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와 다무르

by 유시안

새로 살게 된 동네에는 홈플러스가 크게 들어서 있다. 홈플러스는 마트 이름이다. 지금 내 머릿속 기준으로 전국에 체인이 있는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마트 체인이다. 위기라는 말은 오래 돌았지만, 이번엔 진짜였다. 사람으로 치면 수술대에 올라간 느낌이다. 요즘 몇 개 지점은 폐점 수순을 밟고 급기야 직원 임금 체불이 발생했다. 지난 12월 급여는 분할 지급했고 1월 급여는 밀렸다고 한다. 이건 내가 공부한 게 아니라, 알고리즘이 먹여준 지식이다. 폐점하며 다른 지점으로 인력 이동을 시켰는데, 반수 이상이 그만두는 것을 선택했다는 구절도 본 듯하다. 기사에 첨부된 사진에는 중년 남녀 몇 명이 모여 기도하듯 손을 모으고 각자의 속도로 고개를 숙이거나 땅에 붙어 바닥에 이마를 댔다. 삼보일배를 했다고 한다.

2026년의 최저 임금은 시급 만 원을 넘겼는데도 200만 원가량이다. 월 200만 원 남짓한 돈으로 온 가족이 버틴다는 기사 제목이 기억에 남았다. 뒤에 '무릎 꿇은 '홈플러스' 엄마들'이라고 되어 있었는데 비단 엄마들만의 이야기는 아닐 거다. 내 지내는 곳 근처가 홈플러스이다보니 주소창에 홈플러스를 몇 번 검색했었고 '나 홈플러스 근처야' 같은 말들을 했을 거고 홈플러스 영업시간 같은 것을 알아보느라 또 검색을 했을 거다. 그걸 토대로 검색 포털이 홈플러스 관련 뉴스 기사를 내게 자꾸 띄우기 시작했다. 관심도 없었던 홈플러스 경영난 이슈에 나도 모르게 해박해지게 된 것이다.

일반인으로서 나는 이렇다 할 배경 지식도 없고 이 사안에서 뭐가 맞고 틀렸는지 잘 알 수가 없다. 신묘한 알고리즘의 인도 하에 기사로써 이모저모 접할 뿐이다. 자본주의는 차가울 뿐이니까, 제도에 맞게 수행된 일들이 뜻하지 않게 인간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고 있을 뿐이라는 확신만 있다. 내가 주로 지닌 감상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본연의 일 대신 생존을 걸고 삼보일배를 하는 직장인들의 처지가 퍽 가엾다는 것이다. 그들의 임금 체불 확인서에는 정말로 200만 원 남짓한 금액이 적혀 있었다. 얄궂게도 오늘 알게 된 사실인데, 명품 브랜드 까르띠에에서 다른 것도 많이 팔지만 다무르라는 목걸이를 팔고 있다. 그 목걸이의 가격은 스몰 핑크 골드 기준으로 234만 원이다. 스몰의 펜던트 크기는 정말이지 손톱만 하다. 부아가 났다. 예쁘다는 것만 알았다면 좋았을 걸. 홈플러스 직원들의 위기도 같이 알게 되다니. 나도 매일 지옥철을 뚫고 출퇴근하는 직장인인데. 누구의 목에는 홈플러스 직원의 한 달이 가볍게 걸린다.

코스피 지수가 5600에 육박하는 주식 활황과, 3대 마트 체인 중 한 곳이 서서히 증발하고 있다는 소식이 공존하는 게 신기하다. 정부가 나서서 인수를 주도하라는 기사도 읽었지만, 무엇이 공명정대한 결론인지 잘 모르겠다. 기업이 어려울 때 채권자를 기만하는 질 나쁜 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르고, 소매업 특성상 신용 거래도 많았을 것이다. 법에 맞고 맞지 아니하고는 법원이 판단해 줄 테니,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은 그 귀추를 지켜볼 뿐이다. 다만 제도를 믿고 선량한 의지로 살아온 직장인들이 고통받는 일에 대해, 사람들이 남의 일이라고 너무 빨리 외면하지 않기만을 바란다. 삼보일배를 직접 한 사람들의 면면을 내가 다 알 수는 없지만, 아마 다수는 ‘내가 평생 삼보일배를 할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사람’이지 않을까.

ChatGPT에게 물었다. 자본주의는 왜 이렇게 차갑냐고. 지금 내 글의 핵심 메시지를 뽑아보면, '자본주의의 제도는 차갑게 작동하고, 그 차가움은 결국 사람을 무릎 꿇게 만든다.'가 아닐까 한단다. 경제뉴스처럼 보이는 일면을 덜어내고 홈플러스에서 물건을 구매하는 일상 속 내 모습을 좀 더 적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한다. 그래서 떠올려 보니 나는 전에 홈플러스에서 우유도 사고, 치즈도 사고, 고기도 사고, 과일도 샀다. 외국에 나가면 마트 구경하는 재미로 여행 코스에 마트를 꼭 끼워 넣는 사람이기도 하다. 한국의 마트에 놀러 왔던 외국인은 아마 기억을 못 하겠지만, 홈플러스에서 장을 보며 '홈플러스 플러스 가격이 착해. 홈플러스 플러스 행복이 더해' 그 노래를 나는 꽤 오래 들었다. 그래서인지 뭔가 기억의 뿌리를 이루는 시공간이 또 사라지는구나 싶다. 안타까움과 상실감이 입 안에 들어온 모래처럼 까실하게 남아있다. 경력 단절 엄마의 반가운 일터가 되어주던 마트가 파국이다. 아, 이게 10년 일찍 찾아왔다면 우리 엄마가 무릎 꿇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이 일이 왜 이리 잔상이 남는지 알 것도 같다. 내가 무릎 꿇지 않았을 뿐, 같은 세계에 살고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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