 전달하기보다 내 자랑을 쓰고 싶어 하는 글이다. 이것은 내일의 내가 분명히 비웃을 글이라는 확신. 담당팀에 며칠을 더 달라 요청해 글을 수정했다. 첨삭 댓글 알림에 한 번 더 괴롭고 나니 내 생 첫 기고 글이 완성됐다. 지금 봐도 부끄럽긴 한데, 그래도 써 보길 잘했다. 자괴의 요정님께서 머물다 떠나시며, 문장의 군더더기를 깨닫게 하시었고 니 허세를 니가 알게 하시었다.




여전히 내 글은 초짜다. 초짜임을 들키지 않기 위해, 혹은 들키더라도 덜 창피하기 위해 문장을 짧게 쓴다. '~인 것이다', '~하곤 했다', '~라고 생각한다' 따위 다 집어치우고 일단 '했다', '이다'로 끝맺는다. 조금 어색하거나 강조가 필요할 때 약간의 살을 붙여본다. 그리고 문장을 자른다. 두 문장이 꼭 '~고', '~며'로 붙지 않아도 이해가 된다면 자른다. 그리고 읽는다. 친언니 혹은 30년 지기 찐친(없음)이 읽었을 때 '풉, 니가?' 할 만한 글인지 생각하며 읽는다. '풉'이 귓가에 들리는 듯하면 고친다. 내 요령은 아직 이게 전부다. 요령 치고 참 하찮다. 나중에 내가 초짜를 벗어난다면 몇 가지 요령이 더 생기겠지. 이 글도 부끄러워질 수도 있다. 근데 현재의 나는 내일의 나까지만 의식 가능한 수준이라, 초짜에서 벗어난 나까지 생각하며 글을 쓸 역량이 없다. 나중에 부끄러워지면 또 삭제하고 고치면 된다.



두 번째 글, 덕력이 곧 필력


나도 '글'이라는 것을 완성할 수 있는 인간임을 알게 됐다. 좋아하는 걸 써야 글 쓰는 재미가 붙겠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뮤지컬이다. 4년 전 우연한 기회로 뮤지컬을 관람한 뒤, 그 자극적이고 화려한 예술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하지만 나는 가수도 배우도 꾸준히 좋아해 본 적이 없다. 첫 뮤지컬 경험 후 다달이 몇 개의 뮤지컬을 보면서도 이러다 말겠거니, 좋을 때 즐겨라 싶은 마음으로 내 덕심을 내버려 두었다. 그런데 어느새 5년이 흘렀다. 이제는 머리에 들어찬 뮤지컬 이야기가 꽤 많아졌다. 하지만 들어주는 이 없다. 가끔 주접을 나누는 뮤덕 지인 S가 있긴 하지만 S와 나는 작품 취향이 달라 함께 나누는 주접의 교집합이 제한적이다. 그래서 누군가 들어주길(읽어주길) 바라며 온라인에 떠들어 보기로 했다.   


인스타로 글쓰기를 시도하다가 문득 브런치라는 플랫폼이 생각났다. 브런치에 가입만 하면 다 글을 쓸 수 있는 줄 알았다. 아, 글은 쓸 수 있다. 그런데 남들한테 보이는 게 아니란다. 누가 읽어주길 바랬는데 나 혼자 볼 수 있는 거란다. 작가 신청을 하고 승인을 받아야 남들이 내 글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계속 작가 신청을 하라는 배너가 떠 있었구나. 신청하면 다 시켜주나 보다. 금요일 밤에 신청을 했다. 어차피 주말은 일 안 할 테니 승인이 안 되겠지 하면서 토요일에 '브런치 작가'를 검색해 봤다. 내 신청서의 내용은 '브런치 작가 불합격 예시'와 정확히 일치했다. 신청 취소. 다시 써보자.


지원서의 자기소개와 목차는 좀 더 덕력이 느껴지도록 뾰족하게 수정했다. 작가의 서랍 글은 두 개 첨부했다. 하나는 뮤지컬에 대해 공부할 거리가 있는 점잖은 글, 하나는 약간의 꿀팁을 곁들인 주접 에세이였다. 글을 쓰는 건 어렵지 않았다. 늘 떠들 준비가 돼 있었기 때문에 신나게 글을 써 내려갔다. 한 바탕 문장을 쏟아내고 정리하고를 반복해 다시 작가 신청. 월요일에 합격 축하 메일이 도착했다. 남들에게 읽혀도 될 글이라고 브런치에 인정받았다. 자신감이 생긴다.


