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가 술을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다며 입으로 다시 되돌려 보낼 때까지 마신 게 이유였을까. 다음날 깨질 듯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친구가 주는 게보린을 한 알 먹었다. 달마다 진통제를 먹어야만 버틸 수 있는 날이 있다. 수많은 진통제를 먹어봤지만 의외로 게보린은 처음 먹는 진통제였다. 술을 마시고 약을 먹으면 안 되는데, 그래도 머리 아픈 건 해결해 주지 않을까 하며 한 알을 삼켰다. 목부터 붉은 반점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게보린 탓이 아닐 수도 있다. 내 입속으로 들어간 모든 음식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수분 섭취를 하겠답시고 먹은 파워에이드 문제일까. 해장용으로 시킨 냉면 안에 먹어선 안 될 재료가 섞여 있었을까. 브리타 정수기로 정수해 먹는 수돗물에 오늘 뭔가 섞였나. 입이 텁텁해 마신 오렌지 주스가 상했나. 평소에 특별히 갖고 있던 알러지는 없었기에 모든 음식이 불안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내가 가장 쉽게 얻을 수 있는 행복이다. 앞으로 내 앞에 펼쳐질 행복들을 모두 의심스럽게 바라봐야 하는 건 슬퍼. 별일 아니겠지. 기다리면 괜찮아질거라 생각했다.
점심 이후로 시작된 발진은 저녁이 되니 목 뒤와 얼굴까지 뒤덮었다. 붓기가 심해져 입술까지 묵직한 느낌이 올라왔다. 자다가 목 안까지 부어 자취방에서 혼자 죽어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병원을 가야겠다. 그런데 일요일이라 문을 연 피부과가 한 군데도 없다. 열린 곳이라곤 건대병원 응급실뿐. 의학 드라마 속 응급실은 환자가 앰뷸런스를 타고 도착하면 의사 선생님이 침대 위에 올라가 환자에게 응급 처지를 하며 입장하는 곳이잖아. 두 발로 걸을 수 있는 내가 감히 응급실에 가서 더 위독한 환자에게 피해를 주는 건 아닐지, 혹은 그게 뭐가 응급이냐며 한심한 눈초리를 받는 게 아닐지 걱정하며 병원을 향해 걸었다. 가는 내내 심장이 떨렸는데 이게 알러지 증상인지 긴장 때문인지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응급실은 어디에 있는 거지. 저기 앰뷸런스 차가 여러 대 서 있다. 그 앞에 붉고 큰 사각형 속 하얀색으로 ‘응급의료센터’가 적힌 간판이 보인다. 나는 어릴 때 코피가 자주 났는데, 종종 코피가 멎지 않아 병원을 가면 코피가 때마침 귀신처럼 멎어서 엄마와 나는 의사 선생님 앞에서 당황하곤 했다. 그때처럼 반나절 간 나를 괴롭힌 발진 증상이 병원의 아우라 앞에서 갑자기 아무 일 없었던 듯 멀쩡해져 있을까봐 출입문 앞에서 목과 얼굴 상태를 다시 확인한다. 다행히 여전히 상태가 좋지 않다. 내 상태를 보여줄 수 있는 증거를 온전히 가져왔구나. 다행인 게 이상하지만 다행이다.
응급실 내부도 일반 병원처럼 접수처와 대기실이 있었다. 사람들이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모습이 보인다. 접수처에서 간단한 신상정보를 적어 제출하고 나도 대기실에서 기다린다. 생각했던 것만큼 응급실의 위압감이 크지 않다. 기다리는 동안 심장의 쿵쾅거림이 잦아들었다. 심장은 알러지 반응이 아니었나 보다. 내 이름이 불린다. 의사 선생님인지 간호사 선생님인지 직원분인지 모를 누군가에게 증상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고 내가 가야 할 위치가 적힌 번호표를 받아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 내부엔 전체를 관할하는 데스크가 넓게 자리 잡고 있다. 데스크 안에서 사람들이 부지런히 움직인다. 그리고 데스크 맞은편엔 구역별로 침대가 놓여 있다. 내가 배정받은 침대에 도착한다. "어떤 것 때문에 오셨어요" 의사 선생님이 나타나 묻는다. "오후부터 두드러기가 계속 올라와요" 하며 목을 보여준다. 선생님은 무뚝뚝하지만 차갑지는 않은 말투로 몇 가지를 더 물어본 후 떠났다.
