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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라 Jun 08. 2020

행복과 더불어 온 책

제시어: 나의 노동

내 두 번째 책이 나왔다. 이 모든 건 글이 쓰기 싫어 시작된 일이다.


“아빠 우리는 언제쯤 세계여행을 다닐 수 있을까?”

아프리카 일주를 하는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만화영화를 보며 쉽게 내뱉은 질문이었다.

“아마 10년은 걸리지 않을까 유라야?”


그리고 정확히 6년이 걸렸다. 내가 열넷일 때 엄마가 갑자기 통보했다.


“유라, 내일부터 학교에 나가지 않아도 돼. 우리는 유럽여행에 다녀올 것이야. 내일부터 3개월간 유럽공부를 할 것이고, 3개월간 유럽여행을 하고 다시 한국에 돌아와 여행기를 쓸 거야. 잘하면 출판까지도 생각하고 있어”


여행작가가 되는 것은 너무나 쉬웠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쓴 글은, 산마르코 광장에서 쓴 글은 교실 안 책상위에서 쓰는 글보다 훨씬 매력적이었나 보다. 어쩌다보니 여행작가가 돼있었다. 엄마가 시켜서 쓴 글이 어느 순간 출판이 돼있었다. 너무 쉽게 시작한 노동이었다. 신문사에서 인터뷰요청도 들어왔고, 대입 자기소개서에서도 내 책은 요긴하게 작용했다. 전국의 학교에서 여행작가로 직업강연을 요청하기도 했다. 다들 날 여행작가 최유라라고 불렀다. 너무 쉬웠다. 여행작가가 되기는.


그래서 그랬을까. 절필 역시 너무나 쉬웠다. 글이 쓰기 싫어졌다. 두 번째 여행기를 안내려고 한 것은 아니다. 여행작가라는 이름으로 고민도 많이 했다. 이번에는 유럽 아닌 동남아를 가볼까. 성인이 된 지금 유럽을 한 번 더 가볼까. 주체적 결정도하기 전 주어졌던 나의 직업에 충실하고자 실행했던 너무나 쉬웠던 나의 노동과정이었다. 그리고 그 계획은 금전적인 이유로 철저하게 무산되곤 했다. 그리고 글이 쓰기 싫어졌다. 너무 쉽게 글을 끊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현재 여전히 나의 노동은 계속되고 있다. 강연 출강요청 한 학교들도 꽤 줄서있다. 여행작가가 아닌 작가로.


내 두 번째 책은 어떤 여행기냐고? 내 두 번째 책은 여행기가 아니다. 지극히 평범한 에세이이다. 좋아하는 가수에 대한 글, 드라마 감상평, 남자친구에 관한 글. 지극히 평범함을 소재로 쓴 글이다. 공모전에서 투자받은 자금, 장학금, 아르바이트로 번 내 사비 그리고 현재 소소하게 들어오는 책의 인세는 곧 쓸 내 세 번째 책에 보탬이 되겠다고 한다.


오늘도 학교에서 작가되는 방법을 물어보는 학생에게 회심의 미소와 함께 답한다.


“창밖에 뭐가 있니? 그래, 운동장, 꽃, 아파트, 담장, 공기. ‘운동장에서 재잘대는 꽃들의 내음은 공기를 타고 담장을 넘어 아파트까지 향기롭게 한다.’ 이렇게 우리 주변의 모든 것들은 전부 글을 쓸 수 있는 영감들이야. 유럽여행과 같은 특별한 경험만이 글을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야. 나는 이걸 몰라서 너무나 가까운 길을 저만치나 돌아왔어. 글은 일상 속 쉬운 것에서 시작해야해.”

이 모든 건 글이 쓰기 싫어 시작된 일이다. 꼬박 25년이 걸렸다. 진짜 작가가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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