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동안 나는 자랐다

[5편. 삼켰어야하는 건 말, 뱉어야 했던건 술]

by 아뵤카도


큰아이가 1학년이고 작은아이가 1살이 되며 나는 두번째 휴직기간을 보내고 있었다. 추운겨울이었고 여전히 코로나가 기세를 부렸다. 집에서 뒹굴거리며 주어진 여유를 만끽하고 있는데 새로 생긴 부서로 발령났다는 통보가 날아들었다. 휴직중인 사람을? 굳이? 싶었다.

변화되는 정권과 새로생긴 정부부처를 전담대응하고 규제를 해소하는 부서라 했다. 말이 좋아 그렇지 굳이 풀이 하자면 사람 좋아하고 술 잘마시는 사람들 데려다 대관대응하는 부서였다. 나의 전임 임원은 고민을 하다 적임자로 널 그곳에 추천했노라고 얘기했지만 그 말이 별로 달게 들리진 않았다. 구성된 멤버를 듣자하니 임원 한명, 팀장 한명에 팀원 셋 도합 다섯인 더할나위 없이 조촐한 조합이었다.

새로 만나게 된 팀의 팀장은 동기였다. 썩 친하지는 않았어도 워낙에 넉살 좋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던지라 걱정은 안들었다. 소식을 들었다고 문자를 했더니 바로 전화가 와서는 저녁을 먹으러 나오라 했다. 바깥바람이 쐬고싶었던지라 냉큼 네! 하고 대답을 했다. 팀원 모두와 상견례와 같은 인사를 하기로 했다. 다 모여봐야 다섯이니까...

바로 가게 주소지가 날아들었고, 나는 진짜 상견례처럼 원피스를 오랜만에 차려입고는 수서역으로 갔다. 새로 보는 임원과 낯이 익지 않지만 처음 보는것도 아닌 동료 둘, 익숙한 얼굴의 팀장이 식당에 미리 앉아있었다. 회사사람을 오랜만에 보니 반가웠다. 임신을 하고 수유를 하는지라 2년 가까이 멀리하던 술이 들어가니 기분이 좋아졌고, 이 멤버들이라면 재미있게 회사 생활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들었다. 1학년이던 아이와 캐나다로의 어학연수를 준비하던 중이었는데 길어진 코로나로 인해 출국날이 자꾸 지연되는 사이, 나는 당치 않게 마음을 고쳐먹고 복직 선언을 했다.


나에게 얼마간 없던 재미와 신남이 판단을 흐리게 했고, 난 뇌가 술에서 깨는 날이 얼마 없을 부서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임원은 HR조직에서 온 분이었다. 고용노동부에서 만든 법과 처벌이 경영진을 잦은 빈도로 출석하게 했고, 이를 대응하기 위해 해당 분야에 정통했던 임원을 필두로 전담부서를 만든 것이다. 뭘해야하는지 정확히 몰랐던 우리는 매일을 헤멨다. 뉴스를 뒤져 동향이랍시고 스크랩을 했고, 해소해야하는 숙제를 찾아 굼주린 하이에나처럼 갈증나했다. 하지만 이런다고 되는걸까 확신은 없었고 의심만 많았다. 우리는 노동과 관련된 지식이 없어 빠르게 젊은 노무사를 채용했고 그까지 넷이 한데 모여 무얼해야하는가를 매일 고민했다. 우리는 진로가 정해지지 않은 중3같았다.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임원의 지시만을 기다렸다. 임원은 그런 우리를 매일 밥으로, 술로 달래며 급하지 말라고 다독였다. 전에 모시던 임원들과는 너무 달라서 우리는 그말이 더 조급하고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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