간호사 선생님이 와서 나를 눕히고 내 팔에 주사 바늘을 꽂는다. "약품은 세 개가 들어갈 거예요. 주사 들어갈 때 따끔합니다" 머리맡에 걸려있는 수액 팩을 보며 멍하니 누워있다. 한쪽 팔을 들 수 없으니 폰을 보는 게 영 불편하네. 그냥 가만히 누워있어야겠다. 주변 소리가 들린다. 건너편에 외국인 환자가 있는지 의사 선생님이 영어로 설명 중이다. 내 앞 침대에서는 허리가 아픈 환자가 자녀분과 병원을 옮기는 것에 대해 의논 중이다. 다행히 오늘은 다급한 환자가 없는지 드라마 속 응급실처럼 사람들이 숨 가쁘게 움직이지 않았다. 나 따위의 두드러기 환자에게 시간을 내 주신 선생님께 덜 죄송해진다. 그렇게 눈은 천장을 향하고 귀로 응급실을 관찰하며 30분이 흘렀다. 현대의학의 힘이란 대단하다. 확실히 목과 얼굴의 가려움이 줄어들었다. 다시 의사 선생님이 내 상태를 살펴본다. 이제 집에 가도 된다고 한다. 응급실을 오지 않았더라도 가라앉을 증상으로 유난을 떨었을지 모른다는 민망함과 더 이상 혼자 죽어 있는 모습을 상상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을 느끼며 집으로 걸어왔다.
어떤 음식을 의심해도 시작과 원인은 술이다. 네 놈을 먹지 않았으면 게보린도 냉면도 안 먹었을 거야. 설사 다른 음식이 문제가 있었다 해도 알코올을 분해하는데 힘을 쓰지 않아도 됐을 내 몸은 알러지와 싸워 이겼을 거야. 술과의 이별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필름이 처음 끊겨본 20대 초에도 나는 금주를 선언했다. 물론 실패했고 오늘에 이르렀다. 세상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끊긴 필름을 기어이 이어 붙여 알아내려 하는 사람과 끊어진 필름을 외면한 채 살아가는 사람. 나는 후자다. 동영상 기술의 과한 발전으로, 온갖 역사가 지인들의 폰에 기록되었고 그 속에 기록된 나는 정말 구리다. 보고 싶지 않아. 끊어진 내 필름을 굳이 찾아와 전해주지 마.
이제까지 술 주정은 끊어진 필름을 찾지 않는 것으로 해결, 숙취는 시간이 약이요 하며 버텼다. 그런데 목과 얼굴을 뒤덮은 울퉁불퉁하고 붉은 발진은 유난스럽게도 내 처량한 죽음까지 상상하게 만들어버려 무시가 안된다. 다신 경험하고 싶지 않다.
“술 마실 땐 왜 저렇게 즐겁나 몰라. 다음 날 즐거움까지 미리 당겨 써서 인가!” 김신지 작가님의 에세이 <평일도 인생이니까>에 나오는 말이다. 당겨 쓸 즐거움이 있었다는 건 매일 즐거움이 있다는 말. 즐거움이 방전된 몸을 시체처럼 이끌고 사무실 자리에 쓰러지 듯 앉기보다, 출근하자마자 맑은 정신으로 따뜻한 차를 컵에 담아 동료들과 함께 ‘일하기 싫게 날씨가 참 좋네요’ 수다 떠는 즐거움, 매스꺼운 속을 달래기 위해 찾아간 콩나물 해장국집에서 한 그릇을 다 씹어 삼키지도 못할 바에야, 오늘은 느끼한 게 당긴다며 까르보나라 맛집을 찾아가는 즐거움, 모니터 앞에서 한참을 멍 때리고 두통약을 찾기보다, 엄청난 집중력에 스스로 감탄하며 폼나는 성과를 만들어 내는 즐거움을 찾아보자. 그리고 퇴근 후에는 한 캔이 두 캔 되고, 두 캔이 세 캔으로 변할 맥주를 집어 들기보다, 시답잖은 내 하루도 꽤 괜찮은 이야기처럼 만들어줄 글을 쓰자. 제발 이번에는 술과 이별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