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rtian, "지금, 이 순간"

[무념무상] 그림일기

by yoong

영화, 소설 스포일러가 있는 글입니다.

한 식물과학자의 고군분투 화성생존기

리들리 스콧 감독, 맷 데이먼 주연의 영화 마션(the Martian). 올해 하반기 가장 기다렸던 작품. 토요일 아침부터 달려가 보았다. 다 보고 난 뒤에는,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원작 소설까지 완독.


화성 탐사 프로젝트에 투입됐지만, 불의의 사고로 화성에 홀로 남겨진 대원 마크 와트니. 그가 구조를 기다리며 버텨나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인류 최초의 '화성인'인 셈. 그래서 제목이 the Martian이다.


인간이 돌연한 사고로 우주에 홀로 남겨진다는 설정은 알폰소 쿠아론 감독, 산드라 블록 주연의 영화 그래비티(Gravity)와 같다. 하지만 풀어내는 감성은 정반대에 가깝다. 취향 차이겠지만 나는 마션 쪽이 더 마음에 든다.


약간은 현실성 떨어지더라도 기왕이면 좀 더 따뜻하고 유쾌한 걸 더 좋아해서. 현실이 냉정한 거야 몸으로 겪으며 늘 배우는데 허구의 세계에서라도 더 따스하면 좋잖아.




몸에 안테나가 꽂힌 채 화성이란 광활한 공간에 홀로 남겨진 마크는 그런 의미에서 참 현실성 떨어지는 사람이다. 홀로 남은 데다 지구와 교신도 안 되는 상황. 그러나 감상에 빠지는 대신, 정신이 들자마자 자신이 얼마나 이 곳에서 버텨야 할지, 그러려면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를 철저하게 계산한다. 그리고 즉시 실행에 옮긴다.


자기연민에 빠져 눈물짓는 일은 거의 없다. 예측불허의 사고가 일어나도 "f word" 내뱉기로 풀어내고, 이내 일어선다. 오뚝이형 사람의 전형이랄까. 신기할 정도로 긍정적이고, 유쾌하다. 그 기분이 관객에게 전염된다. 우울함이나 절망감 대신, 끈질긴 생명력과 유머가 영화를 이끈다.


마크는 식물학자라는 설정의 장점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살아남는 데 최대 과제인 식량 문제를 우주에서 감자 키우기라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해결해낸다. 영화에선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지만, 그는 기계공학자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화성 탐사대의 엔지니어인 셈. 그 덕분에 화성 체류에 필요한 물품과 장비도 척척 개조해낸다.

식물학자인 그는 모교에서 이런 편지를 받았다고 자랑한다. "어디서든 농작물을 재배하면 공식적으로 그곳을 점령하게 되는 거란다. 그러니 엄밀히 말해 나는 화성을 점령했다."

홀로 남았다는 데서 오는 절망과 고독은 강조되지 않는다. 마크는 누구와도 대화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미래의 누군가를 향해" 영상일지를 차곡차곡 남긴다. 끊임없이 '누군가를 향해' 말을 거는 것. 그리고 누군가는 이것을 볼 거라 확신하는 것. 홀로 떠들고 있어도 고독과 외로움이 그리 짙게 묻어나지 않는 이유다.


마크가 가진 다른 힘은 '현재 진행형' 인간이라는 사실. 이 부분이 그래비티와 가장 대조를 이룬다.


그래비티에선 주인공이 고독 속에서 떠올리는 과거가 숱하게 스친다. 그러나 마션은 지구에서의 날을 회상하는 씬이 없다. 마크의 과거에 대한 정보, 그의 가족도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원작에서 회상으로 처리됐던 탐사대의 사고 장면, 대원들 간의 소소한 에피소드마저 영화에선 시간 흐름에 따라 전개되는 사건으로 처리했다. "지금 마크가 화성에서 어떻게 살아 나갈 것인가"에 대한 집중도를 높인다.


영화 속 마크는 철저하게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한다. 예측불허의 재난 속에서 머리가 불타고, 애써 기른 농작물이 죽어도 (욕지거리는 하지만) 이내 그 상황에서 최적의 방안 찾기에 몰두한다.


이는 마크가 로빈슨 크루소와 다른 점이기도 하다. 로빈슨 크루소가 접한 위험은 대부분 들짐승, 식인종 무리 등 대등하게 맞서거나 대비할 수 있는 종류다. 그러니 그는 '이길' 방법을 찾는다. 그러나 마크는 홀로 있는 인간이 감히 어쩌지 못하는 종류의 위험에 맞서야 한다. 싸울 수 있는 상대가 아니기에, 재빨리 현실을 인정하고 그 상황을 우회하는 최적의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는 거다.



영화 속 미국 정부가 마크를 구하기 위해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는 장면에선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겹쳐 보인다. 영화 속 구조 대상 라이언 일병이던 맷 데이먼은 이번에도 구조 대상이 됐다. 게다가 스케일이 더 커져(우주니까) 이번엔 전 세계가 그를 응원한다.


한 사람의 귀환에 이처럼 많은 관심이 쏠리다니, 조금 작위적이고 교훈적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원작 소설의 대사를 읽으며 마음이 바뀌었다. 이기적이고 냉정한 사람만큼이나 이타적이고 마음 따뜻한 사람도 많은 게 세상이니까.


If a hiker gets lost in the mountains, people will coordinate a search. If a train crashes, people will line up to give blood. If an earthquake levels a city, people all over the world will send emergency supplies. This is so fundamentally human that it's found in every culture without exception. Yes, there are assholes who just don't care, but they're massively outnumbered by the people who do.


리들리 스콧은 번역본이 600쪽가량 정도로 두꺼운 소설을 어색하거나 아쉬운 점 없이 잘 담아냈다. 크게 변형한 부분은 없고, 영화 속에서 탐사 대장 루이스의 비중을 좀 더 키웠다.


다만 자국 로켓을 '과학자의 윤리'를 내세워 미국 우주비행사 구조에 지원하는 중국의 '뜻 모를 선행'은 책을 읽은 뒤에야 이해가 됐다. 역시 공짜는 없는 법, 다음번 화성 탐사팀에 중국인을 포함시키도록 하는 물밑 거래의 결과물이다.


영화 속에서 진하게 그려지지 않았던 마크의 고독과 절망도 소설에서 조금 더 드러난다. 영상일지로 처리된 장면이 글로 쓰여 있어 더 외롭게 다가온다.


그래도 일지 내내 이어지는 마크 특유의 유머러스한 어투가 자칫 딱딱해질 수 있는 분위기를 유쾌하게 이끈다. 영화를 본 뒤 소설도 따로 읽어볼 만하다.


컴퓨터 프로그래머 출신인 저자가 2009년부터 개인 블로그에 연재한 소설이다. 독자 요청에 2011년 자비로 전자책을 먼저 출판한 뒤, 정식으로 작년 미국에서 출간해 큰 인기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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