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AI에게 직업을 빼앗겼습니다
2022년에서 2023년 여름 초입까지, 나는 한 스타트업에서 서비스하는 인터랙티브 스토리 앱의 작가로 일했다. 당시 세계 AI 시장은 대격변기를 겪고 있었다. ChatGPT가 등장하며 생성형 AI 붐이 일었고, MidJourney, Stable Diffusion 같은 이미지 생성 AI가 나왔다. 기업들은 AI를 본격적으로 도입하며 IT업계의 판도가 변하고 있었던 해가 아니던가. 나 또한 IT 관련 스타트업에 일하는 작가로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어…어쩌라고요?
어차피 개발자들이 만들어준 툴에 꾸역꾸역 쓴 스토리를 올리는 제가… 신기술 알아서 어디서 써먹게요? 진부하게도 나는 여태까지 그래왔듯 대충 글만 쓰며 먹고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변명하자면 GPT를 보고 언젠가 대체 될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유명 작가도 아닌 고용된 노동 작가로 사는 나는 굳이 AI가 아니더라도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사람에게도 대체 되는 등 푸대접이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원래 대박 안 터지고 소소하게 사는 창작자의 삶이란 이렇다. 그런 얘기 앞으로 많이 나올 테니 익숙해지시면 좋겠다.
그러나 이런 나조차도 놀랄 정도로 회사는 실시간으로 변하고 있었다. 우선 회사에서 일하던 일러스트레이터들의 직무가 변경되었다. 모 그림 생성형 AI가 세간에서 창작자의 데이터를 함부로 학습한다는 둥, 손가락이 6개라는 둥 욕을 먹어도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AI를 유료로 구독하고 그림을 수정해서 사용하는 것이 일러스트레이터를 고용하는 것보다 싸고, 무엇보다 빨랐다.
당시는 GPT가 긴 글이나 소설, 대본 등을 무조건 잘 써오는 시기는 아니어서, 나는 괜찮을 지도…라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정이 좋지만은 못했다. 그 회사에 다닐 당시 나는 1년 반 남짓한 재직기간 동안 10개 내외의 회차에 엔딩 가지수가 최소 3가지는 되는 인터랙티브 스토리를 13 작품이나 작업했다. 물론 모든 글을 내가 다 쓰는 건 아니었지만, 스토리 5개를 한 달에 5개나 기획하기도 하고, 공동 작업에 참여하거나 팀원을 이끄는 등 작가로서 가장 바쁘고 비참했고, 나름대로는 즐겁게 살아야만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더 많은 작품 수를 원했고, 더 큰 플랫폼으로 도약하길 원했다. 외부 작가를 구하고, 유저들도 스토리를 쓸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고, 결국에는 그 말이 나오고 말았다.
“Chat GPT를 이용하면 스토리 작업도 더 빠르게 효율적으로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스토리를 AI로 쓰라고? 스토리에도 물론 공식은 존재한다. 그러나 독자가 글을 읽을 때 느끼는 즐거움은 작가만이 가진 내러티브와 뉘앙스에서 나온다. 그게 바로 내 생각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당시 재직하던 회사의 플랫폼에서 나는 형편없는 성적을 가진 작가기도 했다. 내가 관리하며 조악하다고 생각했던 외부 작가의 글이 나보다 성적이 좋았다. 게다가 빨랐고, 나보다 쌌다. 분하고, 슬프고, 답답했다.
‘나도 시간만 제대로 줘 봐. 더 잘할 수 있는데… 너무 많은 일들을 해야 하잖아! 전문 작가랑 깊이 있는 콘텐츠를 제작한다고 날 고용해 놓고선! 정작 작품에 집중하거나 구상할 시간도 제대로 안 줬잖아! 입사할 때랑 말이 다르잖아!’
아무리 감춰도, 불만은 티가 나게 마련이다. 아마 날 보며 회사도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맞다. 그래서 어쩔 건데? 작가로서의 자아를 떠나 노동자로 돌아가 보자. 스타트업의 일원으로서, 나도 더 좋고 재미있는 스토리가 빠르게 올라와서 흥행하는 것이 우리 앱의 수명과 큰 연관이 있음을 피부로 느끼던 시기였다. 사실 글빨보단 소재만 좋으면 팔리는 것이 당시 우리 앱 내 콘텐츠들의 현실이자 콘텐츠 시장의 흐름 중 하나기도 했다. 하지만 소위 ‘양산형’으로 찍혀 나오는 글을 보거나 그런 글을 제작해야 할 때면 마음이 무너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갈등이 이어지던 때, 콘텐츠 제작팀 리드의 제안을 받았다.
“<AI vs 인간>을 주제로 스토리를 기획해 보면 어떨까요? 실제로 AI도 활용해 보고요.”
