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프리다> 를 보고
그는 여유롭고 날렵하게 몸을 움직인다. 스포트라이트 아래에서 춤추고 노래 부르며 주인공을 유혹한다. 매너 있게 팔을 쭉 뻗어 주인공을 에스코트하고 손짓 한 번으로 관객의 호응을 유도한다. 배우의 숨소리마저 들리는 소극장 공연, 나와 배우의 거리는 손을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깝다. 배우의 시선, 입꼬리, 손끝, 하나하나 눈에 들어온다. 배우가 허공을 향해 손을 뻗을때마다, 그의 손 끝이 파르르 떨린다. 그는 긴장하고 있다. 손끝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상태에서도 본인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두 시간여의 공연을 무사히 마친다.
그 여성 배우는 이미 베테랑이다. 데뷔한 지 20년이 넘었고 필모그래피는 30개가 넘는다. 공연은 국내 창작극 초연이었고 내가 본 회차는 개막 초 네 번째 공연이자 그날의 배우들이 관객을 만나는 두 번째 공연이었다. 연습한 결과물을 이제 막 꺼내놓은 개막 초, 베테랑 배우라도 떨릴 수밖에.
손을 떨며 긴장해본 게 언제더라. 난 손을 떨기보다 얼굴이 잘 빨개졌다. 얼굴을 보고 놀리는 친구들을 의식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수업 중 교과서에 내 이름 ‘유리’라는 단어만 등장해도 혼자 얼굴을 붉혔다. 누군가 나에게 주목하면 얼굴이 빨개질까 초조했고, 초조하면 얼굴이 빨개지는 악순환이었다. 그때 나는 내 모습이 싫었다. 남의 외모 놀리는걸 재미로 삼는 나이가 지나자 친구들은 더 이상 내 얼굴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남들이 관심이 없으니 나도 무신경해졌다. 대학에 진학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프레젠테이션은 일상이 됐다. 이제는 남들 앞에서 발언할 때 어릴 때처럼 경직되지 않는다. 얼굴이 빨개져도, 목소리가 떨려도, 내 상태를 무시하고 할 말을 이어갈 뿐. 극복인지 포기인지 알 수 없는 상태로 긴장감이라는 감정을 건조하게 흡수해버렸다. 직장생활 6년 차, 과거엔 긴장했을 상황에도 무덤덤하다. 긴장해야 할 부담스러운 상황을 피하는 요령이 생겼다. 긴장하면 미숙해 보이고 미숙하면 신뢰를 잃는다. 긴장감 없는 이 평온함에 안주한다.
회사에 팀 주간 회의가 있다. 회의는 매일 모더레이터가 바뀐다. 이 방식에 익숙한 팀원들은 능숙하고 담담하게 회의를 진행한다. 회의 진행 방식은 간단하다. 팀별로 한 주간의 근황을 공유하고 특정 이슈에 대해 짧게 논의하는 정도.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인턴 김이 모더레이터를 하게 된 날. 김은 너무 떨린다며 호들갑을 떤다. 김은 며칠 전부터 회의 진행을 준비했다. 회의 시간, 말 한마디를 할 때마다 주저하고 고민하는 김. 떨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 계속해서 죄송하다 말하면서도 꿋꿋이 진행을 이어갔다. 회의를 마치고 김의 표정은 한결 후련해 보였다. 고인물인 팀원이 진행했더라면 무미건조하게 지나갔을 주간 미팅이 김에겐 일생일대의 미션이었고 그는 미션을 무사히 달성했다.
배우도 미션을 갖고 무대에 오른다. 몇 달간 연습한 노래, 춤, 연기를 완벽하게 보여줘야 하는 미션을 달성해야한다. 사람이 느끼는 감정을 수치로 매길 수 있다고 치자. 내가 느낀 평생의 긴장감을 합친 무게가 1킬로그램 정도라면, 그 배우는 1톤 정도 되지 않을까. 배우에게 긴장감이란 자신을 이루는 한 부분일지도 모른다. 긴장감을 피하고 무시하기보다 매일 직면한다. 자신의 손가락을 제 마음대로 통제하지 못해도 굴복하지 않는다. 긴장한 배우는 자질이 부족해 보이기보다 '저 사람 지금 진짜 잘 해내고 싶은가 보다' 생각하게 만든다. 나는 긴장감을 느끼면 미숙해 보일까 걱정했다. 그런데 손을 떨면서도 자신의 배역을 끝까지 소화해낸 배우가 오히려 더 능숙해 보였다. 그는 나보다, 내 동료들보다 자신의 커리어를 쌓은지 오래 됐지만, 인턴 김처럼 그 날이 처음인 듯 그의 미션을 수행했다.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에서 배우가 인사한다. 안도, 후련, 감사, 기쁨. 오로지 그들만 지을 수 있는 표정. 무한히 행복해 보여 부러우면서도 내가 그 행복의 이유기도 해 같이 기분이 좋아진다. 나도 언젠가 저런 표정을 지어 보이는 날이 올까. 무대 위 배우를 보다 "원래 그래. 하던 대로 해."라고 말하던 예전 회사 이사가 생각났다. 새로운 건 피곤해, 하고 싶은 거 없어, 너네가 하는 말 쓸데없어, 듣지도 보지도 않던 사람. 매일 새로운 배역, 새로운 관객을 마주하는 배우와 전혀 다른 사람. 근데 언제부턴가 나도 그 이사처럼 사고하고 있다. 내 평온한 상태를 흔들 수 있는 새로운 배역, 새로운 관객은 피한다. 배우처럼 무대에 오르는 열의도 없으면서 커튼콜에서 그들이 누리는 기분만 부러워했네. 근데 또 내가 배우처럼 매일 새로움을 돌파하고 살만큼 에너지가 충만한 인간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사놈처럼 권태로운 인간이 되고 싶진 않단 말이지. 엄청 멋있진 못해도 영 후진 어른으로 늙지 않으려면 내 주변의 새로운 배역, 새로운 관객을 찾아 무뎌진 긴장감을 되살려야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크고 작은 일에 온전히 긴장하고 살다 보면, 가끔 커튼콜 무대 위 배우처럼 가슴 벅찬 일이 생길까.
같은 작품을 다시 보러 가면 그 배우가 여전히 손을 떨지 궁금하다. 그가 손을 떤다면 그는 20년간 매일 처음처럼 진심으로 무대에 오르는 사람인 거고, 손을 더 이상 떨지 않는다면 그 캐릭터를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든 것일 터. 매 공연, “하던 대로” 하지 않는 그 배우를 향해 더 크게 손뼉 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