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내 가슴과 코스모스 피어있는

현대 의학의 발전을 기원하며

by 유시안

현대 의학이 위대하면서도 그렇지 않은데, 비염이나 질염의 대응이 그렇고(뻔한 치료의 반복이지만 획기적으로 나아지지 않음) 그렇지 않은 예를 또 하나 들자면, 도저히 뭔지 알 수 없는 피부염 증상을 들고 피부과에 갔을 때 의사도 약 80% 확률(경험상)로 “몰?루”를 시전하는 것이 그것이다. 피부과는 대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시술에 모든 리소스(의료인의 재능, 기력, 의지)를 몰빵하고, “저 발바닥에 가시가 박혀서 왔는데요” 같은 이야기를 하려면 엄청난 용기와 검색력을 갖춰야 한다. 이 피부과에서 과연 나를 받아줄 것인가 고민해야하는 게 고민이다.

얼마 전 유방 확대 촬영을 하고 왔다. 소위 내 주변 지인들에게는 ‘찌부짜부‘라고도 불리는 유방촬영은 유방을 가로로도 누르고 세로로도 눌러서 찍는데 그 고통이 상상초월이다. 그래서 보통 진통제를 먹고 간다. 진통제 먹으면 효과 있냐고? 없어도 먹는 거다, 좀 덜 아프길 기도하는 심정으로.

이게 생리 주기 잘못 맞춰서 가면, 가슴이 제일 부풀어 있을 때 촬영을 할 수도 있는데, 내가 이번에 그 케이스였다. (가슴은 주기적으로 부풀어 올랐다가 돌아온다, 나도 왜 그런지는 모르고, 겪을 때마다 미칠 노릇이다.)금번에는 11월에 촬영을 했는데, 확대 촬영을 병원에서 빼먹는 바람에, 12월에 한 주가 좀 더 지나서 다시 가야만 했다.

소지품 의자 위에 보관해 주시고 상의 탈의 하실게요. 이 앞으로 서 주세요. 어깨 힘 빼시고 팔 앞으로 뻗어 볼까요? 고개 푹 숙여 보실게요. 왼쪽 유방을 왼손으로 붙잡아주세요. 오른쪽 골반 오른쪽으로 한 번 틀어 주세요. 정면 바라 보실게요. 그대로 숨 꼭 참으세요. 이제 숨 쉬시고 그대로 계세요.

그간 그래도 착하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오른쪽 유방만 세로 5번, 가로 3번을 찍었다. 결국 6번째엔 비명이 터졌다. 물론 촬영실이 떠나가라 비명을 지르진 않았는데, 한 순간 통제력을 잃고 존엄성을 잃었다 싶을 정도로 비명이 슥 새어 나왔다.

내가 과거에 무슨 큰 죄를 지어서 벌을 받는 건가보다. 이 생에 속죄하는 건가보다. 나는 숨을 최대한 참았다가 반대 쪽인 왼손을 쥐었다 폈다 해보다가, 후후 숨을 쉬었다가, 숨을 참으라는 말을 또 들으며 제발 이 압박이 빨리 끝나기를 빌었다. 코만 눌러 잡아도 아픈데, 코는 뼈라도 있지, 뼈도 없는 곳을 꾹 눌러 평평하게 만드는 일을 자꾸 겪으니 고문이 따로 있는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촬영실에는 후면에 LED가 탑재된 사진 액자가 있다. 수검자가 검사 받는 도중에 왼편을 바라 보면 거기에는 코스모스가 들판에 잔뜩 피어있고 새파란 가을 하늘이 펼쳐져 있다. 뒤편에서 빛이 비치기 때문에 대단히 실감이 나는 그림이다. 그 그림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내가 처음에 유방 미세석회화 관련 이야기를 듣고, 그 뿐 아니라 다른 조직 모양도 조금 나쁘단 이야기를 듣고, 암일 확률이 2-3%라는 이야기를 듣고, 이 병원 저 병원 돌아다니며 의사들의 의견을 묻고, 조직 검사를 할지 말지 고민을 하고, 지금까지의 인생을 어떻게 정리해 봐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하던 시간이 머리 속에 스쳐 지나간다.

내가 이렇게 자꾸 받는 검사는 소위 추적 검사의 목적으로 하는 것인데, 검사 주기가 처음엔 3개월 이었다가 그 다음엔 6개월 이었다가 이제는 일 년으로 변경 되었다. 암일 확률이 0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암이 아닐 확률이 97-98%라고 생각하며 현대 의학의 눈부신 발전으로 언제 더 나빠지지 않는지 추적하는 중이고, 기대보다는 덜 발전한 기술 덕에 고통을 매번 겪는 중이다. 압박을 덜하면 사진을 명확하게 얻을 수 없다나.

이번에는 고통이 좀 가실 때까지 촬영실에서 나와 한참을 대기 의자에 앉아 있었다. 병원이 커서 매번 헤매는데 헤매는 동안 이동식 침상에 누워 옮겨 지는 사람들, 링거를 달거나 호흡기를 쓰고 있는 사람, 머리카락이 없는 남녀를 몇 번이고 마주 쳤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령 실적 평가와 성과급이라는 단어는 저 사람들과 가깝지 않다. 나는 저들과 과연 얼마나 멀까.

병원을 나와 집으로 가는 길에 좁고 어둡고 기나긴 터널을 걸었는데, 매번 그 터널을 빠져 나올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한다. 외롭고 고요한, 때로는 무섭기까지 한 터널을 혼자 다 걸어 나오면 결국 내가 맞이해야 할 그리고 나를 맞아주는 세상이 다시 등장한다. 키가 비슷한 나무들, 높이 솟은 아파트들, 서로 코와 엉덩이를 맞댄 차량들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다시 있다. 비로소 일상의 여상함을 느끼고 다시 바쁜 생활로 돌아갈 마음이 된다. 정말이지 지겹도록 뻔한 이야기인데 건강이 제일이라는 것을 건강할 때는 잘 체감하기가 어렵다. 평소에 건강함에 대한 감사도 잘 없다. 우울과 불안이 나를 덮쳐서 행복의 영점을 다시 맞춰야 할 때 촬영실의 코스모스를 생각하기 위해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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