우리 회사에는 이미 AI에 대체된 인력이 있고, 대중들도 AI에게 자신의 직업을 대체당할 위협을 느끼는 바이럴을 많이 하니까 회사 앱에 올릴 콘텐츠로도 만들어보잔 거였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겠는가? 당시의 나는 작가로서 내 직업에 꽤 회의를 느끼고 있었고, 창작이 즐겁다기보단 두렵고 지긋지긋했다. 지쳐있었던 것이다. 외부 작가도 싫고, 해도 해도 희망도 안 보이고 끝이 없는 것 같은 업무도 싫었다. 회사가 잘 되길 바랐고, 우리 서비스가 잘 되기는 더더더더더 바랐다. 그리고 그걸 해내는 사람은 외부인이나 AI가 아니라 우리 팀원 중 다른 작가 혹은 나이길 바랐다. 그래서 AI 나부랭이는 꼴도 보기 싫었다.
‘네가 사람에 대해 뭘 아는데? 네가 디테일을 알아? 결국 네가 그걸 만들어도 우리가 다시 다 다듬어야 하잖아. 일은 일대로 하고 공은 지가 다 가져갈 거 아니야! 진짜 개 거지같은 AI 다 망해버려라. 누가 네 서버인지 메인보드 인지 뭔지 아무튼 모르겠고, 중요한 부품에 시럽 잔뜩 들어간 라테나 실수로 처붓길 바란다고! 그런데 뭐? 나보고 AI를 주제로 스토리를 쓰라고??’
그런 생각을 하다가 대답했던 것 같다.
“네넵! 업무일 n일 정도 사용하여 기획 후, 다시 회의 인비 드리겠습니당~~”
참고로 나는 월급 앞에 자아 없고, 자아 앞에 월급 있는 놈이었다. 어차피 할 일. 회사에서 소재를 준다는데 감사하게 진행해 버리는 것이 훌륭한 직장인의 마인드 아니겠는가. 2023년 봄, 나는 chat GPT(이하 GPT)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스토리의 전체적인 얼개와 흐름, 대본은 내가 작성했지만 인터랙티브 게임 내에서 유저들이 풀게 할 퀴즈는 GPT와 함께 만들었다. 이후 내 스토리에는 룰베이스 챗봇을 활용해서 유저의 답변에 반응하도록 했는데, 이때 챗봇을 가르칠 답변도 GPT와 함께 작업하며 나의 노동인권과 작업시간에 큰 도움을 받았다. 재미난 경험이었다. 기존이라면 나와 함께 했을 팀원은 GPT가 아니라 사람 작가로 그가 바쁜 일손을 쪼개 도와줬을 것이다. 그러한 심리적, 업무적 부담 없이 생각보다 재미있게 스토리를 작업하며 나름의 활용도를 익혀갔다. 그리고 인간vsAI 스토리 작업을 끝낸 후, 나는 퇴사했다.
이유는 꽤 복잡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무엇보다 내 안에 쌓인 글과 창작을 향한 거부감을 좀 해소하고 싶었다. 스타트업이니 AI니, 앱이니, 사용자니 하는 것들로부터 좀 멀어지고 싶었다. 당시 GPT로 이런저런 작업을 해보고, 당시 급변하는 AI/IT시장을 보며 내가 했던 생각은 이랬다.
AI가 발달할수록 중요한 것은 AI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인 사고를 하는 역량이 아닐까? 누가 사용하느냐에 따라 AI는 천차만별의 사용양상을 보인다. 인공지능 친화적 사고를 가지고 지식이 혜박하다면, AI 시대에서도 사람으로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 당시 일기에 이런 말을 썼던 거 같다.
그러나 그 사람이 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난 오히려 관련이 없는 사람이랄까? 당시 나는 스스로가 AI에게 대체될까 두렵기는커녕, 이미 마음의 준비가 끝나있었다.
‘이제 스토리를 똑똑한 개발자 나으리들이 AI를 챱챱 러닝 시켜서 쓰면 되겠네. 굳이 회사가 날 필요로 하겠어? 소스나 아이디어가 필요하면 싸게 외부 인력이나 유저 아이디어를 받아도 될 일인데, 왜 나한테 월급을 주겠냐는 거임. ㅇㅇ’
언젠가 찾아올 권고사직을 기다리느니 일찌감치 새로 살길 찾아 나가야지 않겠는가. 어디 산이라도 가서 화전이라도 갈아야지 먹고 살지! 회사 내에서 점점 가라앉는 기분을 느끼며 버티고 있기보단 그냥 지친 김에 빨리 집에나 가고 싶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AI를 내 직업과 깊게 연관 지어서 써보고 싶다. 분명 재미있는 서비스가 될 수도 있고, 콘텐츠도 될 수 있을 텐데…. 하지만 그게 뭘까?’