브런치 작가 신청 첨부 글만큼 고민 없이 글을 써 본 적이 없다. 읽어본 지인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나는 확신했다. 덕력이 필력에 이바지했구나. 뮤지컬 덕질이 내 글쓰기 능력을 향상시켜주었구나!



그래서, 리뷰가 아닌 리뷰


원래는 뮤지컬의 인물, 스토리, 음악에 대해 리뷰를 잘하고 싶었다. 그런데 참 못쓰더라고. 리뷰를 억지로 쥐어짜 내고 있었다. 하지만 분명 엄청 감명받았는데! 내가 감명받은 건 어떤 지점이었지? 뮤지컬 관람 후 뮤지컬에 무관심한 주변인들에게 일방적으로 들려준 뮤지컬 후기가 바로 내 진심일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MBTI로 설명하자면 나는 학습된 F 기질을 약간 가진 T 형 인간이다. T 성향은 남들에게 들려주는 뮤지컬 후기에도 드러났다. 예를 들어 배우의 연기가 훌륭할 때, 그 배우가 연기하는 캐릭터에 감정이입을 해 눈물 흘리기보다, ‘와 저런 좌절감을 저런 표정과 저런 목소리로 연기한다니 탁월한데?’ 하고 감탄한다. T형 인간이 F형의 리뷰를 따라 하려고 했기 때문에 지독히도 겉도는 글만 쓴 것이다. 일상에서도 시대상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끼거나 캐릭터들의 상황에 감정에 이입 잘 못하면서 허구 속 이야기에 감정 이입하는 척했던 나, 어리석었다. 공감이 느껴지는 예술적, 인문학적 리뷰를 쓸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인정, 그냥 능력 있는 사람들이 쓴 리뷰를 잘 읽기로 했다.




뮤지컬과 연극은 영화나 드라마에 비해 다양하다. 영화나 드라마도 넓게 보면 다양한데, 대중적인 매체에서는 (특히 국내) 가장 다수의 사람들이 보기에 거북스럽지 않을 정상 상태라는 전형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래서 나는 정상 상태를 규정하지 않는 뮤지컬의 다양함이 좋고 다양함이 당연한 상태가 좋다. 뮤지컬은 캐릭터가 다양하다. 남성과 여성 사이의 성소수자(헤드윅), 의인화된 책(호프), 지독한 짝사랑을 하는 장애인(노트르담드파리), 계절을 바꾸는 신(하데스타운) 어떤 캐릭터든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 뮤지컬은 무대가 다양하다. 무대가 곧 무대 관객이 곧 관객이고(헤드윅), 무대 위에서 용이 울부짖고(위키드), 무대 위 가장 잘 보이는 자리 재즈 밴드가 자리잡기도(시카고) 한다. 그리고 뮤지컬은 진행 방식도 다양하다. 관객이 작품에 직접 참여하기도 하고(그레이트코멧), 배우가 갑자기 배우 자신으로 돌아와 작품을 설명하기도(태일) 한다. 또한 뮤지컬은 배우가 다양하다. 같은 역할도 다른 배우가 연기할 수 있다. 심지어 같은 역할인데 배우 성별까지 다를 수(미드나잇) 있다. 이런 다양함을 내 글을 통해 알리고 싶다.

 


덧붙이는 이야기, 브런치 작가 합격 꿀팁 대방출?


꿀팁 없다. 소개서와 계획서는 합격한 사람들의 글을 읽고 참고하는 게 최선이다. 내가 첨부한 글은 '작가의 서랍' 속에 있던 글 두개와 회사 홈페이지에 기고했던 글 하나다.  SNS나 홈페이지 링크를 적는 란에는 팔로워가 있으나 뮤지컬과 연관 없는 글이 더 많은 개인 계정보다 봐주는 이 없지만 열심히 아카이브 한 뮤지컬 정보 기록 노션 페이지를 첨부했다. (아래 링크 첨부)



매거진의 이전글 티켓팅, 지피지기여도 백전백승은 아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