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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율 Jul 20. 2024

글 잘 쓰고 싶다.

한때 그림을 그렸다. 나는 물체를 보는 관찰력이 좋았고 그것을 똑같이 따라 그리는 재주가 있었다. 그뿐이었다. 인상적인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은 그림으로 '자신'을 표현하는데, 나는 나를 표현하는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재능이 없었다. 딱히 슬픈 이야기는 아니다. 뭐 지독하게 매달려 볼만큼 애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라서. 사실 지독하게 매달려보는 끈기 역시 재능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그것도 없었던 거지.


글을 쓴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었다. 초등학생 때 일기 쓰기도 싫어했고, 억지로 쓴 일기를 선생님이나 엄마가 보는 것도 썩 내키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서 일기를 써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느 날 내가 갑자기 죽어서 누군가 내 방 정리를 하다가 내 일기를 들춰본다면 너무 수치스러울 것 같다는 이유로 여전히 쓰지 않고 있다. 취준생일 때 술을 마신 취기를 빌려 근거 없는 자신감을 담아 이력서의 자기소개서를 휘갈겨 썼다. 다음 날 술이 깬 이성을 붙잡고 ‘너의 어제를 마주하라’하며 겨우 읽을만하게 자소서를 고쳤다.




애매한 미술적 소질과 애매한 수학적 소질로 건축 전공을 선택, 아주 잠깐 건축계에 몸 담았던 나에게 키보드란 각종 설계 프로그램의 명령어 단축키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었다. 건축 회사를 떠나 지금의 회사로 이직하니, 키보드는 자모음을 연결해 단어를 만들고 문장을 만드는 일을 할 때가 더 많다. 키보드의 원래 목적이 참 새삼스러워. 이 도구로 문장을 만드는 동료들이 눈에 들어왔다. 멋있었다.


Y가 쓰는 뉴스레터 서문을 좋아했다.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는데, 글은 길게 쓰는 사람이었다. 덤덤하게 자기 이야기를 하는 글이 참 잘 읽히는 게 신기했다. K는 나랑 술을 엔간히도 많이 먹고 후회하고 또 술을 먹는다. 나처럼 한심한 인간이라 생각하고 싶은데, 회사 홈페이지에 쓴 저널이나 인터뷰를 보면 갑자기 거리감이 느껴진다. 그는 자기 분야에서 꽤 전문적인 사람이다. H는 내 글을 자주 수정해 주었다. 유리님의 글이 너무 딱딱해요. 라는 말을 듣고, '-습니다.'를 '-어요.' 정도로 고쳤던 나. H는 '요'자만 붙어있지 여전히 텁텁하던 내 글에 기름칠을 해주곤 했다. 이 회사에 작문과 낯가리는 숙맥은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동료들을 보고 나도 글을 잘 쓰고 싶어졌다.


그래서 뭐라도 쓰기 시작했다. 나는 뮤지컬을 좋아하니까 뮤지컬에 대해서 써보자. 값이 값이니만큼 뮤지컬을 보면서 아쉬웠던 것은 눈에 참 잘 들어온다. 그래서 딱히 깊이도 없는 불평불만을 비평라는 명분으로 써 내려갔다. 뮤지컬을 좋아해서 쓰기로 해놓고, 왜 좋은 것에 대해 이야기하지를 못해! 깨달았다. 긍정적인 평은 ‘좋았다’ 이상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나를 발견했다. 그때부터 귀찮은 질문 봇을 머릿속에 키우기 시작했다. 왜 좋았지? 배우가 연기를 잘해서. 왜 그 배우가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했지? 감정 표현이 훌륭해서. 어떤 장면이었지? 그 장면의 감정 표현이 왜 중요하지? 다른 배우와 무엇이 달랐지? 집요하게 묻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너무 쉬운 불평을 내뱉는 것을 지양하고, 좋은 부분을 먼저 찾고 왜 좋은지 곱씹어 생각해 본다. 그리고 말로 글로 정돈한다. 정확한 단어를 고른다. 마음에 드는 어투를 고른다. 문장의 흐름을 다시 읽는다. 너무 튀어 걸려 넘어지는 문장이 없나 살펴본다. 오그라드나. 오그라드는 표현을 용납할 만큼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면 오그라듬을 견뎌본다. 오그라듬이 욕심을 부린 허세라면 수정한다. 평소의 내 캐릭터에 갇혀 냉소적인 표현 뒤에 숨고 있나. 좀 더 충만한 표현을 찾는다. 내가 한 생각을 다시 들여다본다. 처음부터 읽는다. 수정한다.


글을 쓰기 시작한 후 생각하는 습관도 바뀌었다. 좋은 것을 생각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쓰고 내가 쓴 글을, 또는 나를,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다. 내놓는 용기가 있어야 더 나은 다음이 있음을 알고 부끄러움을 잘 견디게 되었다. 그래서 게으르더라도 공백이 너무 길어지지는 않게 글을 쓰려고 한다. 늘 만족스럽진 않지만 글을 쓸 때마다 실력이 조금씩 늘고 있음을 느낀다.


내가 새로운 그림을 그리지 못한 이유와 글 쓰는 걸 어려워한 이유를 따지다 보면, 자기 생각을 들여다보고 표현할 기회가 부족한 우리나라 교육 환경을 문제 삼고 싶어 지는데, 거기까진 가지 말자. 늦게나마 글 쓰는 취미를 갖게 되며 내가 그림을 못 그렸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한들, 지금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드는 걸 보면 역시 내 길이 아니었다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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