그런데 웬걸. 생각보다 기회가 빠르게 찾아왔다. 퇴사한 회사에서 나에게 chat GPT를 이용해 웹소설을 제작해보라며 외주 제의를 준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수락했다. 회사를 퇴사한 지 2주 만에 외주 회의하러 회사에 들어가는 놈이 되었다. 원래 대박 안 터지고 소소하게 사는 창작자의 삶이란 이렇다고 앞서 말하지 않았는가. 이 글을 여기까지 읽으시다가 이쯤에서 ‘뭐 이런 놈이 다 있냐?’는 생각이 드셨다면 얼마든지 하시라. 아주 합당한 생각이니.
아무튼 GPT를 이용해서 소설을 쓰는 것은 당시에도 그리 새로운 일은 아니었다. 이미 GPT를 이용해 소설을 출간한 사람이 있었을 정도였으니까. 회사에서는 GPT를 활용해 스토리를 창작하는 가능성을 테스트해 보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고, 이미 비슷한 프로덕트가 여기저기 출시되던 때였다. 이제 나는 더는 이쪽 동네에 발을 못 들일거로 생각했는데…! 이번 기회로 나도 어떻게 비벼보면 좀 재미있는 프로젝트가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당시의 나는 어떻게 작업을 진행할지를 프로젝트 리더에게 물었는데 그는 나에게 ‘완전한 자유’를 줬다. 마음대로 생각나는 대로 해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나름의 가설을 가지고 대화창을 나누어 활용하며 GPT를 이용해 스토리를 기획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돈 받고 호기심 생기는 거 다 해보면서, 신기술 탐구하기!
정말 괜찮아 보이지 않는가? 게다가 생각의 속도가 빠른 편인 나는 GPT와 상성도 잘 맞아 작업이 즐거웠다. 하지만 작가로서는 꽤 여러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GPT의 한계가 보이면
‘그래~ 거 봐라. 그래봐야 알고리즘 주제에, 네가 스토리를 알아?!’
하다가도, 어차피 기술 발전에 따라 GPT가 지금 가진 한계를 빠르게 극복할 것을 생각할 때마다 눈앞이 막막하고 깜깜했다. 작가로서의 나도 시간이 흐르며 발전할 수 있겠지만, 낡고 지친 직장인보다 기계가 훨씬 효율적이고 빠르지 않겠나. 그런 나의 어중간한 마음과 외부 요소가 콜라보를 했고, 프로젝트는 얼마 못 가 흐지부지 마무리하게 되었다. GPT와 소설을 쓰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회사나 내가 원하는 방향성이 잘 나오지 않았던 것이 아쉬웠지만, 갑께서 프로젝트 종료를 외치시는데 어찌하리오. 그렇게 나는 IT 분야보다는 다른 쪽에서 프리랜서로 일을 하며 점점 AI를 잊고 살게 되었다. 하지만, 내 마음 한편에는 항상 남아있는 의문이 있었다.
‘내가 좀 더 지식이 있었다면? 내가 좀 더 AI를 잘 사용했다면 결과는 몰라도 과정은 좀 더 다르지 않았을까?’
그 후 1년 반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GPT는 당시보다 더 발전했고, 나는 뭐 여전히 그저 그런 상태의 인간이다. 프리랜서로 여러 작업을 하면서 나는 종종 GPT를 찾았고, 그걸 넘어서 결제까지 하며 매 월 돈을 갖다 바치고 있다. 그리고 얼마 전 시간이 비는 며칠 사이 공부를 해 AI 프로젝트 지도사 1급이라는 민간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리고 데이터에 관해 배워보기 시작하고 있다. 직업적으로 활용하게 된다면 너무 땡큐겠지만, 아직 모를 일이다. 사실… 거의 없을 것 같달까…? (여러방면으로 아무튼 작가 필요하신 IT 업계 여러분의 제의 적극 환영합니다.) 아무튼 그냥 단순히 흥미와 호기심 때문이다. 내 마음 한쪽에 남아있던 의문이 여전히 나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GPT를 더 잘 활용하거나, 재미있는 작업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GPT를 탐구해 본다는 나의 또 다른 쓸데없는 취미가 탄생했다. 긴 글을 읽느라 고생하셨다. 이 브런치에서 앞으로 다룰 내용을 말하겠답시고 여기까지 떠들었다. 아무튼 나의 주제는 이러하다.
무료 작가 vs 유료 GPT! 누가 더 괜찮은 사고를 하거나 혹은 재미있는 생각을 할까?
라는 느낌으로 GPT를 써보며 나눈 잡다한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겨볼까 한다. 여력이 되면 소소한 관심을 주시면 감사하겠다.
다음편 주제
무료 인간 친구 VS 유료 GPT 친구 : AI도 질투를 느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