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도망치듯 달려들어간 회사]
지방 A대학에 좋아하는 남자애를 두고 서울로 상경해야 했던 나는 대학에 영 적응을 못했다. 핵아싸여서 시험 때마다 손에 닿지 않는 족보를 궁색하게 빌리며 학교를 다녔다.
3학년, 캠퍼스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인턴이라는 걸 알고는 온갖 전공과 무관한 사회에 발을 들였다. 시대의 흐름 탓인지 대학생의 아이디어가 필요한 게 그 분야뿐이었는지 기회 좋게 많은 기업들의 마케팅팀 인턴, 대학생 체험단 등을 하며 대학 밖에서 경험도 쌓고 학점도 벌었다.
4학년 때 우연히 들어가게 된 컨설팅펌에서 지속가능경영이란 걸 접했다. 우리나라에서 단 7개 회사가 지속경영보고서를 쓰고 있을 때였다. 나를 데리고 있던 팀장님은 이분야가 가망 있다며 대학원 진학을 권했다. 대학도 잘 적응 못했는데 대학원인들 괜찮을까 싶었지만 마케팅팀 인턴을 수차례 하며 닦은 PR기술 덕에 용케도 대학원에 붙었다.
대학원에선 우리나라 최초로 탄소배출권 사업을 했다. 인도네시아 롬복에 망그로브를 심고 그들이 흡수한 이산화탄소만큼 배출권을 얻는 사업이었다.
학교도, 나도, 교수님들도 모두 처음이었던지라 많이 헤매었다. UN과 연이 있어 도움을 줄 수 있다던 어느 자문위원은 사기꾼에 가까울 만큼 경험도 인맥도 없었고 멘땅에 헤딩보다 더 난관이던 사업은 내 학위 기간 내에는 그 끝을 보지 못했다.
공부가 영 적성에 없었던 나는 졸업시험을 보기도 전에 취업이라는 탈출을 시도했다.
왜인지 모르게 조급했던 나는 가고 싶었던 기름집의 인적성에서 버거킹을 맛있게 먹어놓고는
시험성적이 채 발표되기도 전에 정확히 그 정체도 잘 모르던 B2B 회사의 입사일 메일을 받았다.
빨리 근무 가능하냐는 인사팀의 안내문자에 졸업식도 하기 전에 근무를 시작했다. 탈출이 애지간히도 고팠던 거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좋은 시절 여행이나 실컷 다니고 놀지, 왜 일도 하고 졸업논문도 쓰고, 졸업시험도 보면서 아까운 이십 대 말을 그렇게 고생했는지 내가 가엾다.
그래도 그땐, 그래야 내가 숨을 쉬고 사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