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행복 바이러스

[주경야dog] 반려동물과 살아가는 사람 이야기 ① 해피

by yoong


해피의 아가시절. 배냇털이 이렇게 귀한 건 줄 몰랐다. 이 시절 사진을 많이 못 남긴 게 한이다. / 타블렛, 포토샵.


처음이니까, 우리 집 강아지 이야기를 먼저 풀어볼까 한다. 사실 강아지라고 하기도 좀 이상스럽다. 그냥 우리 가족인데. 문자만 주고받을 줄 알면 참 좋을 텐데, 이런 대화가 자연스레 나오는, 그냥 우리 집 막둥이.


솜구름 털 속에 콩콩 박힌 눈, 새까맣게 빛나는 코. 기껏해야 어른 주먹만 한 몸. 해피를 처음 만났을 땐 정말이지 아기천사가 나타난 줄 알았다. 안고 있는 손에 힘을 주면 어디 뼈라도 부러지는 게 아닐까 싶게 연약하고 몰랑몰랑했다. 그 작은 몸에 손가락을 하나 갖다 대어 보면 콩닥콩닥 작은 심장이 힘차게 뛰는 게 참 신기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책임감이 너무 큰 것 같아 무섭기도 한, 그런 묘한 기분.


강아지를 키워 본 사람은 아마 알 거다. 그 오목조목 귀여운 얼굴에선 의외로 별 표정을 읽을 수 없다. 그런데 그 무표정이 참 예쁘다. 그냥 그 멍한 얼굴 자체가.

그 얼굴엔 어떤 게 좋은 거고 나쁜 건지, 기준이 없다. 그러니 무엇이든 다 받아들여보고, 다 신기해하고, 다 느껴봐 주겠다는 그런 의지가 느껴지는 얼굴. 그 무표정에 푹 빠진 다 큰 어른들이 조그마한 강아지를 둘러싸고 한참을 들여다봤던 것 같다. 아무것도 안 하면서. 그냥 보는 게 좋아서.


강아지는 별다른 일을 하지 않았다. 조금 바라보다 짧디 짧은 다리로 한두 발짝 걷고는 폭, 옆으로 쓰러졌다. 8절 도화지 만한 배변판 위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채 꼼지락대다 지쳤는지 쿨쿨 잠이 들었다. 그런데, 그걸 바라보는 게 기쁨이고 행복이 됐다. 이런 장면이 내가 기억하는 해피의 첫 모습이다. 2008년 10월.


어느새 2015년 10월이 됐으니, 해피도 많이 자랐다. 조막만 했던 몸은 쑥쑥 길어졌다. 자기가 낸 '깩' 소리에 깜짝 놀라 엉덩방아를 찧던 시절은 까맣게 잊은 듯, 이젠 온갖 소리를 다 내면서 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한다. 그 소리란 게 말 그대로 '온갖 소리'인지라 어떻게 생생하게 표현이 안 된다. 반가울 땐 끙끙거리다가 여자아이처럼 왕왕 짖고, 간식을 조를 땐 뒷다리를 손처럼 내밀다가 늑대 소릴 내고, 우리 품에 안겨서 행복하게 잠을 청할 땐 깊게, 아주 만족스럽다는 듯한 한숨을 내쉰다. 택배 아저씨가 벨을 누르면 으르렁거리면서 그야말로 사나운 소릴 낸다. 저렇게 여러 소리 연구하느라 고생하느니 차라리 말로 하는 게 더 편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뚱한 얼굴의 해피. 색연필그림. 뭔가 조를까말까 정도의 상황.

인간의 주요 특성 가운데 하나로 '거짓말하는 능력'을 꼽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다. 인간만 거짓말을 한다는 건 착각이다. 우리 강아지도 거짓말을 한다. 간식 달라고 마치 '착한 일(대변을 화장실 배변판에 잘 쌌다거나..)' 하고 온 양 사라졌다가 돌아와서 꼬리를 치고, 밥을 새벽에 먹어놓고 안 먹은 척. 사람으로 치면 미운 네 살이라고 해야 할까.


다행인 건 거짓말 성공률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는 점. 낌새가 이상해서 목소리를 깔고 "해피." 한 마디면 곧장 잘못을 실토하니까. (=배를 하늘로 향하고 드러누워 꼼짝도 않는다.)


표정은 그야말로 풍부해졌다. 좋다 나쁘다가 아주 분명하다. 원하는 만큼 간식을 못 얻어먹거나, 산책을 못 나가거나 하면 여지없이 입꼬리가 개무룩 내려가고, 눈꼬리는 매섭게 올라간다. 그렇지만 콧바람을 쐬러 나가면, 그야말로 '해피한' 얼굴이 된다. 이렇게.

산책 나와 행복하게 돌아다니다가 잠시 쉴 때의 모습. 그저 힘들어서 헥헥거리는 걸 수도 있지만, 집에서 헥헥댈 때와 표정이 분명히 다르다.

이렇게 쑥쑥 자라 능구렁이가 다 되었다 싶은데도, 사람처럼 무섭다거나 싫어지지 않는 이유. 뭘까. 생각해봤다. 그리고 내린 결론. 끝까지 거짓말하지 않는 한 가지가 있어서가 아닌가. 바로 사랑한다는 표현.


내가 더 많이 사랑을 주고서 못 받으면 내가 손해 보는 거 아닌가, 그런 계산 따위 없다. 그냥, 가족은 사랑하는 내 가족이란 거다. 가족 누구든 집에 들어서면 누구보다 먼저 뛰어나와 반겨주고, 아침에 잠이 깨어 일어나면 잠든 몇 시간이 그렇게나 아쉬웠다는 듯 오두방정을 떨며 아침 인사를 한다. 잘 있어, 인사하고 집 밖으로 나설 때면 뭐가 그렇게 아쉬운지 신발장 앞에 버티고 앉아 가지 말라고 짖어댄다. 집에 있을 땐 꼭, 몸 한 구석이라도 가족과 맞대야 한다는 듯 고집스럽게 발끝이라도 우리에게 붙이고 앉는다. 그렇게 행복을 온 집안에 뿌려댄다. 울적하게 집에 들어서는 날도 그 모습을 보면 행복해지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밖에서 어떤 사람이든, 이렇게 나에게 사랑을 퍼주는 생명 앞에선 나 또한 사랑스러운 사람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래서 애교 따위 눈곱만치도 없는 내가 해피한테는 하이톤으로 인사하고, 아낌없이 우쭈쭈 하면서 꼭 안아주고, 생각만 해도 미소가 입에 걸리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걸 거다. 식상한 결론이지만, 역시 사랑이 답인 건가.


사실 우리 가족과 사랑을 너무 많이 주고받은 탓일까, 해피는 그야말로 응석받이 아이로 자라긴 했다. 가족 아닌 다른 사람에겐 정신 못 차리고 짖어대고, 뭔가 먹고 싶으면 끊임없이 졸라대는 식탐 대마왕이다. 자기가 졸릴 때 건드리면 성질도 벌컥벌컥 낸다.


그래도, 모든 일이나 감정에 '쿨한 척' 하는 존재보단, 이렇게 방정맞을 정도로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내고, 상처받을 줄도 알고, 그러면서 뒤끝이 없어 금세 풀어져선 아낌없이 사랑을 퍼주는 존재가 더 예쁘고 사랑스럽다. 그래서 그냥 망나니인 채로도 좋다. 해피가 오래오래 지금처럼 우리와 함께 사랑을 주고받으며 행복하게 살면 좋겠다. 그 모습 그대로. 아, 지금 또 보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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