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기다려줬으면

[무념무상] 그림일기

by yoong

요즘 나는 많이 느려졌다. 탄력성이 떨어졌다고 해야 할까. 별로 빠르게 원래 상태로 되돌아가려는 의지가 안 생기는 시즌.


나를 둘러싼 일상이 기왕이면 나를 중심으로 움직여주면 좋으련만, 내 상태는 어떻든 아랑곳 않고 그대로 쭉쭉 나아간다. 나는 아직 멍한 머리를 애써 붙들고 시간을 쫓아간다. 질질 끌려간다. 분명 바쁜 상황인데, 마음도 머리도 정비가 안됐다. 그냥, 에라 모르겠다 하고 포기해버리는 일들이 자꾸 늘어간다. 가끔 천재지변이 발생해서 억지 휴가가 생겼으면 싶은, 유치한 마음도 자주 생긴다.

공짜점심 같은 일이 벌어지길 바라곤 한다. 실컷, 속 시원하게 울고서도 눈이 붓지 않는다거나 하는.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사실 요즘은 내게 스스로 휴가를 줬다. 어디 떠난 건 아니고, 그냥 그동안 조였던 고삐를 풀어준 거다.


"너 그동안 참 열심히 살았어, 쉬어도 되고 스트레스 그만 받아도 괜찮아."


스스로에게 이렇게나 많은 칭찬을 퍼부어주고, 한없이 관대하게 대해줬다. 우습지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요즘 많이들 이야기하는 '힐링'하기. 나를 내려놓기. 지금 문제는 내가 너무 치열하게 살았기 때문이니까, 아마 마음을 편하게 가지면 더 나아질 거라 여겼다. 저절로.


공짜 점심을 바란 거다. 타당한 이유도 생각했다.


가령 실컷 울고 자도 눈이 붓지 않고-감정을 마음껏 풀어냈으니까 그 정도 보답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외워야 하는 책을 읽다가 베고 누워 자면 머릿속에 어느새 콕 박혀있고-외우려 노력하다 잠든 거니까 그 성의를 봐서라도?-

먹고 싶은 것들 마음껏 먹고 자도 살이 오히려 빠지고 -행복하게 먹으면 신진대사가 더 활발해지지 않을까?-.

일은 좀 편하게 대충대충 해도 절로 잘 되고. -푹 쉬다가 일을 가끔 열심히 하면 더 신선한 마음으로 할 테니까?-


결과는? 알다시피,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 법이다.


나에게 휴식을 주는 만큼, 하지 않고 지나친 일이 점점 감당 안 될 만큼 쌓일 뿐. 저절로 해결되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 예상하지 못한 결과는 아니지만 진짜로 이렇게 되다니. 서글프긴 서글프다. 왜 내 삶은 우연한 행운처럼 요령 피울 때 되는 일이 없고, 지독하게 성실하게 살아야 그나마 꾸역꾸역 굴러가는 건가.


오늘 아침 눈에 띈 기사 하나가 좀, 서글펐다. 일개미라고 해서 다 '일하는 개미'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는 외신 기사. 그동안은 일개미가 시간에 따라 서로 돌아가면서 휴식을 취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일 안 하는 개미는 끝까지 놀고 먹는다는 이야기다. 2주 동안 하루 6번씩 개미들을 관찰해 본 결과, 3%의 개미만 죽어라 일하고, 25%는 아예 일 안 하고 논다. 그리고 72%는 관찰 시간의 절반 이상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일하는 개미들이 나뉘는 이유는 명확하게 밝혀지진 않았다고.


New research shows that many ants in a colony seem to specialize in doing nothing at all.


어쩐지 나는 일하는 개미로 태어난 느낌이 든다. 그러니 이렇게 퍼질러 있으면 뒷감당이 안 되는 거.

뭐, 일하는 개미로 태어난 모양이다. 마음이 편해지려면 이렇게 풀어져선 안 되는 이상한 체질이 아닐까. 오늘까지로 내 멋대로 내게 줬던 휴가는 끝. 일개미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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