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꿈을 꿨다. 그는 임종 직전의 모습도, 나를 만나기 전의 모습도 아닌 내가 20년 동안 거의 매일 봐서 나는 사실 변화를 감지하지 못했던 연속적인 모습의 어중간한 어딘가의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동시에 매우 구체적이어서, 그가 그 모습이 아닌 채 산 지가 이미 3년, 그리고 그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지 3년. 총 6년의 시간이 흘렀다는 점을 고려하면 인상적일 정도로 생생했다.
내가 할머니로부터 가장 먼저 감각하는 것은 그의 냄새이다. 늘 자기 자신과 주변을 깔끔하게 유지했던 그는 인조적이지만 정감 가는 도브 비누 향기가 났다. 그의 옷장을 열면 가짓수는 많지 않지만 구김 없이 잘 정돈된 옷들과, 수납장 안에 기준을 알 수 없게 모아진 물건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포근하고 향기로운 그의 냄새, 비누 향과 촌스러운 화장품 향, 그리고 그만의 고유한 살 냄새가 섞인 냄새가 났다. 그가 떠난 주말이면 어린 나는 항상 옷장을 열어 냄새를 맡았었다.
그는 또한 소리가 많이 나는 사람이었다. 선천적으로 기관지가 안 좋은 데다가 우리 집에 고양이가 있던 탓에 할머니가 숨을 쉴 때는 항상 색색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가 잘 때 가끔 그 소리가 안 들리면 나는 놀라서 다가와 확인하곤 했는데, 다행히도 언제나 몇 초 뒤면 그는 크게 숨을 몰아 쉬며 다시 코를 곯았다. 그가 깊은 잠에 들면 혼자서도 오케스트라 같은 다채로운 소리를 냈다. 기본적인 숨소리에 코를 코는 소리, 그리고 입 사이로 삐져나오는 높고 가느다란 날숨의 불규칙한 소리가 조화를 이루었다. 그런 그와 나란히 잤던 경력 덕분에 예민한 나도 잠만큼은 세계 어디에서나 잘 자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강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던 그는 체구는 작지만 쨍쨍하고 야무진 사람이었다. 기본적으로 따뜻한 사람이지만 모르는 사람에게는 경계를 풀지 않고 할 말을 했다. 그의 목소리는 높고 날카로운 편이었지만 천식으로 가래가 껴서 어딘가 둥근 느낌이 나서 귀엽기도 했다. 그리고 자주 웃었다. 웃음은 자주 요란한 기침으로 이어졌다. 폭발 같은 기침이 끝나고 가래를 뱉는 순간이 오면 왠지 나는 눈을 질끈 감는 마음이 됐다.
일을 많이 해서 그렇다던 두툼하고 거친 손은 언제나 따뜻했다. 투박하고 빠르게 4명 분의 살림을 해내었고 20년 간 나를 키워냈다. 내가 분류해 놓은 방식과는 무관하게 빈자리에 엉뚱하게 들어가 있던 내 물건, 설거지된 그릇이나 찬장 손잡이에 붙어있는 고춧가루를 보면 순간 짜증이 나다가도 웃음으로 바뀌었다.
할머니의 시각적인 기억은 이 모든 다른 감각의 기억 다음에 떠오른다. 항상 까맣고 구불거리던 얇은 머리칼, 푸른 잿빛 눈썹 문신. 요철과 점은 많지만 반질거리는 피부와 완벽한 배열의 하얀 틀니. 잠깐 슈퍼마켓에라도 갈 때면 그는 작은 손거울을 꺼내 들고 화장을 했다. 본연의 피부색보다 한 톤은 밝은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짙은 립라이너로 집중하여 한 번에 1/4 씩 입술 라인을 땄다. 그리고는 립스틱으로 안 쪽을 채우면 그의 화장은 끝이 난다. 외출을 마치고 그가 돌아와 한 두 번씩 틀리면서 느리게 현관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나면 나는 귀를 쫑긋 기울이고, 오늘 바스락 거리는 검은 봉다리 소리가 나는지 확인했다. 대부분 내 예상은 맞았고, 바밤바나 소보루빵 같은 것이 내 손에 쥐어졌다.
나는 그의 삶의 행적이나 그의 서류 따위에 기록된 정보는 모르지만 누구보다 자세히 그의 몸과 마음이 꾸려나간 매일의 일상에 대해, 그것의 향과 질감에 대해 기억한다. 잠깐을 마주치더라도 그 만남의 감각을 다채롭게 기억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