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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율 Sep 10. 2024

아는 사람이 사는 곳

제주도 여행 with.H / feat.Y

타지인이라는 감각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3주간의 유럽여행이 힘들었던 이유 역시 그랬다. 외모도 언어도 문화도 다른 사람들 속에 오래 섞여 있으니 무얼 해도 고립감이 느껴졌다. 서글하지 않은 성격덕에 처음 보는 사람과 대화할 때에는 리액션이 바로 나오지 않고 늘 삐그덕거려서 여행지에서 친구도 잘 못 사귄다. 그래서 여행을 가도 5일이 최대치. 그 이상 넘어가면 익숙한 환경으로 돌아가고 싶어 진다.


제주도에서 일시적인 거주 중인 Y는 제주에서 지낸 지 4개월이 되었다. 일하는 카페에 오는 손님은 물론이고 밥 먹으러 간 거리의 엽서 가게 직원분과도 인사를 나눈다. 심지어 집 근처 카페에 가서는 자기가 키우는 강아지 먹일 간식까지 당당하게 요구한다. 4개월이라는 시간이 믿기지 않을 만큼 제주 커뮤니티에 속한 사람 그 자체가 되었다. Y와 함께 다니니 내가 사교적일 필요는 없으면서도 배척당하지 않는 그 경계에 적당히 걸쳐지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아주 편안했다.


Y의 집 근처에 '우리는'이라는 카페가 있다. 그 카페에서 한두 시간쯤 시간을 흘려보냈나. 카페 사장님들이 바질이 어쩌고 하시기에 바질이 들어간 메뉴가 있나 했더니, 생바질을 가져가겠냐고 묻고 있었다. 알고 봤더니 카페 옆 텃밭을 가꾸는 할머니가 키우는 바질이 너무 무럭무럭 자라서 할머니 혼자 감당이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고, 카페 사장님들을 통해 손님들에게 바질 나눔을 하고 있던 것이었다. 여행 동행인 H가 바질을 얻고 싶다 했더니, 칼을 들고 바깥으로 나가는 사장님. 잠시 뒤에 밭에서 뜯어온 바질이 담긴 봉지를 내미신다. 그 후로 바질을 넣어둔 H의 가방이 열릴 때마다 강력한 바질향이 나에게까지 풍겼다. 아 이거 정말 흥미로운 흐름. 나 혼자였으면 몰랐을 광경. 동네 사람 따라다니니까 재미있는 일이 많이 생긴다.


Y는 나보다 8살 어리다. 그의 정체성이 나이로 다 설명될 순 없는데,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꼭 Y의 나이를 언급하게 되는 이유는 8살 어린 사람과도 잘 지내는 나를 증명하고 싶은 구질한 마음 때문인 듯하다. 생각해 보면 Y는 내 또래와 모두 잘 지내고 나는 Y또래를 거의 모르니까 이건 순전히 Y의 역량이지 싶은데 내가 왜 뿌듯해할까. 제주에서 남녀노소 불문하고 잘 맞먹으며 살고 있는 Y덕에 모처럼 고립감을 느끼지 못한 여행을 했다. 어쩌면 거의 처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앞으로는 아는 사람이 살고 있는 곳 위주로 여행 다녀야겠다. 많이들 뿔뿔이 흩어져 살아주세요. 제가 찾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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